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디자인 회사 MDWAVE(엠디웨이브) 조영현 대표님 인터뷰
지역에는 OO기획이라는 상호를 단 업체가 많다. 주로 현수막이나 광고물을 제작하는 곳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업체에서 '기획'을 하거나 '기획비'를 받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전문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곳도 많지 않다. 기존에 만들어진 소스(source)를 활용해서 조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 기획이나 디자인 비용을 따로 책정하지 않고 인쇄/출력 비용에 1~2만 원가량을 추가하는 식이다. 포털 사이트에 양양/속초/강릉 디자인이라고 검색어를 넣으면 대개 인테리어 업체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양양군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개소하고 센터의 로고와 주민협의체 모집 광고물을 만들기 위해 여러 업체와 개인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강릉의 디자인 회사 MDWAE(엠디웨이브)를 발견했고, 조영현 대표를 만났다. 작업 결과물 자체가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견적서와 시안,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도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로고 디자인의 배리에이션에 대해 정리한 아이덴티티 매뉴얼이었다. 나는 서울에서도 광고/홍보 회사를 다녔던 만큼 익숙한 것이었지만, 솔직히 지역에서 이걸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매뉴얼 북은 조영현 대표가 MDWAVE의 차별점으로 갖고 가는 전략 중 하나였다.
조영현 대표는 일산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강릉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은 후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강릉에 왔다. 혼가서, 아니 정확히는 본가에서 함께 살던 강아지와 함께 왔다. 강릉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지만,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을 알아봐 준 스승이 있었다. 조영현 대표는 자신이 곧 회사이기도 한 1인 기업의 대표로서, 그래픽 디자인이 업계로 자리잡지 않은 지역에서 "(작업비를) 왜 그렇게 많이 받아?"라거나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라는 말들 앞에 자주 서게 된다. 일하는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고, 작업의 결과물로 설득하는 것. 글로 보면 쉬워 보여도 매번 반복되는 불필요한 설명과 설득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는 분명 새로운 변화(WAVE)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영현 님은 2019년 10월부터 강릉에서 살고 계신 거니까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네요.
조영현: 네. 본가는 일산인데 강릉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를 다녔어요. 대학 졸업한 후에는 다시 강릉에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와 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조영현: 대학생 때 좋은 교수님을 만났어요. 이선희 교수님이세요. 그분도 원래 강릉 분은 아니시고 서울에서 오셨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서울의 경쟁적인 환경에 섞이고 싶지 않으셨대요. 그래서 강릉으로 이주하시면서 제가 다닌 학교에서 강의를 하셨죠.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당시 교수님이 제자를 키우고 싶으셨다고 해요. 우연히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그림을 보셨어요. 당시 선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린 것을 올렸는데 그걸 보시고는 갑자기 “너 우리 집으로 와라”라고 하셨죠.
인터넷에 떠도는 대학원생으로 선택당하는 밈(meme) 같은 에피소드군요.
조영현: 네, 그렇게 간택당해서 처음으로 작업한 게 2014년 공익광고제 공모전 포스터였어요. 이선희 교수님께서 코바코(KOBACO,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디자인 일을 계속하고 계셨거든요. 이번 포스터는 네가 한 번 만들어보라는 말씀에 갑자기 교수님 댁에서 만들기 시작했죠. 당시에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도 할 줄 몰랐는데 말이죠. 교수님은 당연히 제가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대학 전공이 시각 디자인이 아니었군요?
조영현: 전공은 광고였어요. 그때부터 교수님이 주시는 일을 받아서 프리랜서로서 디자인 작업을 했죠.
프로그램이라는 게 처음 배울 때는 쉽지 않잖아요.
조영현: 예전부터 저는 혼자서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학원이나 학교에서 아무리 백날 들어도 직접 한 번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걸 아니까 독학으로 배우는 편이에요. 어차피 프로그램도 다 한국어로 되어 있잖아요. 버튼을 하나하나 누르면서 익힌 거죠. 교수님과 대학 시절 내내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일하다가 졸업할 때쯤 창업을 소소하게 하나 했어요.
어떤 분야였나요?
