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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an 16. 2023

굿바이 키노책방 1

소독가

편집자주 / 이 글은 영화서점 '키노책방'을 준비하고, 운영하고, 끝냈던 이야기입니다. 순서는 시간순이 아닙니다. 나 조차에게도 잊히는 것이 싫어,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남깁니다.


서점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은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책이 팔리지 않아 월세를 내지 못하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다. 책방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정을 하고 지금까지 날 가장 괴롭히는 고민은 '내가 과연 책을 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였다. 


어릴 때부터 유독 다독가인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인데도 이들은 나랑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마냥 많은 책을 읽었고, 내 눈엔 참 간지 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난 너무 x100 '소독가'이었다. 더구나 기자를 하는 지난 몇 년 간은 읽은 책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루는 마감하고 종로서 옆 막걸리 골목에서 선배랑 술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선배, 하루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매일 기사며 보도자료며 너무 봐서 그런가 집에 가면 책은 죽어도 안 잃더라. 카톡도 읽기 싫어"


기자타이틀로 살던 시절엔 새벽에 기자실로 출근해 매일 아침에 나오는 종이신문을 싹 다 읽었다. 그리곤 인터넷 기사와 매일 수백 통씩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읽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읽고 쓰고 읽고 쓰고 반복하다 퇴근하면 핸드폰을 꺼버리곤 자버리곤 했다. 


이러한 내가 서점을 한다니, 뭔가 모순 같았다. 솔직히 우리가 생각하는 책방주인의 클리셰적인 모습이 있지 않은가. 수수한 옷차림에(이건 지금 내 모습이랑 크게 다르지 않고) 다도를 즐기며 (차는 마시지도 않고, 카페인+당 가득한 커피만 마심) 책을 내 한 몸처럼 즐기는(술은 한동안은... 허허) 그런 모습 말이다. 혹은 책 제목이나 작가이름만 말하면 이야기를 척척 나누는 그런 사람 말이다. 아니면 영화 <노팅힐>의 휴 그랜트 같은 이미지 일 수도 있고. 


그래도, 책은 잘 몰라도 영화는 그래도 꽤 아니깐. 난 영화서점을 할 거니깐, 괜찮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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