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별 - 1

by 달곰

그것은 반짝였다 싶어 보면 희미하게 사그라졌고, 사라져 없다고 여기면 전보다 밝게 피어올랐다.

여우는 두 눈을 집중하여 완연하게 빛나는 움직임의 잔상을 따랐다. 사자를 보고 놀란 토끼의 동공같이 별이 먼 곳에서 반짝이며 크게 번졌다. 그러고는 이내 호랑이의 눈동자가 사냥감을 응시하듯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별은 힘차게 뛰는 심장처럼 커지고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다른 존재들이 가득했다. 그들의 틈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사라질 것 같아 여우는 걱정됐다. 여우는 숨을 죽이고 더욱 집중하여 눈으로 빛을 쫓았다. 처음에는 흔한 밤하늘 별이라 여우는 생각했다. 그는 밤하늘에 수놓은 별들이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여러 날 경험했다.

아득한 밤하늘을 보면 종종 까마득한 별들이 여우가 땅을 디딘 네 발아래로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상상을 했다. 어느 날엔 별빛이 잔잔한 호수 물결에 내려와 반짝이며 춤을 추는 해님처럼 일렁였다. 하늘의 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물의 머릿수보다-이 땅과 이 옆의 땅과 그 옆에 땅의 짐승 머릿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날에는 각자가 뽐내듯 빛을 냈다. 오늘같이 머리 위로 별들이 아득한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밤이면 여우는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이 무성한 존재들이 여우를 둘러싸 함께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여우의 맘 속에 아늑함이 되어 그를 위로하듯이 몸 안에 번졌다. 그러면 여우의 마음 안에서 살며시 고개를 들고 일어서던 외로운 마음이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움츠러들었다.


“하늘의 별 중 어딘가에 아빠가 있단다.”

아직 주둥이가 여물지 않아 짤막하던 어린 시절 아이는 엄마 여우에게 물었다. 저 하늘의 별은 무엇이고 왜 반짝이는지, 어찌하여 하늘을 가득 채우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우는 뜬금없이 잊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미 여우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는 밤하늘을 올려 보면 된단다.”

어린 여우의 동물적 감각이 미숙하여 세상을 채 인지하기 전에 아빠는 이미 곁에 없었다. 그에게 가족은 오로지 엄마가 전부였다. 아이에게 엄마가 한 낮에 머리 위를 내려 쬐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면 아빠는 발 밑에 드리운 그림자 같았다. 털끝만 한 추억조차 기억하지 못했기에 아이는 아빠가 그립다는 감정을 형성하지 못했다. 아들은 아빠가 그립다기 보다 그를 보고 싶었다. 아니 알고 싶고, 궁금해했다. 아빠라는 존재를 알고 싶었고, 그 존재가 가지는 의미가 궁금했다.

여우는 바람이 쓸어내리는 푸른 들판을 지나다 경험이 많아 지혜롭다는 코끼리 무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들은 짐승의 생명이 다하면 육체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을 곳을 정해놓고 삶이 마지막이 다가오면 늙은 코끼리는 그곳으로-코끼리 무덤이라 불렀다- 향했다. 물과 육지의 삶을 모두 살아가는 악어도, 일생을 하늘에서 보내는 독수리들도 죽으면 육신은 땅으로 떨어졌다. 여우는 생각했다.

‘결국 육지에서 태어난 동물의 몸은 죽어서 땅으로 향하는구나.’

아들은 자신이 죽음에 관한 다른 해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왜 하늘이 별이 되었다고 말을 할까? 정말로 그가 죽어서 별이 되었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어린 아들을 달래기 위해 얘기일까.’

아이는 궁금한 바를 엄마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들의 눈에 엄마는 이미 떠나간 존재에 대해-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녀는 확실하게 아빠 여우가 하늘이 아닌 다른 육지 생명처럼 땅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있다고 아들은 믿었다. 그녀는 좀처럼 밤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후로도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지만 아들은 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녀와 나누지 않았다.


여우 가족은 타이칸 왕국에서 대대로 삶을 이어왔다. 타이칸은 여우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 전체를 지배하는 우두머리 호랑이 이름이다. ‘타이칸’이란 명칭은 단순히 호랑이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타이칸은 이 일대를 다스리는 왕의 이름이자, 그의 종족인 호랑이를 지칭하였고 그가 다스리는 이 일대의 땅 그 자체를 상징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짐승들은 왕을 타이칸이라 부르는 동시에, 그가 통치하는 이 땅의 이름 역시 ‘타이칸’ 혹은 ‘타이칸의 왕국’이라 지칭했다. ‘타이칸’이 지배하는 영역은 ‘포효하는 세 봉우리 산’ 정상에서 시작한다. ‘포효하는 세 봉우리 산’은 봉우리 모양이 호랑이 세 마리가 경쟁하듯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뛰어드는 형세를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랑이의 커다란 주둥이와 단단한 이빨이 하늘에 닿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솟아오르는 웅장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면 대자연의 의지조차 타이칸의 권력을 인정하여 선사하는 선물같이 느껴졌다. 세 봉우리를 바라보며 타이칸의 짐승들은 자연스레 이 땅의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되뇌었다.