조영현: 온라인 종합 광고 대행사였어요. 당시 강릉에는 온라인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별로 없으니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했죠. 다들 학생이니까 쉽지 않았죠. 동아리에서 발전한 형태여서 저 말고는 별로 의욕도 없었어요. 창업 멤버들이 저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학점으로 꼬셨어요. (웃음) 창업하면 4학점 이수 인정이라고 꼬셔서 시작했는데, 저는 그때부터 창업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함께 하던 사람들이 졸업하고 나서 회사는 사실상 와해되었죠. 사실 회사를 설립하는 건 엄청 쉽거든요. 세무서에 서류만 내면 되니까. 다만 그걸 유지하기가 쉽지 않죠.
졸업을 하면서 각자 진로가 달라지는 것도 영향을 주었겠네요.
조영현: 네, 그즈음부터 제 회사를 차리는 걸 생각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학생이자 프리랜서로서 2~3년 정도 디자인 일을 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적으로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제가 서울의 큰 회사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고요.
워낙 취업난이 심각한 시기니까요.
조영현: 일단 뭘 하더라도 좀 더 전문성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선희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셔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도 몇 군데 짧게 다녔는데, 회사를 다닐수록 ‘아, 나는 조직 생활을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교수님이 맡기시는 일도 간간이 했어요. 방학 때는 강릉에 와서 교수님 댁에 묵으면서 일하기도 하고요.
정말 애제자로 키우신 거네요.
조영현: 약간 교수님 아바타처럼 자라다가 이곳의 시장성에 눈을 뜬 거죠. 요즘 강릉에 오셔서 창업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카페나 음식점도 엄청 많아졌고, 펜션 하러 서울에서 오시는 분도 많고요. 창업을 하고 홍보를 할 때 로고를 비롯해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서울에서 일하는 것보다 여기가 더 블루오션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같은 일이어도 서울에서 하면 디자인이 눈에 띄기는 쉽지 않지만 강릉에서는 눈에 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다시 강릉으로 와서 MDWAVE를 창업했죠.
대학원 졸업 후 바로 강릉에 다시 온 건가요?
조영현: 8월에 졸업을 하고 10월에 왔어요.
회사명인 MDWAVE는 어떤 의미를 담았어요?
조영현: 'wave'는 원래부터 회사 이름에 꼭 넣고 싶었던 단어예요. 한글로는 강릉의 파도를 연상하게 하려고 했고, 공학 관점에서는 'wave'가 단순히 파도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전달되는 에너지를 뜻하고 있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디자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MDWAVE'는 해양공학 교수님이 내신 아이디어였는데 'multi-directional wave(다방향파)'의 약자로, 다방향 파동처럼 다양하고 폭넓은 안목을 갖추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MDWAVE 사무실도 가톨릭관동대학교 캠퍼스에 있죠?
조영현: 네, 그런데 최근에는 집에서 작업해요. 제 일이 별도의 사무실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기도 하고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출퇴근하는 과정도 생략하려고요.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었어요.
강릉의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나요?
조영현: 가족 여행으로 온 적이 있어요.
좋은 교수님과 인연을 맺고 시장성이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서 선택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강릉에서 사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다시 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조영현: 대학 생활을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여기저기 다니고 즐겁게 보내기보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면서 지냈어요. 또래 친구들이나 과 동기들과 놀기보다 항상 교수님들과 어울려서 놀았어요. 술도 교수님들에게 배웠고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사제 관계군요. 좋은 분들을 만났으니 가능했던 일이고 참 다행이에요.
조영현: 맞아요. 그러다 보니 딱히 강릉에 추억이 있는 건 아니라서 졸업할 때는 강릉에 다시 오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역의 특색을 그때까지는 잘 몰랐어요. 이 지역의 장점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서울에 있다 보니까 강릉은 이러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2019년에 강릉에 다시 왔을 때는 좀 막막하긴 했어요. 서울과 일산에서 평생을 살다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 정착해서 살 수 있을까 걱정을 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단기적으로 머문다고 생각했어요. 목표는 따로 있고 여기서는 그냥 자금을 마련한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해야겠다 생각하다가 한 6개월 만에 강릉에 평생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랑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군요. 그래도 학생 때 알던 사람 중에는 원래 강릉이 고향인 분들도 있고, 대학 졸업 후에 강릉에 정착하신 분도 있을 텐데요. 영현 님이 평소에 만나는 분들도 있나요?
