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1-3)
퇴근 후 여유가 생겨 『논어』를 해설한 책을 보다가 위정(爲政)편 7장 자유와 공자의 대화에서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책에는,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이 부분을
자유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 세상에선 잘 길러 주는 것을 효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개나 말도 모두 잘 기를 수 있다.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로 해석하고 있었다.
‘養’이 ‘기르다’의 의미이므로 ‘잘 길러 주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효도의 대상은 부모님인데 부모님을 ‘잘 길러 주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문맥상 의미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은사님이신 김영 교수님이 저술한 ‘논어’를 펼치니 위정편 7장을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을 이르고 있다. 그러나 개나 말에게도 모두 이런 봉양은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로 해석하고 있었다.
‘봉양(奉養)’은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웃어른을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이므로 ‘기른다’는 표현보다 ‘봉양하다’는 의미가 문맥상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다른 책에는
“지금의 효란 잘 부양하는 것을 말하지만 (사람은) 개와 말도 잘 먹여 기른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논어』는 공자가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모여서 서로 글을 짓고 논의하여 편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논어는 처음부터 공자가 쓴 글이 아니라 후대에 공자가 한 말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발화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생략된 어구도 있어 다양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이 해석의 논란의 낳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논어를 읽을 때마다 읽는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른 부분이 눈에 띄고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듯하여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 몇 번이고 『논어』를 다시금 읽는다.
위정편 7장은 공자의 제자인 ‘자유’와 공자가 ‘효’에 대해 문답을 나누는 것이다. 자유는 ‘염구(冉求)’로도 불린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43살이나 어린 제자였지만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들 정도로 뛰어난 제자였다. 『논어』의 선진(先進)편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따르던 자들이 모두 문하에 있지 않구나!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었고, 언어에는 재아, 자공이었고, 정사에는 염유, 계로였고, 문학에는 자유, 자하였다.
라고 하여 공자는 자유가 특히 문학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봤던 제자이다.
나는 보던 책에서 ‘잘 길러 주는 것’으로 쓰인 부분에 가운데줄을 긋고 ‘봉양’으로 고쳤다. 그런데 ‘잘 길러 주다’는 문구를 지우는 데 꼭 내 삶에서 잘 길러 주는 것을 지우는 것과 같은 씁씁함이 느껴졌다.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감히 기른 자식의 정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정만 못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자식을 기르는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아니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가 없다.
나는 나에게 교직이 천직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힘들어지는 교직 생활에서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교사라는 자괴감에 괴로워하다 교육전문직원으로 전직했다. 나에게 ‘잘 기른다’는 것은 참 가슴 아픈 단어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정말 제자를 잘 길러내는, 교직이 천직인 분들이 참 많다. 그분들 중에서 얼마 전 명예퇴직으로 교직을 떠나신 ‘정구복’ 선생님이 있다. 정말 아이들을 ‘잘 기르신’ 정구복 선생님이 집필하신 책 ‘저는 행복한 선생님입니다.’라는 책을 읽고 나는 이 글을 쓴 적이 있다.
‘저는 행복한 선생님입니다.’라는 책은 꽤 오래전에 정구복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고 바로 책장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서,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책을 두고 한 자 한 자 소중히 읽은 책이다.
행여나 빨리 읽어버릴까 한 챕터씩 끊어 읽었다.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더 이상 교단에 정구복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 겁나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면서 읽었다.
정구복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가 인천국제고로 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정구복 선생님은 교무부장이었고 난 2학년 담임이었는데 전입 교사에게 그렇게 친절한 교무부장님은 처음 봤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성인(聖人)이라고 부르는 세 명의 선배 교사를 모두 인천국제고에서 만났다. 두 분은 아직 교직에 남아 학생들과 환한 웃음을 짓고 계시지만, 우리 정구복 선생님은 교직을 떠나 새로운 길을 가고 계신다.
