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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기획 Apr 20. 2022

작은 브랜드라도 내 뜻대로 키워가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카페 겸 소품샵 '마음이 동해' 운영자 김의종, 김민지 님 인터뷰 

홀로 낯선 지역을 여행할 때 처음 가 본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곳을 미리 검색해서 찾아가기도 하지만, 이십 대 때는 거리를 어슬렁 거리다 왠지 끌리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다. 대개 주인이 혼자 있는 작고 조용한 카페일 때가 많았다. 손님이 나 혼자여도 주인은 쉽사리 말을 걸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을 조용히 하면서 내가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도록 해주던 카페들이 있었다. 양양읍내 남문리에 위치한 카페 겸 소품샵 '마음이 동해'는 그런 카페에서 보냈던 짧지만 충만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주는 공간이다.


읍내의 낮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마음이 동해'는 '동쪽 바다'와 마음이 움직이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다양한 빈티지, 레트로 소품이 눈길을 끄는 조용하고 포근한 카페이자 두 명의 주인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소품샵이기도 하다. 여행 중 양양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인연을 맺은 김의종, 김민지 님은 지난 2017년 여름, 서울을 떠나 양양으로 왔다. 낙산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일하면서 양양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다양한 파트타임 일을 거쳐 수공예로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양양에서 비치마켓이라는 플리마켓이 시작되었고, 이후 다양한 마켓에 참여하면서 실력을 쌓아간 두 사람은 읍내에 오프라인 쇼룸 겸 카페인 '마음이 동해'를 열었다. 카페 1층에 ‘제1장 서투른 여행의 시작’이라고 쓰인 것처럼, '마음이 동해'는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여정의 시작이자 일부이다. 작더라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키워나가고 싶었다는 김의종 님의 바람이 이 작지만 온화한 공간에서 차근차근 커나가고 있다.  



두 분이 양양에 온 건 언제인가요?

김의종: 2017년도 7월 말쯤에 왔어요. 제가 34살 때니까 횟수로 따지면 이제 6년째 살고 있네요. 아내가 먼저 양양으로 왔어요. 마침 제가 다니던 회사가 사업을 접게 되면서 겸사겸사 내려오게 된 거죠. 


당시에도 연인이었나요? 

김의종: 아니에요. 제가 30대 초반에 여행하던 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고, 둘 다 서울에 살았으니까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자주 만나는 사이였죠. 그러다 제가 호감을 가졌는데 그즈음 아내가 양양으로 간다고 하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따라서 왔어요. 

김민지: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게스트하우스라는 문화를 알게 되었어요. 당시 회사 동료인 언니에게 게스트하우스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강릉에 갔다가 스텝으로 계셨던 분이 양양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고 해서 양양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26살이었는데 그 여행 한 달 뒤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한테 얘기해서 스탭으로 한 달 동안 양양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서울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다시 양양에 온 건 29살 때고요. 


두 분 모두 양양에 연고가 있는 게 아니었군요.

김의종: 없어요. 여행으로 왔다 갔다 한 곳인데 자주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우리의 연고지라고 생각한 거죠. 한 달에 몇 번씩 다녀갔어요. 서핑을 한 건 아니고, 당시 강원도 쪽에 게스트하우스 문화가 시작되던 때라 새로운 친구 사귀고 술 마시러 놀러 온 거죠. 


그러면 꼭 양양이 아니었어도, 예를 들면 고성이든 동해안의 바닷가 지역이 처음 인연을 맺은 지역이었다면 그곳으로 갔을 수도 있었겠네요.

김의종: 네, 지역은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호감을 가진 사람이 양양에 간다고 하니 저도 이곳으로 온 거고, 고성이나 강릉에 간다고 했으면 또 거기로 갔을 거예요. 


지금은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김의종: 낙산 해수욕장 건너편에 있는 주청리에서 살고 있어요. 2017년에 처음 양양에 왔을 때는 아무런 준비가 없이 왔으니까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지인을 도와주면서 스탭으로 일했어요. 숙식을 신세 지면서 반년 좀 넘는 기간 동안 있었어요.


두 분은 고향도 서울인가요?
김의종: 아니요. 저는 전남 순천이에요. 대학을 대전에서 다녔고, 이후에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했죠.

김민지: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진해에서 자랐어요. 원래 바닷가에서 살았으니까 언젠가 다시 바닷가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양양에 여행을 온 뒤로 꼭 여기에 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과 가까운 바다이고 너무 번잡하지 않은 곳이잖아요. 그 당시에는 양양에 정말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양양에 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요? 

