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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un 11. 2024

영화 <졸업> 속 얼굴로 본 인간의 미친 욕망

여기서 '미친'은 극적인 표현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이 ‘미친’ 영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써야 할까.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를 데리고 도망쳐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안 본 사람은 없다는 작품.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1967년 개봉한 마이크 니콜스감독의 영화 <졸업>이다.


영화 <졸업>은 196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로, 주인공 벤자민 브래독(더스틴 호프만)이 대학 졸업 후 겪는 정체혼 혼란과 욕망과 불안을 다룬다. 개봉한 지 6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시네필들에게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학도한테 지금까지 계속 분석되어오고 있는데 아마 그 이유는 벤자민의 심리를 얼굴과 주변 환경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서가 아닐까 싶다.


1960년대 미국은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 ‘미친’ 음악의 시대였다. 


이 영화가 단순히 스토리로 미친 영화가 아니라 영화사적으로 미친 영화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미국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미국은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많은 젊은이가 징집되었고, 이에 대한 반전 운동이 대학가 중심을 확산하였다. 전쟁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당시 젊은 세대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흑인 민권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같은 지도자들이 이끄는 비폭력 저항 운동은 인종 차별 철폐와 흑인의 권리 신장을 목표로 했다. 1964년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 등의 중요한 입법이 이뤄졌다. 


또한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기성세대와 자유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하였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권위와 기대에 반항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이는 오늘 이야기하는 영화 <졸업> 벤자민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당시 1960년대는 문화적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같은 밴드가 인기를 끌며 대중음악과 문화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히피 운동은 평화와 사랑을 외치며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에 도전했었다. 이러한 미국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봉한 <졸업>은 당시 많은 젊은이가 느꼈을 불안과 방황을 대변하는 작품이 되었고, 지금 오늘날까지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감독이 벤자민 얼굴만 보여준 것엔 다 이유가 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인물의 표정연기가 좋다"는 평가를 한다. 이건 그냥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은 것이 아니다. 감독이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내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영화 첫 장면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 'The sound of silence'으로 더 유명 하지만, 이 장면에서 벤자민은 비행기에서부터 집까지 돌아가는 길 내내 피곤한 표정이다. 피곤한 표정은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쁨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러한 벤자민의 심리가 보이는 얼굴을 클로즈업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졸업 기념 파티가 열리고 있는 집에서 벤자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방 안 어항 앞에 앉아있다. 곧이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벤자민의 얼굴을 가린다. 이는 벤자민의 감정을 숨기고 당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벤자민을 이끌려고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계속되는 벤자민의 불안한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은 관객들로 하여금 벤자민이 내적 갈등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벤자민이 로빈슨 부인과의 불륜 관계 변화에 따른 얼굴표정도 굉장히 흥미롭다. 이번 글에서는 그 얼굴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순 없지만, 불안함으로 계속 무표정이었던 벤자민이 로빈슨 부인과 불륜관계에 빠져들 때 그의 얼굴은 또 다른 차원의 감정을 드러낸다. 초기의 당황스러움과 호기심, 그리고 점차 드러나는 쾌락과 죄책감이 표정을 통해 세밀하게 표현된다. 


친구 아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로빈슨 부인의 얼굴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미소는 벤자민에게서 느껴지는 젊음과 욕망을 자극하며 동시에 자신의 권태로운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자신의 딸 일레인이 벤자민과 데이트를 나가는 순간 자신의 남자를 빼앗겼다는 허무함과 공허함 감정 또한 얼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편과 일레인, 벤자민이 모두 모여있는 거실에서 로빈슨 부인은 재미있는 텔레비전과 잡지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주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벤자민에만 시선이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 보이는 로빈슨 부인의 얼굴에는 공허함을 넘어서 슬픔까지도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병'에 걸린 벤자민, 그래도 넌 집에 수영장이 있구나


감독은 미장센을 통해 벤자민의 심리 상태를 더욱 강화한다. 벤자민의 방은 영화에서 그의 심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방의 어두운 조명과 단조로운 색감은 그의 우울하고 불안한 상태를 반영한다. 로빈슨 부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호텔 방 역시 중요한 미장센 요소다. 호텔 방 또한 계속해서 어두운 조명을 유지하는데, 이는 폐쇄적이고 빛이 없는 공간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은 금지된 영역임을 상징한다. 이 공간에서 벤자민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신의 욕망에 몰두하게 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죄책감과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들은 호텔 방의 밀폐된 구조와 어두운 조명이 강화한다. 


졸업 후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의 생일을 맞이해 부모님은 수영장에서 파티를 준비한다. 벤자민은 파티에 앞서 계속해서 아버지와 대화를 요청하지만, 아버지는 이를 무시하고 초대한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생각하며 얼른 파티에 나타나라고만 재촉한다. 결국 잠수복을 입고 등장한 벤자민은 제한된 소리와 시아인 상태로 수영장에 들어간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당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벤자민의 모습은 영화 전반을 통해 보여주는 어항 속 물고기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과 은밀하게 만나게 되고 이후 수영장에 벤자민이 수영장에서 물에 떠 있는 장면은 그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물속에서 무기력하게 떠 있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을 나타낸다.



벤자민은 1960년대 미국 혼란과 방황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영화 속 벤자민의 욕망과 불안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그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를 통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만, 이에 따라 더 큰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복잡한 감정들은 이러한 내적 갈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벤자민이 일레인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의 욕망과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다. 그는 일레인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실현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가족과 사회적 기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니콜스는 벤자민의 얼굴과 주변 환경을 통해 그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특히 일레인의 결혼식 장면에서 벤자민의 얼굴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 <졸업>은 단순히 부모님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의 딸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정신나간 20대 남자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벤자민이라는 인물의 표정, 그리고 이를 둘러싼 공간의 시각적 요소로 심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시청자에게 인물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이 복잡한 감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가슴속에 숨겨놓은 욕망과 불안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인간 심리를 깊게 조명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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