포효하는 세 봉우리에서 시작되는 산맥이 양쪽으로 뻗어나가 타이칸의 왕국을 끌어안았다. 해님이 산의 한쪽 끝에서 고개를 들고 떠올라 반대편으로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비추는 모든 지역이 그의 통치 아래 있었다. 촘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맥을 날개 없는 짐승이 넘나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육지를 발로 딛고 살아가는 짐승들이 이 땅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세 봉우리를 등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호랑이의 영향력이 희미해지는 왕국의 경계, 그곳을 동물들은 ‘타이칸의 끝’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불타는 세 봉우리 산’에서 쫓기는 가젤의 뜀박질로 4일, 먹이를 쫓는 늑대의 뜀박질로 3일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달할 수 있을 만큼 멀리 있었다. 그곳에는 세상 가장 먼 곳을 바라본다는 기린도 앞을 내다보기 힘든 끝을 모르는 갈대밭이 이어졌다. 기린같이 커다란 동물들은 그나마 어떻게든 길을 더듬어라도 본다면 여우 같이 작은 짐승들은 한번 잘못 갈대밭에 들어서면 빠져나오는 법을 몰랐다. 운이 좋게 갈대밭을 살아서 나아가면 다시 늪지대가 나타났다. 늪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코끼리마저 기꺼이 집어삼킨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렇듯 타이칸의 끝에 발을 들이는 짐승에게는 삶의 선택지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 안에서 생명을 보존하여 살아가다 다시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기회란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 여우는 ‘타이칸의 끝’의 위험성을 몇 번이고 어린 여우에게 상기시켰다.

“타이칸의 끝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짐승은 없단다. 그곳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렴. 행여나 장난으로라도 발을 들이면 안 된다. 알겠니?”

어떤 동물들이 무슨 이유로 타이칸의 왕국을 떠나고자 하는지 여우는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한단 말인가? 어떤 동물이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지 어린 여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이 땅을 떠나가길 희망하는 동물은 존재할 수 없었다. 타이칸 왕국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토지는 햇살은 가득 담아 비옥하고 물은 모든 생명체가 풍요롭게 사용할 만큼 풍부했다. 자연의 축복이 담긴 땅과 물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다양한 생명들이 뿌리를 내렸다. 대부분의 짐승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자신도 언젠가는 다른 생명체의 충실한 양분이 되었다. 야생 동물의 삶이 험하고 때로는 잔인했지만,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원리였다. 동물의 세계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죽음의 위기가 편재했다. 하루에도 생과사의 경계를 몇 번이고 넘나 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수명의 길고 짧음을 떠나 배불리 행복한 인생을 살다 갈 수 있었다. 간혹 다른 지역에서 타이칸의 땅으로 넘어온-운이 좋아 죽지 않고 살아서 이 땅을 밟은- 동물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굶주림을 경험한 그들은 타이칸의 삶에 크게 만족했다. 주변 대부분의 짐승들이 현재의 삶에 순응하고 살아가기에 아들은 왜 엄마 여우가 불필요한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그녀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효심으로 성실하게 엄마가 원하는 답을 건넬 뿐이었다.

“그쪽은 가 본적도, 갈 생각도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다. 그래도 약속해 주렴, 가지 않겠다고.”

“…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엄마.”

“약속한다고 말해 주겠니?”

“… 약속해요. 가지 않을게요.”

동일한 주제의 유사한 대화가 여러 차례 반복되어도 적당한 때가 오면 그녀는 타이칸의 끝 너머의 위험에 대해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고, 언제나 아들의 다짐을 받아 냈다. 그녀에겐 언젠가 아들이 필연적으로 경계 너머로 발길을 향할 것이라는 불안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아들을 사랑하는 어미의 본능에 기인한 것인지 단순한 우려였는지 그녀는 몰랐다. 반드시 다가올 그날을 조심하라고 그녀 본능이 몸 안에서 끊임없는 주의를 짖어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우는 자연스레 밤하늘과 빛나는 별을 보는 즐거움을 잃었다. 별을 가득 담은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겼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여우는 꾸준히 밤에 활동을 했다. 달님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 해님과 경쟁하듯 월광을 비추는 날에도,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 온 세상을 암흑으로 뒤덮인 날에도 밤이 오면 여우는 나가서 사냥을 했다. 그는 언제나 달빛 아래에서 민첩하게 활동했다. 사냥을 할 때는 언제나 혼자 움직였다. 먹이를 찾아 배가 차고 달이 지면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미 여우 역시 해가지면 지체 없이 굴 밖으로 향했고 어디에선가 허기를 채우고 돌아왔다. 둘은 서로 먹이를 공유하지 않았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도 동이 트는 새벽녘이 되면 다시금 보금자리로 돌아와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