12년간 초중고를 다니면서 사람은 누구나 학교에 대한 크고 작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억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엄마가 촌지를 주지 않자 멍이 들 때까지 나를 때렸고, 청소를 못한다고 이름 대신 '밥통'으로 불렀다. 나보다 더 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믿는다. 가끔 그들이 토해내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읽거나 듣다 보면 부끄러웠다. 내 죄는 아니었으나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히어로도 아닌데 무슨 수로 사람들의 상처를 해결하지? 그러니 입을 다물 수밖에. 굳이 숨겨야 할 비밀도 아니지만 떳떳하게 직업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제자에게 세상은 넓고 직업의 종류는 다양하니 다른 길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진 짐을 학생에게 나눠주기 싫었다.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학생들은 어떨까? 교사로 1n년째 살고 있지만 교실 문을 열 때마다 여전히 떨린다.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업을 잘 들을지 말지는 온전히 그들의 생각에 달렸다.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학습지를 만들고 수업 자료를 제작하고 지루할 때 들려줄 이야기도 마련한다. 즐겨 읽는 소설이나 재미있게 본 영화의 줄거리는 옷자락 안 쪽에 꼭꼭 숨겨두었다가 학생들이 졸려하면 슬쩍슬쩍 펼쳐놓는다. 굼뜬 몸으로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도 열심히 그린다.
30명의 학생들 중 일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헤맸고,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마음을 돌린 채 나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순간도 충분히 많았다. 나는 무능하고 실패한 교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매 순간을 살던 시기도 있었다.
"너만 힘드냐? 너보다 힘든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꼭 교사들이 불평불만 많더라." ,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라. 임고생들 줄 섰다." 이런 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실제로 댓글창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다.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듯 좌절과 불행만 있지는 않았다. 삶이 내게 알려준 많은 가르침을 나누고 싶다. 내가 아무리 부인해도 내가 선택한 직업이고 삶이다. 그 속에서 행복과 기쁨도 충분히 느꼈다.
나는 교실에서 자유로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학생들과 교사인 나만 존재했다. 그들이 웃으면 나는 즐거웠고, 나는 즐거웠기 때문에 그곳에 존재하길 원했다. 문득 내가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작가이니 작품을 쓰는 일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신경숙 작가의 말 옆에 앉아 나는 1n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왜 교사로 계속 살아오고 있는지 잠시 생각했다.
"나는 교사이니 학생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물렁물렁하고 쉽게 부서졌던 내 마음을 키운 건 교실에서 만난 수많은 학생들, 그들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인지도 모른다. 그들과 함께 나는 웃었고, 울었고, 가슴 아파했다. 그들이 내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던져주었고,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로 서기 위해 끊임없이 비틀거렸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갈 수밖에. 그게 내 삶이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