조영현: 대학교 친구 중에서 연락을 하는 친구는 거의 없어요. 4학년 때 같이 창업했다가 와해되었던 멤버 중에 그 일을 이어서 계속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동아리 팀원이었고, 제가 13학번이고 그들은 11학번 선배였어요. 다들 동아리를 나갈 때도 그분들은 뭔가 좀 더 될 것 같은 마음에 더 계셨어요. 저도 그들이 잘 되길 바랬고요. 지금 ‘기린아’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하고 있어요. 그들과는 지금까지 4~5년째 계속 연락하고 업무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기도 해요.
처음 광고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광고에서도 제작 쪽, 이를테면 디자이너나 아트 디렉터가 되길 바라신 건 아니었나 봐요.
조영현: 광고가 좋았다라기 보다는 제가 만든 창작물이 세상에 보이는 것에 희열을 느낀 게 컸어요. 그래서 원래 희망한 건 카피라이터였어요. 글 쓰는 쪽에 흥미가 있어서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는데 밥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광고가 좀 비슷한 맥락이겠다 싶었던 거죠. 그림은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전문가로서 디자이너가 된다거나 하는 생각은 못했어요.
본가가 일산인데, 원래 고향은 어디였나요?
조영현: 의정부가 고향이고 서울시 노원구에서 자랐어요. 제일 오래 산 건 일산이에요. 지금도 부모님과 언니가 일산에서 살고 있어요.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일산에서 자란 거군요. 일산은 경기도이지만 수도권 중에서도 가장 서울에 근접한, 그래서 서울 생활권이라고 여겨지는 곳이죠. 게다가 꽤 자리 잡은 신도시이기에 기반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어 생활하기에 아주 편한 곳이기도 하고요. 사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는 곳에서 오래 살다가 강릉에 왔을 때 생활의 편리함 측면에서 차이가 확실히 있었나요?
조영현: 인구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생기는 공공 시설물이나 공간들이 있잖아요. 백화점이나 프랜차이즈 지점도 유동 인구가 어느 정도 이상일 때 영업이 가능한 것처럼요. 아무래도 강릉은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죠. 가장 쉬운 예로 옷은 입어보고 사야 하는데 여기는 입어보고 살 만한 데가 없어요. 항상 인터넷으로 주문해야 하는 단점이 있죠.
맞아요. 그런데 우리가 사실 대단한 것, 이를테면 백화점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웃음)
조영현: 작은 아웃렛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는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일산에 살 때도 집에서 혼자 잘 노는 편이어서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 다만 강릉이 너무 좁아서 친구가 놀러 와서 밖에서 밥을 먹으면 그 가게에 항상 아는 분이 있는 게 조금 불편해요. “조 대표 아닌가요?” 하고 말을 거는 분들이 있죠.
막상 양양에 사는 제게는 강릉이 굉장히 큰 도시여서 여기서는 나름 익명의 존재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군요. 지금은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곳이지만, 처음 혼자 강릉에 가서 살고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죠?
조영현: 부모님이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어주시는 편이에요. “너는 무인도에 가서도 잘 살 거야.”라고 믿어주셔서 어렸을 때부터 제가 나름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하면 “그래, 네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우리는 너를 믿는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고등학교도 2개월 정도 다니고 자퇴를 했거든요. 그때도 바로 동의서에 서명을 하셨어요. 대학교 4학년 때는 프랑스로 인턴을 가게 됐어요. 떠나기 1주일 전에 “나 프랑스 가”라고 했더니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선택했겠지.”라고 하셨고요. 지금은 부모님이 더 강릉을 좋아하세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세컨드 하우스가 생긴 것이기도 하네요.