김민지: 원래 꿈이 디자이너였어요. 처음에 웹 디자인 일을 하다가 의류 디자인도 했고요. 일본으로 의류를 수출하는 회사인데 저는 디자인 팀이었어요.

김의종: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10여 년 정도 했어요. 온라인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일을 시작했죠.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라인, 기아자동차 로체 런칭, 농심 너구리 캐릭터 개발 등에 관여했어요. 이후에는 프랜차이즈 심리 미술 회사에 다녔어요. 제가 평소에 그림이나 심리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회사 법인명이 마음과 그림인데 그 이름에 제가 꽂혔죠. 이런 이름을 지은 회사 오너라면 코드가 맞을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홍보팀장이었지만 박람회 운영도 하고 언론 홍보도 하고 지점장 교육도 하고 전천후로 일했어요. 그 회사를 나온 후로는 주로 e-커머스 쪽에 있었어요. 국내 온라인 쇼핑몰 1세대라 할 수 있는 업체에서 한국, 일본, 중국을 대상으로 동대문 의류를 유통/판매하는 이커머스의 마케팅팀에 근무했어요. 주로 광고 집행을 담당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이후 추천을 통해 동대문 상권의 도매상과 온오프라인 소매상의 사입 구조를 개선하고자 런칭한 중개 플랫폼(스타트업)의 국내 마케팅 담당으로 이직했어요. 


동대문은 일반 회사처럼 9-18시에 일을 하는 게 아니죠?

김의종: 낮에는 일반 회사처럼 근무하고 밤에도 일했어요. 아무래도 다루는 상품이 밤에 유통되는 것이기도 하고, 스타트업 특유의 ‘파이팅 문화’도 있었어요. 직접 동대문 상인들 찾아가서 인사하고 술 한잔을 하고 하다 보면 거의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 3, 4시에 집에 돌아갔어요. 결국 병이 생겼어요. 몸에 지루성 피부염도 생기고 살도 많이 쪘고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도 있었죠. 스타트업의 특성상, 일반적인 회사 분위기와 다른 부분이 많았어요. 미국의 스타트업 구조를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어 직위 체계에 있어 수평적인 업무 분위기를 지향했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임원진과 직접적으로 많은 소통을 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업무 진행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게 많았어요. 


심리적으로 아주 힘들었겠어요. 

김의종: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일하면서 감정적인 부담까지 커져서 몸에도 부담이 된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면 너무 숨이 막혀서 도중에 내려서 걸어서 출근하기도 하고요. 제가 회사 생활하면서 알게 된 건데 주위 사람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더라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과 잘 맞지 않으면 몸으로 신호가 온다든가. 그 회사에 다니던 말미에는 정말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서 상담도 많이 했어요. 잠깐 휴식 기간을 가지기로 하고 회사를 쉬었는데, 그때도 양양에 왔어요. 그러다가 다른 회사로 옮겨서 양양에 오기 전까지 다녔는데, 거기서는 회복을 많이 했어요. 공덕에 살면서 서초의 회사까지 걷거나 자전거 타고 출퇴근했는데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걸으면서 치유한 거죠. 


그 회사가 사업을 접은 게 의종 님이 양양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군요.

김의종: 마침 대표님이 사업을 접었고, 그 시점에 저도 양양으로 가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니 타이밍이 딱 잘 맞았던 거죠.


20대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할 때 30대 초중반까지는 일과 삶이라는 명확하게 분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김의종: 만약 다시 돌아가서 시작한다면 경험한 게 있으니까 그렇게 일에 올인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회사에 소속되고 싶지는 않아요. 원래 꿈이 있었어요.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도 대표가 돼서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방향을 잡고 가보고 싶다는 꿈이요. 지금 소소하지만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에요.


양양에 왔을 때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김의종: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몸을 던진 거죠. 아내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요. 아내가 추진력이 있어서 일을 잘 벌이거든요. 당시에 아내가 하려는 장사 계획이 있어서 그걸 도우려고 했는데, 봐 둔 임대 자리가 계약이 안 돼서 무산되었어요.

김민지: 포장마차를 하려고 봐 둔 건물이 있었는데 양양에 온 지 3일 만에 그 자리가 나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죠. 읍내 약국에서도 한 1년 정도 일했어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간식 만드는 일도 했고요. 

