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에서 배운 진정한 용기

논어, 학교에 스며들다.(2-6)

by 최성조

전문직원으로 전직하면서 나는 몇 가지 다짐을 했다. 그중 하나는

‘업무 중 실수가 생기면 변명하지 말고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자.’는 것이었다.

『논어』 자장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럴싸하게 둘러댄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잘못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음부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인천국제고등학교에 부임하며 세운 나의 첫 교육 방침 역시 인성과 도덕성 지도였다. 이곳의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장차 성장해 사회 고위층이 되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아이들이기에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사회 고위층이 되지 않더라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지니기 위해서는 바른 인성과 높은 도덕성이 필수라 여겼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을 지도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논어』 옹야(雍也)편 중 애공의 질문에 공자가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는데…”

라는 글귀에서 공자는 안회의 호학(好學)의 자세를 칭찬하고 있는데, 공자는 지식의 습득보다는 남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 것을 호학(好學) 기본 정신으로 보고 있다. 이에 나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좋은 인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느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나의 일방적인 바람이었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중 면학실에서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났다. 당시 학교 방침상 휴대전화는 등교하는 월요일 아침에 담임선생님께 제출하고 금요일 귀가할 때 찾아가야 했는데, 일부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몰래 보관하거나 공기계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진짜 휴대전화는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곧장 진동 소리가 난 곳으로 가서

“지금 휴대전화를 가진 학생은 스스로 나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학생들 모두 진동 소리를 들었는데 서로 눈치만 볼 뿐, 끝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늘 아이들에게 잘못하면 바로 인정하고 다음부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고 지도했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참 어려워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칭찬을 받고 자라온 아이들이라 자신이 스스로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인천국제고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사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 소위 선생님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잘못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학생이 있기를 바랐지만, 끝까지 휴대전화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아이들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SNS에 이렇게 남겼다.

지난 며칠간 참 많이 아팠습니다.

마음이 아팠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인천국제고에 와서 우리 아이들은 아주 우수한 아이들이기에 국어 지식 하나를 가르치기 보다는 올바른 인성과 사고를 갖게 하기 위해 열심히 지도하였습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입학한 순간부터 맡아 2년간을 함께하면서 잔소리를 많이도 하면서 애착을 가지고 키워온 아이들입니다. 내년 3학년에 올려보냈을 때 3학년 선생님들로부터 그래도 인성 하나는 너무나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교직에 있으면서 만난 수많은 학생 중에는 정말 똑똑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성이 따라오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또다시 국가를, 국민을 힘들게 하면 어떻하나 하고 걱정을 했기에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만큼은 국어 한 문제를 틀리더라도, 성적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솔직하고 정직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기있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며, 반성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저의 가르침이 헛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참 허망했습니다. 실수,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이며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리더가 될 사람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가르침이 부족했는지, 며칠 동안 우리 학생들이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실망스럽고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을 향해 웃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지쳐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기대를 했기에 실망도 큰 법이겠지요. 아파하는 저를 향해 선배들은 말합니다.

“그러니깐 교사가 필요한 거야,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아이들은 아이들이라고 웃으며 넘기라고 소주잔을 채워줍니다. 그래야 할까요? 그냥 그렇게 웃고 넘겨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힘을 내야 하는 걸까요?

교직 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교직이 저랑 맞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때는 천직이라고 믿었는데, 점점 교사가 된 것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직업을 찾고 싶은 솔직한 심정입니다. 어디 한적한 시골 학교, 섬 학교로 얼른 떠나고 싶습니다. 전 아직 선생님이 되려면 참으로 멀었나 봅니다. 어쩜 선생님이 될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많이 아프고 힘든 날들입니다.

며칠 전, 집 근처 과일가게에 귤을 사러 갔다. 나는 귤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통 5kg 상자째로 구입하는 편이다. 보통 귤을 상자째로 구입하면 판매하시는 분은 상자를 열어 상하거나 물러진 귤은 빼고 다른 귤로 바꿔주는데 그날은 어쩐지 상자를 열어 살펴보지 않고 바로 포장을 해주셨다.

몇 번 귤을 샀던 적이 있던 과일가게라 믿고 들고 와서 상자를 열어두고 귤을 먹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귤을 먹으려고 상자를 열어보니 바닥 쪽에 있는 귤이 꽤 많이 상해 있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상할 리는 없었고, 상한 귤과 닿아 있던 다른 귤들도 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구입할 때 가게에서 귤 상자를 열어보든가, 가져오자마자 귤 상자를 열어 서늘한 곳으로 바로 옮겼어야 했는데 하루 동안 그대로 둔 내 잘못인가 싶어 가게로 다시 가져가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도 하루 만에 귤이 상하는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귤 상자를 들고 과일가게로 향했다. 사장님께서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하며 사장님께 귤 상자를 내밀며 상황을 말씀드렸다. 이미 수십 개의 귤을 먹은 상황에서 다시 들고 와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꼭 진상 민원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귤을 보자마자 바로 사과하며 말씀하셨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살펴보고 드렸어야 했는데 급한 배달이 있어 바로 드렸나 봅니다. 고객님이 사가시기 전에 제가 훑어봤다 생각하고 포장해 드렸더니 이렇게 상한 귤들이 있었네요. 바로 새것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너무 죄송해하는 사장님을 보니 내가 오히려 죄송했다.

“사장님 제가 이미 귤을 꽤 많이 먹었으니 상한 귤만 골라 바꿔주셔도 됩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끝내 사장님은 새 상자를 내어 주셨다.

“제가 그래도 고객님들을 속이고 장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늘 싸게는 못 드려도 제일 맛있고 좋은 품질의 과일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장사합니다. 귤이 제주에서 오다 보니 치이고 상하는 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귤은 당연히 바꿔드리는 것이니 새것을 가지고 가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만약에 사장님께서 변명만을 늘어놓았다면 어땠을까? 나 역시 왜 바로 귤 상자를 가져오지 않고 수십 개의 귤을 먹고 나서야 가지고 오게 됐는지 변명을 하느라 급급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면 서로 마음이 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님의 솔직한 인정과 사과는 오히려 나를 감동시켰다. 그날부터 나는 이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과일을 살 때도 이것저것 고르지 않고 사장님이 주는 대로 과일을 받아온다. 진심이 담긴 신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전문직원이 되면서 “업무를 하다 실수를 하게 되면 변명을 하지 말고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자”라는 다짐을 했지만 오늘도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지적받으면 이렇게 말한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요. 저희 팀장님이,,,,”

“저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는 이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는데요,”

『논어』 술이(述而)편 중 공자가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어렵구나,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라는 구절을 보면 나 역시 여전히 ‘척’하며 살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내가 한 실수가 실력 부족이 아니라는 점을, 내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나도 변명으로 나를 방어하고 있었다. 사실 내 실수를 지적한 사람은 그 실수가 누구의 잘못인지, 내가 유능한지 무능한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나 역시도 아직 변명을 하고 살고 있다. 인천국제고에서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나를 돌아보면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그 정직함과 용기를, 정작 나부터 다 지키고 있었는지 돌아보면 부끄럽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태도,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공자가 하신 말씀을 새기고 또 새긴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을 이것을 허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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