조영현: 저도 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강릉에 한 2년 정도 있다가 다시 서울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부모님도 강릉 오실 때마다 너무 좋다고 하시면서 당신들의 노후를 여기서 보낼 계획을 하고 계세요.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한데 제가 더 열심히 벌어야죠. (웃음)
친구들이나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조영현: 부러워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서울에서 회사 생활하는 게 어떤지 아시잖아요. 지옥철 타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고군분투하는 거니까 강릉에서 내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 부러워하죠. 물론 저도 아등바등 사업을 하고 있는 건데, 되게 힐링하면서 사는 줄 알죠.
만약 가족이나 친구가 영현 님을 걱정했다고 해도 휘둘리지 않으셨을 것 같네요. 반면에 모든 걸 스스로 결정을 해야 되니까 이게 맞는 길인가, 뭔가 정말 놓치는 건 없는가 하는지 더 많이 자문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조영현: 일단 강릉에 온 이후로는 ‘왜 이런 선택을 했지?’ 하는 후회는 안 했어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어요. 일단 그것보다 나은 건 확실했어요. 다만 좀 더 기반을 잡아 잡고 시작할 걸 하는 생각은 했죠. 팀업이라든지 다양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해보고 창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거죠. 지금까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지만 준비가 좀 부족했던 건 아쉬워요.
실제로 다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는데, 늘 돌아보면 아쉽죠. 창업 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조영현: 요즘은 로고 디자인도 플랫폼을 통해서 정말 낮은 단가에 만들어주기도 하잖아요. 이미 있는 소스(source)에 업체 이름과 글씨체만 바꾸거든요. 저는 그런 서비스와는 확실히 차별점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시장 조사를 하고 회사의 콘셉트를 파악하고 서로 계속 회의를 하면서 방향을 찾고, 이를테면 기획을 제대로 하는 걸로 차별성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주로 BI(Brand Image)나 CI(Company Image) 쪽에 초점을 뒀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매뉴얼 북(Manual Book)이라고 회사에 맞는 콘셉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정리해주는 걸 했어요. 그걸 본 클라이언트는 다른 업체에 일을 맡겼다가도 저한테 다시 오세요. BI나 로고를 처음 만든 의도대로 다른 디자인도 이어가야 하는데 다른 곳에 맡기면 그 방향을 못 찾는다는 거죠. 그래서 리플릿이나 카탈로그 같은 책자 작업 의뢰가 다시 저한테 오게 돼요. 파생 작업이 이어지다 보니 인쇄 편집 쪽까지 다 하게 됐어요. 클라이언트가 온라인 홍보도 필요한데 이걸 또 다른 업체에 맡기면 통일된 콘셉트가 아니니까 그것도 하게 되고요. 지금 더 욕심나는 건 영상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영상은 혼자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아니면 함께 일할 사람을 뽑아야겠네요.
조영현: 그렇죠. 그런데 사람을 뽑기에는 아직 사업이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서요. 괜히 직원을 구해놓고 그분에게 나중에 미안해지면 안 되잖아요.
제가 저희 양양군 도시재생지원센터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할 때도 쉽지 않았어요. 저는 광고 일을 했으니까 센터가 새로 개소했으니 로고를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막상 이곳에서는 왜 만들어야 하냐고 묻는 분도 있었어요. 인쇄 업체에서 거의 출력비만 받고 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견적서를 보고 놀라는 분도 있었고, 말씀하신 매뉴얼 북도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분도 있고요. (웃음)
조영현: 저도 처음에 설득하는 과정이 되게 힘들었어요. 소비자나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디자인에 담겨야 하기 때문에 콘셉트가 필요하다, 그래서 기획을 해야 하고 기획비를 따로 책정한다고 하나하나 설명을 하죠. 작업 단가를 얘기하기 전에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자꾸 길어지는데, 매번 앵무새처럼 설명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죠. 현수막이나 간판 작업을 하는 업체는 기존에 있는 시안에 글자만 바꾸니까 디자인 값이 안 드는 건데, 저는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좀 다른 걸 기대하는 분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찾아주시고요.
작업의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강릉에서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면서 단가 기준을 정할 때 애먹었을 듯해요.
