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회복탄력성, 소중한 존재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 등의 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한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활용하여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학습 잠재력, 핵심 인성 요소를 서류와 면접으로 심사하여 창의적이고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고등학교 입학전형 방식이다.
자기주도학습 전형 입학 전형위원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국교육개발원장이 인정한 일정 교육을 이수하여야 한다. 나는 인천국제고등학교로 옮긴 2015년에 입학 전형위원 자격을 취득하여 인천국제고등학교 입학 전형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전문직원으로 전직한 이후에도 인천에 소재한 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와 하늘고등학교에 입학 전형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자기주도학습 전형 2단계인 면접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영어 내신 성적과 출결 등을 평가하는 1단계를 통과한 학생들이라서 중학교에서 우수한 학업 성취도와 성실함을 이미 인정받은 학생들이다. 따라서 나는 입학 전형위원으로 학생을 평가할 때 학업 성취도나 성실성보다는 학생들의 회복탄력성을 깊이 관찰한다.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역량이 회복탄력성이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스트레스, 실패, 시련, 변화와 같은 역경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힘을 의미한다. 역경과 실패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육’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은 물론 요즘은 직장인들도 엄청난 경쟁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내가 근무했던 인천국제고등학교와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는 각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과 선생님들의 높은 관심으로 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진학했다가 순식간에 자신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지는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어느 날, 우리 반 한 아이가 급식도 먹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길래,
“공부도 중요하지만, 밥은 먹고 해야지.”라고 말을 건냈더니,
“선생님, 밥은 먹고 사는 문제지만요, 공부는 죽고 사는 문제에요.”
라는 답을 해서 어리둥절했던 때가 있다. ‘공부를 안 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테고, 오히려 밥을 안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공부가 ‘죽고 사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시험에서 목표한 성적을 얻지를 못하면 실패에 대한 좌절감으로 너무나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봐 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잘 털어내고 다시금 힘을 내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소위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을 지도할 때 특히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회복탄력성은 미국 심리학자 에밀리 워너(Emily Werner)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들을 40여 년간 연구하면서 알려진 심리학 용어다. 하버드대에서 아동 발달을 연구한 지니 킴은 회복탄력성을 좌우하는 요소로 타고난 기질, 자존감, 대인 관계, 소통 능력, 대처 능력을 손꼽는다. 타고난 기질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상적인 습관으로 길러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근육이 자주 사용하면 발달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것처럼 마음 근육인 회복탄력성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체득한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이다.
실패로 인해 좌절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는 ‘너야말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라’라는 말로 위로를 한다. 하지만 좌절감에 빠진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해보면 좌절을 이겨낸 여러 경험과 함께 들려주는 이런 말들은 상담하는 그 순간에는 위로가 될 지 모르지만, 혼자 자신의 실패를 반추하는 시간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한다. 실패에 대한 원인과 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배제한 채 긍정적인 말과 위로는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서 나와 상담한 말을 곱씹어봤을 때 ‘실패한 내가 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야?’, ‘이런 실패를 한 나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좌절감에 빠지는 쳇바퀴 같은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지금 순간의 감정의 늪에서 한걸음 나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친구를 바라보듯 지금 현재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 중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된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마주 볼 수 있고, 부정적인 감정을 명확하게 마주 볼 수 있어야 그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을 때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자신이 우울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지금 현재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고 그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그 원인을 찾았다면 정말 친한 친구에게 하듯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에게 조언하면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 그것을 찾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그 문제를 찾을 사람도 해결할 사람도 자신인 것이다. 시험을 망친 원인이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 공부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라면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만약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시험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정말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어떤 조언을 해야 할까? 분명 조언 보다는 위로의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진심을 다해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진정한 조언과 진심을 다하는 위로가 될 것이고, 자신으로부터 그런 조언과 위로를 받게 되면 지금 느끼는 좌절감을 떨치고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적절히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도 ‘지각진퇴(知覺進退) 진퇴유절(進退有節)’이라 하여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했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방법으로 가장 좋지만 어려운 방법은 힘들어도 다시금 달려야 할 때와 게으름을 피워야 할 때를 적절히 구분하는 것이다.
‘농성(籠城)’이라는 말이 있다. ‘농성’은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 수나라 양제가 113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고구려는 요동성에서 장기적인 농성 전략으로, 밤을 틈타 기습적인 공격을 하며 수나라가 지쳐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수나라는 요동성을 점령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자 곧 닥칠 우기(雨期) 이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요동성을 포위한 채 무리하게 평양을 공격하다 을지문덕 장군에게 살수에서 대패를 하게 된다.