단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낸 것뿐인데 정구복 선생님은 나를 함께 길을 가는 동료로 대해 주신다. 정구복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운데 함께 가고 있다 말해 주신다. 그러기에 늘 정구복 선생님을 뵐 때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정구복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인천국제고에서 7년을 근무하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겼다. 7년을 근무하는 동안 좋은 제자들과 동료 교사를 만났다. 하지만 난 국제고에서 근무하는 동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전 학교였던 인천해송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늘 웃고 즐겁게 수업하고 모든 장난을 잘 받아주려 노력했던 교사였는데, 인천국제고에서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엄격하게 대했다. 인천국제고를 졸업하는 아이들은 최상위권의 대학에 진학하여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리더가 될 것이기에,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도덕성과 성실함. 정직함을 요구했다. 그래도 고등학생일 뿐인 아이들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2학년에 담임하고 3학년으로 올려보낸 한 아이가 있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는데 성실하지 못했고 늘 생활지도 대상이었던, 하지만 정말 머리가 좋아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었다. 난 이 학생을 제대로 키워보고자 참 많이도 혼내고 열심히 지도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힘들어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 정구복 선생님의 반이 되면서 확 달라졌다. 성적은 여전히 최상위권이었고, 너무나 밝아졌고, 성실해졌고, 무엇보다 행복해졌다. 화를 한번 내지 않고 아이를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그때부터 나는 정구복 선생님을 성인(聖人)이라 불렀다.
난 극한의 ‘I’ 성향이기에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한다. 인천국제고에서 새로운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길 때 어느 학교에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망설임 없이 인천고잔고등학교를 선택했던 것도 내가 성인(聖人)이라 일컫는 두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쉽게도 옮긴 첫해 정구복 선생님은 교원연구년이라 학교에 계시지 않았고, 난 6개월 만에 전문직으로 전직을 했다.)
나 역시 18년을 교직에 있었다. 참 행복했고, 누구보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18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쳐갔고, 교직이 나와 참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들을 올바로 길러내는 것을 정말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난 교육전문직으로 전직을 했다. 지금 학교를 떠나 선생님을 지원하고 바라보는 입장에 서게 되니 나는 참 비겁하게도, 힘들어지는 학교 현장에서 나 하나 편하자고 학교를 떠날 핑계만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에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책의 제목인 ‘저는 행복한 선생님입니다.’에서 감히 ‘행복’하다는 단어와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함께 붙여 쓸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정구복 선생님은 많지 않은 몇 분 중에 ‘행복한 선생님’(교사가 아니라, 선생이 아니라 선생님이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분이다. 더 이상 교단에서(이제 교실에 옛날처럼 우뚝 솟아 있는 교단은 없다. 그러한 권위도 없다. 하지만 난 교단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교사의 정체성과 같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교사이기에 설 수 있는 자리이고,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쳐다봐 주는 자리이기에) 정구복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해, 우리 교육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뛰고 계신다. 나는 교사를 지원하는 자리에서, 정구복 선생님은 교육을 지원하는 자리에서 서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같은 자리에서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정구복 선생님께 감사하며 책을 이제는 서가로 옮겨 소중히 꽂아 놓는다.
이 글에서도 고백했듯이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교사라 생각했다. 18년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젊은 시절에는 마초처럼 아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교사였다. 이를 의욕이라 스스로 자위하면서 아이들을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 만들고자 했다.
논어 자로(子路)편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고 획일적이지 않으며, 소인은 획일적이고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다. 정구복 선생님은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지배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실천하셨고, 나는 아이들을 지배하려 하고 아이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를 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이면서 나도 민주적인 교사가 되고자 노력했다. 비겁한 변명일 수 있지만, 내가 민주적인 교사가 되고자 했을 때 학생의 인권과 교권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아동학대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선생님이 아닌 교사로서 할 일만 하면, 뭔가 고민이 있는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불러 한, 두 시간 상담하는 날에는 학생을 편애한다는 소리를, 아이의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밥도 못 먹고 쉬지도 않고 두 시간 상담을 한 날에는 아이에게 밥도 먹이지 못하고 두 시간을 잡아 놓았기 때문에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두운 표정의 아이에게 모른 척 웃으며 “잘가! 내일 보자!” 이 한마디 하고 지나가 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나의 모습에 스스로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나의 적성과 맞지 않음을 절감했다. 그리고는 학교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잘 길러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돌아갈 수밖에 없는 학교로 아직은 돌아가기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자유에게 공자가 한 말,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을 보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경하는 마음’ 나는 진정 아이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는가를 나에게 물어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공경’은 ‘공손히 받들어 모심’으로 정의되어 있다.
나는 존경받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공경하는 마음은 아이들이 교사인 나에게 가지는 마음인 줄 알았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지 한 번도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공경하지 못했던 나의 교직 생활은 개나 말이 새끼를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고 성인(聖人)이라 불렀던, 그리고 지금도 교육청에 근무하며 만난 훌륭한 선생님은 모두 하나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아이들을 공경하는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아이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여 공존하는 선생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토록 잘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잘 기르는 것’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