조영현: 맞아요. 아예 처음에 선을 정해버렸어요. 표준 단가표를 제가 따로 만들었어요. 거기에 최저 금액을 써놓고 더 낮게 제시를 하면 의뢰를 받지 말자고 정해둔 거예요. 그렇게 정해두니까 일이 없을 때는 좀 힘들긴 해도 고민은 덜 하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점점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고, 저도 단가가 내려가면 의욕이 좀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결과물의 퀄리티도 같을 수 없지요. 돈을 많이 주면 스스로 영혼을 탈탈 털어서라도 하게 되고요. (웃음)
맞아요. 사랑이나 믿음은 돈으로 증명하는 거죠. (웃음)
조영현: 강릉에 조그맣게 가게나 공방을 여는 분으로부터 의뢰를 받곤 해요. 제가 작업비를 제시하면 저를 믿고 의뢰하는 분이 있는 반면 “그 금액이면 안 해요.”라고 하는 분도 있죠. 믿고 맡겨준 분 중에 강릉 한우타운이라고 송정해변 앞에 고깃집을 하시는 분이 있어요. 나이가 꽤 있는 분이셨는데 제가 제시한 금액으로 진행하셨어요. 송정해변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현대적인 느낌을 원하셔서 재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해서 소 머리 모양으로 간판을 만들었어요. 로고도 만들고 메뉴판이나 리플릿, 전단지도 만들었고요. 어떻게 보면 요식업 하는 분들에게는 생각보다 비싸게 여겨질 수 있는 비용이었죠. 그런데 그 일을 소개해준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로고가 원래 있는 소스를 활용한 거냐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역시 한우를 취급하는 다른 사업체에서 따라서 만든 거예요. 간판을 제작한 업체에서 제가 디자인한 목형이 있으니까 그걸 그대로 만든 거죠. 소송하기 전에 간판 바꾸시라고 얘기해서 내렸죠. 저는 심사숙고해서 만든 건데 간판 회사에서는 관습적으로 있는 소스라고 생각해서 갖다 쓴 건데, 그분들은 그렇게 항상 해왔으니까 잘못이라고 생각도 안 하셨을 거예요. 기존 업체가 디자인이나 기획비를 제대로 받지 않고 인쇄 출력비만 받고 제작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러다 보니 창업을 하는 사장님 중에는 ‘이런 걸 뭐 디자인비를 받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아까 기획비 항목도 얘기했는데 견적서를 보면 확실히 기존 지역 업체들과 차이가 있거든요. MDWAVE처럼 기획비 금액 자체가 크지 않아도 항목으로 분리를 해서 명시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이게 당연하지 않은 지역에서, 1인 기업을 창업해서 일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설명이나 설득이 반복되면 지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 않나요?
조영현: 맞아요. 그래서 그런 걸로 최대한 감정 소모를 안 하려고 끝까지 설득하려는 마음이 많이 없어졌어요. 저를 약간 사기꾼처럼 취급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시장 조사부터 콘셉트 짜고 시안 제작하고 수정하고 하다 보면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설명하면 어디 다른 업체에서는 3일 정도면 다 나온다는데 이게 어떻게 한 달이나 걸리느냐 하는 거죠.
그게 꼭 작업비나 일정을 후려치려고 작정해서라기 보다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많잖아요.
조영현: 대개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단가표를 정해두었지만 때로는 계속 무리하게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조영현: 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창업을 막 하신 분들한테는 제가 동병상련을 느껴서 굉장히 저렴하게 해 드리는 편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은 안 믿어요. “다음에 또 맡길게요.” 이런 말은 절대 안 믿어요. 저를 어린 학생처럼 대하면서 우리 일을 하면 대표님 이력에도 좋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에게는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요.
한편으로는 10만 원, 20만 원 갖고 실랑이하지 말고 그냥 수락할까 싶은 순간도 있을 거고요. 이 일을 그냥 할까 싶은 순간들도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스스로 기준과 다른 결정을 하거나 혹은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나요?