김의종: 저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생계를 위해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어요. 낙산 비치 호텔 뷔페에서 서빙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일용직도 한 번씩 나가고. 일반 직장에 취직을 해볼까 하고 속초에 있는 회사 중에 제가 했던 일과 관련된 업종을 찾아서 지원도 많이 했어요. 근데 채용이 안 되더라고요. 


서울에서의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지역의 회사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죠.

김의종: 마케팅 인력을 뽑는다고 하지만 굳이 제가 서울에서 한 업무 수준이 아니어도 되는 일들이니까요. 어떤 회사에는 연락해서 한 달에 100만 원만 주셔도 된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대게 공장에 취직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비치마켓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양양에는 소품샵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신세 지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옆에 게스트 쉬는 공간으로 둔 컨테이너가 하나 있었는데, 비수기라 비어 있으니까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거기서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당시에 제주도에서 조개껍데기를 가공해서 주얼리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어요. 양양에는 아직 그런 게 없으니까 벤치마킹해서 해보자 싶었죠. 



이전에 공예를 배우거나 취미로 만들어 본 적이 있었나요?

김의종: 아니요. 독학으로 시작했어요. 그 컨테이너에 ‘마음이 동해’라는 이름을 붙이고 쇼룸 겸 작업실로 삼고 만들었어요.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조개를 주워서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을 만들어서 게스트하우스 손님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한 두 분 오시면 구경하고 구매하셨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비치마켓에 참여하고 점점 양평의 리버마켓에도 가고 곤지암도 가고 여기저기 다니게 되었어요. 마켓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잖아요. 그게 저희가 상품 개발을 하는 데 되게 많은 도움이 됐죠. 제 상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주는 의견을 듣게 되니까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좋은 기회가 됐죠. 솔직히 처음 비치마켓에 나갔을 때 상품을 생각하면 진짜 낯부끄러울 정도였어요.


손님들이 사준 게 감사한 정도였나요? (웃음)

김의종: 네. 이걸 왜 사셨지 싶은 수준이었죠. 그 덕에 계속 공부하게 돼요. 그때 저희 제품을 사주신 분을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오히려 돈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공부를 하는 중이었는데 응원을 담아 후원금을 주신 것 같거든요. 


읍내 남문리에서 카페 겸 소품샵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김의종: 2019년 8월 3일에 오픈을 했어요. 당시에는 카페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쇼룸이 됐든 카페가 됐든 오프라인 매장을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성격이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그때 워낙 생각이 많아서 아직 매장을 낼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죠. 그런데 당시 마그네틱 제품을 납품하던 카페가 몇 군데 있었어요. 양양에도 있고 고성에도 있고. 그분들은 바닷가 앞에 큰 카페를 운영하셨는데, 자꾸 카페를 오픈하라고 바닷가 앞에서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아내는 추진력이 있으니까 아내를 믿고 일단 해보자  싶어서 알아보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바닷가 쪽을 염두에 두었나요?

김의종: 미리 점찍어놓은 장소는 없었어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양양군청 통해서 청년 창업 관련 대출 이자 지원을 안내받았어요. 한 달 내에 임대할 곳을 찾아서 계약해야 지원이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바닷가 쪽을 다 훑었죠. 양양의 모든 해변에 매물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한 달 기한은 거의 다가오는 상황이라 읍내도 한번 가보자 해서 살펴보다가 지금 카페 자리를 찾은 거죠. 


‘시골에서 카페나 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가부터 여러 가지 고려할 게 많은 일이잖아요.

김의종: 저는 유치원 때부터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친구와 인천에서 카페를 한 적도 있고요. 커피를 배워가면서 했죠. 아내는 젊었을 때 카페를 비롯한 서비스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고, 원래 성향이 여러 사람과 시끌벅적하게 노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요리도 좋아하고요. 


포장마차와 카페는 식음료 분야 서비스업이지만 분위기나 오가는 손님의 성향이 다를 듯한데요. 민지 님은 처음에 포장마차를 생각하시다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아쉬움도 있겠어요.
김민지: 카페 분위기가 빈티지 레트로인데 이건 원래 좋아했던 거라서 마음에 들어요. 아무래도 정해진 공간 안에서 손님을 맞는 일이라서 스트레스를 받긴 해요. 

김의종: 카페는 제 성향에 좀 더 맞고 아내는 조금 더 분위기가 활기찬 업종이 더 맞죠. 저희가 이 카페만 계속할 건 아니라서 향후 어떤 걸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다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카페 1층 입간판에 ‘제1장 서투른 여행의 시작’이라고 쓴 것도 다음 장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있을 거라는 거죠.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양양을 떠나게 될 수도 있고요.



