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역지사지(易地思之), ‘틀림’이 아닌 ‘다름’을 배우는 시간
3월 초, 아직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지도 못했는데 우리 반 아이가 다가와서 배시시 웃으며 물어본다. “선생님,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무슨 뜻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정도면 ‘역지사지’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텐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친구가 말해줬는데요. 역지사지는 ‘역으로 지×을 해줘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라는 뜻이래요.”
만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담임 교사에게 낯을 가릴 법도 한데 굳이 나에게 와서 비속어를 쓰는 저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자기가 한 말이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교무실 밖을 나간다.
그해 우리 반 급훈이 ‘역지사지’였다. ‘역지사지’는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본다.’는 의미이므로 그 친구가 한 말이 의미상으로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일 수는 있어도 뭔가가 씁씁했다.
‘역지사지’는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비롯된 말로, 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시대에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공자(孔子)가 그것을 어질게 여겼다. 안자(顔子)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끼니를 때웠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난을 견디지 못하였는데, 안자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가 그를 어질게 여겼다.
맹자가 말하기를 우와 후직과 안회는 도리가 같다. 우왕은 천하 사람 중에 물에 빠진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를 빠뜨린 것과 같이 생각했으며, 후직은 천하 사람 중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굶주리게 한 것처럼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이 급하게 백성들을 구한 것이다. 우왕과 후직과 안자는 처지가 바뀌었어도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는 나중에 중국 하나라의 왕이 된 사람이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우왕은 임금이 되기 전에도 덕이 있고 영민하며 모범적인 사람이었으며, 당시 큰 홍수 때문에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왕의 명으로 치수(治水) 공사를 진행하였다. 13년 동안 치수 공사를 하면서 온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그동안 세 번 집 앞을 지났지만 집에 들르지 않고 백성들을 위한 치수 공사에 몰두했다고 한다. 후직은 순임금을 섬겨 농업을 장려하여 농경의 신(神)으로 숭배받는 인물이다.
안자는 공자의 제자인 안회로,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빈곤했으나 도덕과 수양을 최선의 가치로 사는 삶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모습을 보였다.
맹자는 치수에 성공한 우와 농경의 신인 후직, 안빈낙도의 대명사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담임을 할 때 급훈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꼭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지켰으면 하는 것을 선택하는 데 그중 자주 썼던 급훈이 ‘역지사지’이다. 그런데 역지사지를 급훈으로 하고 나니 아이들에게 뭔가를 시킬 때 아이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입장 바꿔서 선생님이 저라면 하고 싶으시겠어요?”
예를 들면 인천국제고에서 근무할 때 국제청소년포상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 중 매주 화요일 5교시에 학교 뒷산인 백운산을 등반하는 신체활동이 있었다. 교사도 학생들을 인솔하여 함께 산에 올라야 했다. 어느 날은 너무나 가기가 싫어서 교무실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는데 몇 명이 찾아와서 배가 아프다, 주말에 다리를 다쳤다 이런저런 핑계로 산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 정도로 못 참아? 다리가 부러졌어?”라고 말을 하는데 한 명이 “솔직히 선생님도 가기 싫으시죠?”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나는 그 친구와 손을 꼭 잡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하기 싫은 것만 시킨 것은 아니었는데,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면 또 이런 말을 한다.
“입장 바꿔서 선생님이 저라면 안 하고 싶으시겠어요?”
인천국제고는 기숙학교인데도 매점이 없다. 한참 먹성이 좋을 때라 신청자에 한하여 야식을 제공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피자, 치킨, 떡볶이 등 배달 음식을 시켜서 몰래 먹고는 한다. 아이들이 야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 만은 당시 기숙사를 책임지고 있던 부장 교사로서 아이들이 대충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기숙사에 쥐와 벌레가 꼬이고 음식물 썩는 냄새가 나서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기숙사의 특성상 배달 음식을 금지했던 규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음식을 배달시켜 몰래 먹고는 했다. 나 역시 규정을 지켜야 하고 음식물과 관련한 민원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배달 음식을 단속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도 지금 치킨 드시고 싶잖아요.” 당연히 먹고 싶다. 특히 교사도 학교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 몰래 먹는 치킨이 더 맛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하지만 규정은 규정인지라 먹지 못하게 했다.
‘역지사지’를 급훈으로 자주 사용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가 매일 교실을 들어갈 때 보고 가슴에 품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시킬 때 항상 상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했다. 나라면 이걸 하고 싶을까? 그러다 보면 시키는 일을 하지 않고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은 하기 싫어하는 일은 시키지 않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하고 싶은 것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오면 어떤 이유에서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즐겁게 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자공이“한 말씀으로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어하는 일일 테니 그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남도 하고 싶은 일일 테니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볼 때야 가능한 것이므로 공자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서(恕)’는 곧 ‘역지사지’라 할 수 있다.
옥편에서 ‘서(恕)’를 찾으면, ‘용서하다’, ‘어질다’의 의미이다. 서(恕)는 ‘如(같을 여)’와 ‘心(마음 심)’이 결합된 형태의 한자어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서’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기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고, 타인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이 어진 마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서’를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라고 한 것은 항상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지사지의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항상 나와 타인은 서로 다르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국어를 전공한 교사라 학생들이 무심결에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흘려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가장 귀에 거슬리는 말은 ‘난 너와 생각이 틀려’라는 말이다.
예전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생각이 틀린데요.”
“틀린데요가 아니라 다른데요.”
“네,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데요, 설명하신 삼단 논법에서 전제가 다른 것 같아요.”
“전제가 다른 게 아니고 틀린 것 같아요.”
“네, 전제가 틀려서 결론이 틀린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아이들은 ‘틀리다’는 말과 ‘다르다’는 말을 혼동하여 쓰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틀리다’를 찾으면,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의 의미이고,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따라서 ‘난 너와 생각이 틀려’나 ‘우리는 성격이 틀려’는 ‘난 너와 생각이 달라’와 ‘우리는 성격이 달라’로 바꿔 써야 한다.
‘다르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틀리다’로 쓰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놓고 나와 생각이나 성향이 다른 것을 단지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틀리게 여기는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받아 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또한 나와 너의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틀리다’는 말보다는 ‘다르다’는 말이 먼저 나올 것이고,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상대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온라인 신문 기사를 보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초등학생의 시험 답안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하여 클릭을 했다.
사진에는 ‘헤헤, 맡있겠다. 나 혼자 먹어야지’라는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찾아 바르게 고치는 문제였다. 문제를 푼 학생은 답안에 ‘나 혼자’를 ‘같이’로 수정했다. 출제 의도가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바르게 고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맡있겠다’를 ‘맛있겠다’로 고치지 않아 오답으로 처리가 되었지만, 시험 문제는 맛있는 음식을 ‘혼자’가 아닌 ‘같이’ 먹겠다는 초등학생의 따뜻한 마음까지는 품지 못하는 문제였다. 비록 점수는 얻지 못했지만, 맛있는 것을 나와 나눠 먹지 않고 혼자 먹고 있는 친구를 보면 속상할 것이기에 나는 맛있는 것을 친구와 같이 먹겠다는 초등학생의 따뜻한 마음이 진정 ‘역지사지’의 마음이 아닐까. 초등학생의 오답에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