조영현: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너무 확실하고 뭔가 믿음이 있는데 정말 돈이 없을 뿐인 사람들과는 같이 성장해나가는 마음으로 굉장히 저렴하게 하거나 서비스로 더 해드리는 게 많아요. 얼마 전에 어느 무용단이 강릉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분도 강릉 분은 아니신데 강릉에서 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요. 돈이 없으니까 직접 발품을 팔더라고요. 무대 조명이나 소도구도 직접 준비하고요. 문인화 화가를 직접 만나서 그림도 하나하나 다 배우는 분이셔서 그분이 첫 공연하실 때 로고 작업비로 공연 도록과 포스터, 웹포스터까지 다 해드렸어요. 같이 성장해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이라고 디자인 작업에 대한 정당한 비용 지급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지역이라서 더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한편으로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자기만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거라서 상대적으로 일하는 장소나 지역에 한계가 작아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하기에 좋은 점도 있죠. 워케이션이 가능한 대표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잖아요. 영현 님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조영현: 강릉에 오고 싶어 하는 후배가 한 명이 있어요. 서울에 있는 광고회사에 AE로 일하고 있는데, 온라인 광고기획사를 세우고 싶어 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제가 일하는 모습 보면서 여기가 블루 오션이니까 경제적인 수익성을 보는 건데, 저는 돈 욕심이 나는 거면 정말 오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여기서 일하면 돈을 못 번다는 뜻이 아니라 디자인 업에 대한 인식이나 업계의 체계가 확실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내 일의 첫 발을 내딛는 점에 의미를 두고 일하는 거라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오는 거라면 오히려 돈을 벌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지역과 좀 동화가 되면서 흘러가는 대로 사람들도 만나면서 점점 배워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돈 문제는 중요하니까 이것도 생각하려면 제대로 하면 좋겠어요. 작업 단가 책정은 자기가 일하는 만큼, 역량에 맞추는 거니까 각자 알아서 해야 할 거예요. 다만 휘둘리지 말아야 해요. 특히 제가 중요하게 얘기하고 싶은 건 세금 문제예요.
세금은 쉽게 놓치는 부분인데 사업하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조영현: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세금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만 단가 책정을 했는데요. 개인 사업자는 세금을 두 번 내잖아요.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소득세를 기준으로 점수를 합산해서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를 내니까 사실상 세 번이라고 생각하고 매출을 관리해야 해요. 특히 저처럼 세무사와 일하지 않고 직접 혼자 하는 분들은 납세 기간을 잘 지켜서 가산세를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어요.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로서나 창작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로서나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에 가장 스스로 만족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조영현: 안목해변 앞에 파인아트 라벨이라고 클럽형 호텔이 있어요. 홍대에 있는 옥타곤 클럽 아시죠? 그곳을 운영하는 회사 대표님이 클럽형 호텔을 세우려고 알아보다가 강릉에 온 거예요. 이선희 교수님과 같이 그 호텔 CI 작업을 하게 됐어요. 아직 회사를 차리기 전이었고 대학원생이었는데, 기간이 오래 걸렸던 작업이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체계적으로 일해야 하는구나를 처음 알게 된 작업이었어요.
클라이언트가 규모나 업력에서 자산이 있으면 일의 방식도 다르곤 하죠.
조영현: 호텔 홈페이지에도 국내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서 작업했다고 써주셔서 창작자로서 정말 보람이 있었어요. 또 제가 가톨릭 관동대 일을 자주 하는데 아무래도 대학 직원들은 공무원 성향에 가까워서 좀 정형적이고 딱딱한 디자인을 많이 요구하시는 편이에요. 그런데 창업지원단 쪽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교수님이 많기도 해서인지 제가 내는 시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세요. 그래서 좀 도전적인 디자인을 해볼 수 있어요.
개인 사업자는 상대적으로 업무와 개인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율할 수 있을 텐데, 혼자 일해도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분도 있고 마감 일정에 맞춰 집약해서 일하는 분도 있잖아요. 영현 님은 어느 쪽이세요?
조영현: 처음에 가톨릭관동대학교 창업 보육 시설에서 일할 때는 출퇴근 시간을 정해뒀는데, 지금은 아니네요. 제가 이상한 시간대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자기 전이나 꼭두새벽에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그럴 때 컴퓨터나 도구가 없으면 출근하는 동안 사라지거나 희석되기도 하는데 그게 아깝더라고요. 제가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아마 안 들었겠죠. 오히려 퇴근하면 업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개인사업자로서 제가 제 회사에 애정을 갖는 이유가 제 주민등록 자체가 제 회사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한 거예요. 인감증명서나 그런 거 뗄 때도 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들어가니까 제가 어디를 가면 조영현이 아니라 MDWAVE가 가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회사 생각을 떨칠 수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도 여가 시간을 일부러 확보하려고 노력하나요?