민지 님은 이십 대 후반에 서울을 떠나온 건데, 원래 하고 싶었던 의류 디자인 일을 여기서는 할 수 없었잖아요.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나요?

김민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봤으니까 그만두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양양에 와서 초반에는 좀 미련이 있었죠. 그래도 제가 선택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받아들였어요.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제가 보낸 시간이 5년 정도라서 그곳에 얽매일 정도로 시간이나 추억 등이 많이 쌓여 있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쉽게 떠나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민지 님은 서울보다 양양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셈이네요. 

김민지: 그렇죠. 이제 6년 차니까 그 시간을 넘어서고 있어요. 


카페 손님은 어떤 분들이 오나요? 

김민지: 지역 주민들도 오시만 아무래도 관광객이 좀 더 많아요.

김의종: 혼자 여행을 와서 카페에 왔다가 이듬해 다른 분을 데리고 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지역 분 중에는 단골도 좀 생기도 있고요. 물론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어?” 하고 놀라는 분도 있어요. 2층이라는 위치도 그렇고 간판을 크게 해 놓지도 않았고.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중에 좀 젊은 분들도 자주 오고요.  


양양으로 귀촌한 다른 청년들과 교류하시나요?

김의종: 저희 나이대 청년들이 모일 커뮤니티 공간이나 채널이 없잖아요. 각자 생업이 있으니까 여유 시간이 많지도 않고요. 카페 손님으로 찾아오는 귀촌인이 있긴 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분 중에 부부도 있고요. 그들은 서핑하다가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어요. 남편은 군부대 시설과 쪽에서 목공 관련된 일을 하고 아내는 사무직으로 회사에 다니는데, 그 부부는 여행 왔다가 만났지만, 이제는 원래 살던 지역민처럼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카페 운영 시간이 꽤 길고,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상황이니까 여유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관계를 맺기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민지 님은 사람과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었는데 양양에서는 그런 부분이 충족되지 않아서 더 힘들지 않았나요?

김민지: 1~2년 차는 진짜 힘들었어요. 그런데 3년이 지나니까 좀 괜찮아졌어요. 특히 겨울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춥고 그러다 보니 되게 우울하더라고요. 

김의종: 그래서 첫해와 다음 해까지는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친구들 만나러 갔다 왔죠. 그런데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좀 더 바쁘기도 하고 카페를 지키고 있어야 하다 보니 적응이 좀 된 거죠.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요. 아직 해소되지 않은 고립감은 있지만 책임져야 할 공간이 있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적응하고 있나 봐요. 사람을 만나는데 시간적 제약은 확실히 있어요. 대개 주말에 쉬는데 저희는 평일에 쉬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쉽지 않죠. 쉬는 날에는 둘이서 어디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요. 


두 사람의 관계가 복합적이잖아요. 부부이자 절친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인데 이게 쉽지 않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저도 남편이랑 공방 할 때 힘들었던 게 남편이자 절친이자 동료인데 그게 분리가 안 되니까 세 개 중에 어느 한 입장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 나머지 관계가 전부 영향을 받더라고요.

김의종: 굉장히 많이 영향을 받죠.

김민지: 카페 시작할 때부터 정말 많은 충돌이 있었어요. 

김의종: 가게 일로 다툼이 생기면 그걸 갖고 집으로 가잖아요. 해소되지 않는 감정을 또 이어가는 상황인데 다음날 같이 출근해야 해요. 이게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적응이 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없죠. 카페 운영에 있어서 다툼은 물론 아직도 가끔 있어요. 그래도 큰 다툼으로 발전하지 않아요. 


일이 힘들어서라거나 손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제삼자인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시나요? 

김의종: 지금 하는 일의 범주 안에서 누군가가 함께한다고 하면 득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이 정도 규모에서 둘이서 해나가는 게 가장 적절해요. 사적으로 아주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아직은 없거든요. 오랫동안 둘이서 해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사람과 일하면 오히려 좀 피곤할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사람과 부대끼는 걸 싫어해서요. 

김민지: 저도 카페 안에서는 둘이서 일하는 게 좋아요. 가끔 다툴 때도 우리 둘의 관계보다는 타인 때문에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어떤 경우에 의견이 달라서 다투게 되나요?