때로는 힘든 상황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아이들의 책상에 제일 많이 붙어 있는 문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문구는 유대 경전 주석지인 미드라시, 또는 페르시아 지방의 우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 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간곡히 도움을 청한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글귀를 적어 넣어 왕에게 바치자, 다윗 왕은 흡족해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사실 이 글귀는 “기쁜 상황도 지나가니 함부로 교만하지 말고, 슬픈 상황도 지나가니 낙심하지 말고 항상 의연한 태도를 가져라”라는 의미이지만, 현재의 슬픔이나 고통 또는 안 좋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 잊혀질 것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기쁘고 행복한 상황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지나가야 할 상황은 힘들고 낙심한 상황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버티는 것조차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말로, 잘하는 사람을 더욱 격려하거나 분발하도록 다그치는 비유지만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 말에 채찍을 가하면 그 말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물러나야 할 때임을 알고 게으름을 피워야 한다.
데번 프라이스의 『게으르다는 착각』에서 ‘많은 사람이 경제적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없이 사는 것은 다 그들의 탓이라고 쉽게 말한다. 이런 관점은 우리 자신의 한계를 혐오하게 만들어 피곤함이나 쉬고 싶은 욕구를 실패의 신호로 보게 만들었다. 더불어 한계나 경계 없이 계속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력한 내적 압박감을 갖게 했다.’고 하며 게으름은 곧 죄악이라는 관념은 청교도 윤리에서 비롯되어 게으름을 도덕적 결함이자 개인의 타락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했다. 나아가 미국의 부유층이 노예를 부리기 위해 노동윤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다.’라는 인식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합리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작가는 “‘게으른’ 행동들이 수세기 동안 나쁘게 취급됐지만, 사실 나쁠 것도 해로울 것도 없다. 빈둥거리기는 삶의 정상적인 일부다. 맑은 정신과 건강을 유지하려면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게으르고 싶은 마음은 더 많은 도움과 휴식이 필요하거나 해야 할 일을 줄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알리는 강력한 내면의 경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음속에서 스스로에게 ‘게으름’의 신호를 보낸다면 한없이 게을러 보는 것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게으름을 통해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찜찜하고 불안한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결국엔 죄책감과 압박에 시달리다 자책하게 됨으로써 제대로 게으른 시간을 향유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게으름’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게으른 시간’을 보내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침대에 뒹굴대거나 잠을 자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게으른 시간’은 딴짓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어야 한다. 공부로 인한 좌절감을 겪고 있다면 공부가 아닌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로 인한 번아웃이 왔다면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딴짓’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딴짓은 달리기다. 2024년 일본 스쿠바대 연구진이 달리기의 즉각적인 뇌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에게 단 10분간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달리기를 시킨 후 색상과 단어의 불일치를 인지하는 스투룹 검사(Stroop Test)를 실시했다. 그 결과 달리기 전보다 반응속도가 뚜렷하게 빨라졌다. 동시에 뇌혈류를 측정하자 뇌의 핵심 중추인 전전두엽 피질 부위로 향하는 혈류량이 증가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달린 뒤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반응했으며, 스쿠바대 연구진은 달리면서 몸의 균형과 힘을 조절하기에 전전두엽이 더 활발히 작동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우울증 환자 156명을 대상으로 약물치료 그룹과 달리기 그룹으로 나누어 4개월 동안 효과를 비교했는데, 그 결과 달리기 그룹의 우울증 개선 효과는 약물치료 그룹과 거의 동일했으며, 10개월 뒤 재발률을 조사한 결과 약물 치료 그룹의 재발률이 38%인데 반해 달리기 그룹의 재발률은 8%에 불과했다. 즉, 달리기는 일시적인 기분 전환이 아니라 근본적인 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는 네이퍼빌 고등학교와 ‘0교시 체육’을 통해 달리기가 학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네이퍼빌 고등학교는 수업 시작 전 아침 7시 1.6km를 전력 질주하게 하고 바로 이어서 수학과 과학과 같은 어려운 과목의 수업을 한 결과 199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과학 성적 세계 1위, 수학 성적 세계 6위를 거두었다. 이에 하버드 의대 존 레이티 교수는 “달리기를 하면 뇌는 학습할 준비를 한다.”고 하며 달리기로 뇌로 향하는 혈액이 증가하여,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된다. 하지만 뇌세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습이라는 자극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달린 직후 어려운 수업을 듣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달리기는 직접적인 학습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달리기라는 딴짓을 하는 동안 뇌는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통증을 완화하며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뇌에서 분비된 이 물질은 좌절감에 빠진 감정을 조절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여 회복탄력성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이다.
브루잉 효과라는 것이 있다. ‘브루잉(Brewing)’은 ‘(맥주나 커피를) 끓이고 우려낸다.’는 뜻으로 브루잉 효과란 어떤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잠시 의식적인 노력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때, 마치 잘 우러난 차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불현듯 떠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 아르키메데스는 헤론 왕에게서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며칠 밤낮을 고민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목욕하러 욕조에 들어간 순간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를 외친 이야기가 바로 브루잉 효과이고 딴짓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지각진퇴(知覺進退) 진퇴유절(進退有節)’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논어』에서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써주면 나의 능력을 펼쳐 행하고 나를 버리면 나의 능력을 감추고 은거해야 하니 오직 나와 너만이 이 도를 갖추었구나.”
