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날 타이칸을 만나 아무런 소득 없는 대화를 나눴다면 오늘 샤프먼을 대면해 얻은 건 생명을 소중히 하고 여우의 본분대로 살아가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 엄마 여우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마땅히 들려줄 이야기를 찾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다른 동물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오직 나를 이해해 주는 건 우샤이뿐인데… 그와는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답답하기만 하다.
오소리 굴에 들어서니 전날 여우가 잠을 청하며 다진 흔적이 여전히 땅에 남아있었다. 여우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동일한 자세로 몸을 뉘었다. 전날 공포에 달래던 여우와 육체의 피로가 쌓인 오늘의 여우가 포개어졌다. 긴장감이 풀어지자 겹겹이 쌓여 있던 피로와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여우는 낮게 신음을 내며 자세를 바로 누웠다. 아직 초저녁인데 여우는 몸을 부릴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오늘 하루를 되새겨 보고 싶었지만 이내 깊은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여우는 포효하는 세 봉우리 가운데 정상에 서 있었다. 봉우리 밑으로 원숭이들이 사는 절벽처럼 층층이 돌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양 옆의 봉우리에도 돌 층계가 끝없이 자리 잡았다. 봉우리 맨 하단의 층계에서부터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원숭이들이었다. 끝도 없이 많은 원숭이가 산 정상을 향해 밀려 올라왔다. 눈에 초점을 잃은 채로 모두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모두가 이성을 잃은 듯이 보였다. 여우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지금 여우가 서있는 최상층의 자리였다. 쉼 없이 밀려오는 원숭이들을 하나하나 밟아 다니며 물어뜯어 절벽 아래로 내던졌다. 하늘을 날아 세 봉우리를 넘나 들며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여우의 이빨 아래 생을 달리 했다. 어느덧 절벽에는 원숭이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그들은 죽자마자 피부가 썩고 장기가 말라 들어갔다. 원숭이들은 빠르게 해골이 됐다. 세 봉우리에 하얀 눈이 가득 내린 듯 백골이 쌓였다. 해골 위에 여우는 네 발로 걸었다. 기분 좋은 땀이 흘렀다.
여우가 잠에서 깨어 주변을 살피니 아직 어둠이 깊은 밤이었다. 정수리 언저리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기분 좋게 들판을 달리고 흘리는 땀방울 마냥 여우는 몸이 개운했다. 여우의 머릿속에 하얀 해골이 가득 쌓인 산 봉우리의 모습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예전에 엄마에게서 들은 코끼리들의 무덤이 아마 그와 같을 거라 여우는 생각했다. 아직 몸의 피로가 남아있어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여우는 금세 다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