김의종: 지역이 크지 않으니까 카페를 찾는 손님이나 앞으로 방문할 손님이 서로 알고 지내거나 유대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곤란한 부탁을 받아도 싫은 소리나 아쉬운 소리를 하기 쉽지 않죠. 앞으로 살면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경우에 저는 빨리 부탁을 들어주고 그냥 잊어버리자 하는 편인데 아내는 좀 달라요.

김민지: 제가 보기에는 선을 넘는 언행인데 그걸 거절하지 못하더라고요.


민지 님은 여유 시간을 함께 보낼 만한 또래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나요?

김민지: 하죠. 그런데 사람이 없죠. (웃음)



지역 사회가 작아서 운신의 폭이 좁다는 생각을 하나요?

김의종: 수시로 느껴요. 카페를 방문한 손님과 얘기를 좀 나누다 보면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언행에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예를 들어 건너편 문구점 사장님, 바로 옆의 복권방 사장님 이런 분들이 손님으로 오시잖아요. 오늘은 제가 여기서 손님을 맞는 사장이었지만 내일은 제가 손님이고 그분들이 사장인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제가 겁이 많은 걸 수도 있지만 꼴사나운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자주 해요. 마트에 가서도 인사를 잘하려고 하고요. 서울에서 카페를 했으면 옆 가게 사장님도 저에 대해 관심을 안 가졌을 텐데 여기는 다르잖아요.


서울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양양에서 평균 소득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요? 하는 일에 걸맞은 충분한 소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김의종: 딱 우리가 하는 만큼 벌고 있다고 생각해요. 카페를 처음 오픈했을 때랑 비교하면요. 처음 1년은 적자였죠. 수익이 기대치보다는 3분의 1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희가 카페에서 소품도 판매하고 비치마켓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서 종합적으로 따지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저축을 많이 할 수 있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지만 쓸 돈을 쓰고도 조금은 남길 수 있는 수준이에요. 다만 비수기와 성수기가 확실하다 보니까 차이가 있죠. 그래도 다행히 여름에 관광객이 소품을 많이 사가기 때문에 코로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매출은 재작년에 비해서 2배 정도 성장했어요. 


코로나 상황이 좀 나아지면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김의종: 뭔가 새로운 걸 해볼까 하는 고민은 계속하고 있어요.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각자 하나의 업장을 맡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본인의 의지와 기획을 가지고 꾸려나가는 게 서로 각자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스갯소리지만, 그 편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득이 되지 않을까요? (웃음)

김민지: 저는 요즘 일식에 관심이 많아서 화롯불에 굽는 꼬치구이나 튀김류 음식 장사를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말에 비치마켓에 나가야 하니까 어렵죠. 마켓에 애정이 많아서 놓기가 좀 어려워요.  


두 분은 지금 삼십 대 중반, 후반이니까 한창 일할 나이인 데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계속할 수밖에 없죠. 이런 면에서는 지금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김의종: 앞으로도 계속 양양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양양에서 뭔가 하나는 이루고 싶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카페에 국한하지 않고, 모두가 인정해 주는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자존감이라고 해야 할까, 명예라고 할 수도 있는 어떤 욕망을 위해서죠. 소득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토박이 주민에 비하면 한계가 있더라고요. 물론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인맥이라고 할까 서로서로 도와주는 시스템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성향상 일부러 인맥을 만들면서까지 피곤하게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지금보다 조금 더 벌고 싶죠. 그래도 순리대로 차근차근히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김민지: 저희가 봐 둔 건물이 있거든요. 갖고 싶어 하는 건물이에요. 낙산 쪽에 있는 건데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인디 가수들이 와서 공연도 하고.

그 건물을 갖기 위해 좀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웃음)


그 공간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싶은지 좀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지: 공연이나 사진전 등을 해보고 싶어요. 카페를 하면서 이벤트 형태로 하면 좋겠다 싶어요. 

김의종: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인데 그래서 동화에 나오는 집 같기도 해요. 

김민지: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끔 보러 가요.

김의종: 저는 공간 기획을 해보고 싶어요. 마켓에 나가면서 만난 공예 작가들과 협업해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가에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김의종: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는 바닷가 지역도 자주 가고, 영월이라든지 내륙 지방으로도 가요. 아직 관광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노포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해요.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편이에요. 


그러면 양양의 문화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크게 아쉽지 않겠어요.

김민지: 초창기에는 굉장히 아쉬웠어요. 공연을 볼 수 없고, 영화관도 없었고. 이제는 적응이 돼서 없는 게 당연해졌어요.