라고 하며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공자 자신과 가장 아끼는 수제자였던 ‘안연’ 두 사람만이 그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했을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그때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히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증자와 같은 성현도 날마다 세 가지로 반성한다고 하였다.
증자가 말씀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가? 친구와 더불어 사귐에 있어 믿음성이 없지 않았는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는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좀 더 버틸 여력이 있어 버텨보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게으름을 피워야 할 시점인지를 스스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고 물러남을 스스로 아는 힘이야 말로 진정한 회복탄력성을 만드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몸의 근육은 크게 속근근육과 지근근육으로 나눈다. 속근근육은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고중량 운동이나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하는 스프린트처럼 짧고 강한 운동을 수행할 때 주로 사용된다. 속근근육은 지근근육보다 섬유가 굵고 크기가 커서 운동 후에 근육의 부피가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피로가 빨리 오는 특성이 있어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보다는 순간적인 폭발력을 발휘하는 운동에 적합하다. 100m 달리기 선수가 마라톤 선수보다 근육이 큰 것은 속근근육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지근근육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힘을 발휘할 수 있어, 마라톤이나 사이클링 같은 장시간 운동에 효과적이다. 지근근육을 사용하면 근육이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속근근육과 지근근육 모두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운동의 방식에 따라 근육의 비율을 바꿀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마음 근육이라고 하였다. 우리 몸에도 운동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듯, 마음 근육도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그리고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마음 근육의 성장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아이들에게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너 그리 중요한 사람 아냐!”라는 말이다. 물론 아이와 충분히 라포(rapport)가 형성이 되어 있고 이 말에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 상황에 분위기를 전환하면서도 자극을 주기 위해 하는 말로,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쓰면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의 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 건너다』에서 시작된 ‘얀테의 법칙’ 중, 첫 번째 법칙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이고 아홉 번째 법칙은 ‘누구든 당신한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마라.’이다.
북유럽에서는 아이들에게도 “너는 최고야”, “너는 특별해” 등의 칭찬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것이 칭찬도 아니고 기운을 북돋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자신을 특별히 여기며 거들먹거리는 것도 문제지만, 특별함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늘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며 실패감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특별함이 진로와 함께 이야기되면 불안감은 증폭된다. 비교와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특별함은 생존과 연결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사람마다 가지는 고유의 특별함이 아닌 ‘남들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불안감이 바탕이 되면 마냥 좋아했던 일들도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남과 구별되는 탁월함을 갖추기 위해 혼을 불태워야만 하는 과업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는 “너 그리 중요한 사람 아냐!”라는 말의 의미는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은 너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을 보인다는 점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은 타인에게 항상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증상으로,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던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착한 아이 증후군으로 의심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와 선생님의 칭찬이 강박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 의한 평가를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타인에 대한 과도한 배려와 책임감, 참을성 등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보이는 아이들은 특히 다른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절을 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유독 수용하기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상당히 낮은 경우가 많다.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그 정도로는 안 된다.”하셨다.
“마을 사람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
공자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착한 아이 증후군인 아이는 타인의 시선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음을, 타인의 시선보다 스스로의 감정이 더욱 중요함을 반복적으로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인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은 너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연습을 시킨다. 착한 아이 증후군인 아이들은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게 되면 거절을 잘하지 못하면서도 그나마 거절을 하고 나면 자신의 거절로 인해 친구 관계가 불편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거절로 인해 상황이 나빠질 것을 염려한다. 혹시라도 연관관계가 없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거절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착한 아이 증후군인 학생들에게는 아주 작은 부탁에 대해 거절을 하는 연습을 하게 하고, 자신의 거절로 인해 상대가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의 거절로 인해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음을, 그리고 상대의 부탁을 받았을 때 자신의 내면에서 ‘예’라고 대답하고 싶은지, ‘아니오’로 대답하고 싶은지를 잘 들어 보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게 한다.
그리고 착한 아이 증후군인 아이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포기를 하지 않고(부모나 교사, 또는 주위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할까봐) 끝까지 버티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작은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 실패를 했더라도 그 누구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 역시도 그 실패로 인해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경험, 즉 실패에 대한 내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실패는 조금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작은 실패를 통해 작은 성공의 경험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은 존재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을 재지 않고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말이다. 성공에 집착하지 않기에 실패에 너그럽다. 권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권력 앞에 당당하다. 타인의 유명세나 권위에 맞춰 태도가 달라질 일도 없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의미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니어도 자유롭고 평온하다. 따라서 “너 그리 중요한 사람 아냐!”라는 나의 말은 자유롭고 평온한 존재임을 스스로 각인시켜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말이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어떠한 수단과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존재 일원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어떠한 이유로 상처받고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상처와 좌절을 밑거름 삼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래왔고, 우리 인류가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 역시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개인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삶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의 연료가 회복탄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