조영현: 주말에는 절대 일을 안 하려고 했는데, 주말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작업을 하고 있어요. 확실히 휴가나 휴일 개념은 없어졌어요. 대신 일에 과부하가 오면 그냥 즉흥적으로 강아지와 산책을 몇 시간 다녀와요.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업무 미팅도 다른 지역에 출장 가는 일이 없는 한 따로 피하는 요일이 없어요.
쉴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조영현: 지금 사는 곳이 바다랑 엄청 가까워서 바다 산책을 자주 해요. 강릉에는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친구는 없고 대개 혼자 지내요. 강릉도 지역 연고나 학연에 대한 애착이 큰 곳이라서 제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강릉이 드라이브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라 그냥 차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한적한 곳을 좋아해서 안반데기를 자주 가요.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까 사람과 차와 집이 없는 곳에 가면 진짜 눈이 씻기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몇 년 동안 계속 혼자 일하다 보니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해진 것 같아요.
강아지는 원래 본가에서 키우다가 함께 강릉으로 온 거죠?
조영현: 네, 이제 6살이에요.
아이는 아니지만 강아지도 가족이고 자신 말고 돌봐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 1인 창업가의 생활 리듬에 충돌하는 지점도 있지 않나요?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맞춰야 하고.
조영현: 강아지가 어렸을 때 교육을 엄하게 해서인지 손이 많이 안 가는 편이에요. 지금은 거의 친구처럼 얘기해요. 제가 사람을 만나서 말할 일이 많지 않으니까 강아지 앞에서 클라이언트 욕도 하고요. (웃음)
강아지와 산책하기에는 강릉이 더 좋죠. 그런데 동물병원이나 관련 인프라는 좀 부족한 편인가요?
조영현: 강아지가 어렸을 때 병치레를 많이 해서 솔직히 걱정이 좀 많았어요. 이제 나이를 좀 먹었고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다치지 않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돌보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 강아지는 여기서 키우기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어린 강아지는 피부 바이러스나 장염에 자주 걸리거든요. 저도 늘 불안한 마음은 있어요. 강아지가 좀 큰 병에 걸리거나 강릉에 있는 기계로는 검진을 못하는 병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죠.
문화적 자극, 특히 시각적 자극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잖아요. 요즘은 SNS 통해서 행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기도 하고요. 내가 서울에 있었다고 해서 그 전시나 이벤트에 갔을까 자문하면 아닌 경우도 많지만, 또 이걸 보러 갔어야 하는데 하고 아쉬워하는 순간도 많더라고요.
조영현: 그 부분이 제일 아쉬워요. 문화적 자극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요. 일산에 살 때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전시회나 미술관에 갔고 연극 보는 걸 정말 좋아해서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보러 갔거든요. 지역과 수도권의 차이에서 의료 인프라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지금 저한테는 문화 행사의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오죠.
그나마 영화는 전국 단위로 상영을 하는 편이지만 무대 예술은 정말 수도권 이외 지역은 불모지이죠.
조영현: 그렇죠. 정확히는 대학로 말고는 불모지인 거죠. 일산에도 없어요. 그건 정말 문제인 것 같아요.
꼭 강릉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산다는 선택을 할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번에는 놓쳤지만 다음에는 미리 준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조영현: 일단 좀 더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성격이기도 한데 항상 어떤 일을 해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거예요.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이런 지식을 미리 알았으면 하는 결핍이 항상 있어요.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것 자체보다 창업가로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준비를 더 한 상태이면 좋겠다는 마음이네요.
조영현: 미국처럼 주마다 법이 다르거나 한 것도 아니고 서울과 비교할 때 정보량이 부족한 것 외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깊은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아요.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싶어서 지역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은 일부러라도 좀 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