김의종: 저도 영화를 엄청 많이 보는 편이었어요. 신작 영화는 다 찾아봤죠. 서울에서는 밤에 잠 안 오면 걸어 나와서 극장에 가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속초에 몇 번 보러 갔는데 오래된 극장의 습한 기운이 좋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한때는 넷플릭스에 빠졌었죠. 문화적인 부분에 결핍을 느끼는 건 콘텐츠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 콘텐츠를 즐기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떤 분위기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도시의 멀티플렉스에서 느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인파, 북적임 속에서 여유를 찾으려고 했던 건데 여기는 작은 영화관은 있지만 그런 분위기가 없으니까 욕망도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 같아요.



두 분은 아이를 낳아 키울 계획이 있으신가요?

김민지: 서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아기를 되게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양양에 와서 주변의 결혼한 분들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좀 달라졌어요. 친구들이 아이 낳고 우울증을 겪는 모습도 많이 봤고요. 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엄마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걸 보면서 남편에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죠.

김의종: 저도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양양에서 아이를 키울 때 걱정되는 환경이나 교육 문제에 대한 것을 포함해서요. 부모가 되면 아이를 위해서 좀 더 나은 환경으로 가려고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둘이서 이 정도 부딪히면서 사는 게 서로에게 좋은 것 같고요. 


부모님은 양양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김민지: 저는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않고 왔어요. 제가 서울에 있는 줄 알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오라는 늘 하는 이야기를 하시길래 양양으로 온 걸 이야기했죠. 당시 제가 공황장애가 심했을 때여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양양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했더니, 엄마가 놀라셨는지 별말씀이 없으셨어요. 마음 편하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죠.

김의종: 얼마 전에 장인, 장모님이 양양에 다녀가셨어요. 저희가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장인어른이 저와 따로 술 한잔하자고 부르셔서 “우리는 구세대라서 잘 모르지만 젊은 너희가 자기 일을 사부작사부작하는 게 보기 좋다, 열심히 해라”라고 하셨어요. 


두 분 다 서울에서 양양에 오기 전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이제 많이 회복하신 건가요? 

김민지: 버스를 타면 곧 내려야 할 정도로 심했을 때도 있으니까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직접 운전도 하니까요. 

김의종: 아내가 혼자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그 많은 터널을 지나서 운전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정말 많이 좋아졌죠. 양양의 환경 덕에 빨리 좋아진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서울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으면 어려웠겠죠.

김민지: 계속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새로운 곳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만족을 평가하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실현이라는 관점에 국한해본다면 양양에서 일하면서 사는 게 어떤가요?

김의종: 자아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기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일할 때는 명예욕도 있고 완벽주의자에 성격이 예민했기 때문에 계속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면 오히려 제 자아를 많이 잃었을 거예요. 사회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걸 위해서 무리했을 거예요. 작은 것이라도 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한 것도 그게 제가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거든요. 지금 양양에서 제 정체성이나 생각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자아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민지: 저는 일로만 봤을 때는 양양에는 의류 디자이너로서 일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게 아예 없잖아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좀 더 큰 지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여기서 직접 만들어서 판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요. 다만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싶지는 않아요.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요.  


어떤 스타일의 의류를 지향하시나요?

김민지: 바닷가니까 랩 원피스나 카디건, 로브 형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청년 귀촌인으로서 지역사회나 행정의 지원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을 텐데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김의종: 양양이 서핑으로 유명해지면서 젊은 귀촌인이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지자체에서 하는 지원은 귀농인에게 맞춰져 있어요. 주택 관련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살펴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이 대상이고요. 양양에 주택 임대 매물이 너무 없거든요. 귀촌 청년층이 가장 필요한 것이 살 곳이잖아요. 임대 관련 정보가 너무 없어요. 살 곳을 마련하지 못해서 오는 걸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한 달 살기만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요. 지자체 차원에서 부동산 관련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청년 임대주택이 됐든 폐가 수리 보수가 됐든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좀 개인적인 바람인데 이 작은 지역에서 임기 동안 군수님 얼굴을 한 번도 마주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워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주민들 50명씩만 모아서 면담하든 간담회를 하면 1년에 600명이잖아요. 양양 인구가 3만 명도 안 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주민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만든다고 해도 늘 모이는 기존 지역민 이야기만 듣게 되니까 새롭게 이곳에서 살게 된 군민으로서는 아쉬워요. 귀촌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커뮤니티도 없잖아요. 외로워하는 분들이 되게 많거든요. 지역 토박이 청년들과 귀농, 귀촌을 해서 양양으로 온 청년들이 융화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지자체에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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