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를 뚫는 송곳처럼

논어, 학교에 스며들다.(2-5)

by 최성조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내 책상에 붙어 있던 사자성어로,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었던 글귀다. 임용고사를 치고 난 뒤 임용고사에 합격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서울, 인천, 경기에 있는 사립 중·고등학교에 임용원서를 20곳 이상 넣고 연락을 기다렸다. 나는 대학을 인천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까지 울산에서 다녔고 대학 4학년까지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임용고사에 합격해 공립교사로 채용되지 못하면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가 재수를 하든, 기숙사에서 나와 방을 얻어 학원 강사나 사립 기간제 교사라도 하며 재수를 준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20곳 이상 임용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동안 1차 서류 전형에 통과해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곳은 3곳 불과했고, 그 세 군데도 경기도 외곽에 있는 곳이거나 국어과는 비교과인 전문계 고등학교였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는 면접을 보러 갔으나 같이 면접을 본 응시자는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를 지닌 분과 고려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한 분이었으니 학사학위를 지닌 나로서는 합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인천에 있는 모 재수 종합 학원에 강사로 채용되어 강의를 하기로 하였으나 다행히 임용고사에 합격을 하여 공립교사로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늘 ‘나는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은 사람이니깐 분명히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사마천의 『사기』, 「평원군우경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로,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는 인근의 진나라의 침략을 받아 수도 한단이 포위되자 이웃 초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재상 평원군을 보내기로 한다. 평원군은 초나라 왕에게 가서 약소국끼리 동맹을 맺는 합종(合從)을 설득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것이었다. 평원군은 평소 수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 문무(文武)를 갖춘 사람 20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하고 19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선발했으나 마지막 한 명을 고르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저를 함께 데리고 가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스스로 자신을 추천했다. 평원군은 얼굴조차 낯선 그에게

“자네는 우리 집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소?”라고 묻자, 모수는 “3년 정도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평원군은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을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바로 드러나 눈에 띄기 마련인데,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는데 한번도 그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소. 이는 그대가 재능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라고 하며 거절하자,

모수는

“그래서 저를 주머니에 넣어 달라고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를 더 일찍 주머니에 넣어 주셨더라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 그 끝이 아니라 큰 자루마저 뚫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했다.

이에 평원군은 모수를 포함한 20명의 사신을 데리고 초나라 왕을 만났다. 그런데 협상이 난항을 겪자 모수가 나서서 말했다.

“초왕이시여! 지금 저희 조나라와 합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단 두 마디로 결정될 일인데, 어찌 해가 뜰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해가 중천에 이를 때까지 결정을 못하십니까?”라고 하자 초나라 왕이 모수에게 주장을 펼칠 기회를 주었고, 결국 평원군은 목적을 달성하여 구원병을 이끌고 와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

평원군은 조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처음에 모수를 무시했던 것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는 사람에 대해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논어』 이인(里仁)편과 헌문(憲問)편에도 이와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서서 행할 것을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논어』에는 이외에도 ‘학이(學而)’편과 ‘위영공(衛靈公)’편에도 이와 유사한 글귀가 실려 있다. ‘낭중지추’의 의미가 유난히 『논어』에 많이 실려 있는 것은 공자가 빨리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제자들에게 학문을 닦고 도덕적으로 완성되면 저절로 이름이 드러남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인천국제고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때 우리 반 민석(가명)이는 참 성실하여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학생이었다. 춤도 잘 추고 늘 친절하여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성적도 괜찮은 편이라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서울 주요 대학 6곳에 원서를 접수할 때였다.

나 역시 민석이가 훌륭한 학생이라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랐고, 그 당시 자기소개서와 함께 교사 추천서가 중요한 입시 전형 자료였기에 교사 추천서를 어떻게 쓸까 고심하고 있었다. 워낙에 훌륭한 학생이었기에 쓸 내용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교사 추천서가 폐지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듯 모든 교사가 학생들의 추천서를 너무나 잘 써주기 때문에 다른 학생과 차별화된 추천서를 써주고 싶었다. 이 학생은 정말 훌륭한 학생이었기에 그 진솔함을 드러내고 싶어 오랜 시간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별화되게 쓰면 쓸수록 약간 억지스럽게 느껴지고 오히려 진솔함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날도 야근을 하며 민석이 추천서를 고심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무실 문이 열리며 당직 기사님이 교무실로 들어오셨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두 분의 당직 기사님이 번갈아 가며 야간에 학교를 지키셨고, 야간 당직을 하면서 수레를 밀고 다니며 각 층에 있는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을 함께 정리도 하셨다.

교무실에 당직 기사님이 들어오시길래 교무실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러 오시나보다 싶어 인사를 드리고 혹시 음료수라도 드릴 것이 없나 찾고 있는데

“저, 혹시 3학년 김민석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순간 나는 우리 민석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다. 인천국제고는 기숙학교다 보니 아이들이 야간에 여러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이 종종 있다. 학생생활규정에 배달 음식 반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배달 음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몰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다 걸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특히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쓰레기를 치우시는 당직 기사님께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민석이의 교사 추천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기에 더욱 민석이 담임을 찾는 기사님의 말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네 기사님, 제가 민석이 담임입니다만,”

“아, 선생님이셨군요. 제가 민석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누구시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교무실로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누군지 대답을 안 했다는 말에 더욱 ‘사고를 쳤구나’하는 확신이 강해지며 추천서 쓰기 위해 고심한 시간만큼 민석이에게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었다.

“네, 기사님 이리로 오셔서 앉으십시오.”하며 내 옆자리로 안내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시다가 말씀을 꺼내셨다.

“선생님, 민석이가 절대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요. 제가 여기 말고 다른 학교에서도 당직 기사를 해봤는데요. 이런 녀석은 처음이라 꼭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네, 기사님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민석이 녀석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혹시 기분이 상하신 일이라도?”

“아닙니다. 선생님, 민석이 그 녀석이요. 정말 고마운 녀석입니다. 제가 매일 쓰레기 수레를 밀고 재활용 쓰레기를 치우는데요. 꼭 민석이가 첫 번째 면학 시간이 끝나고 간식 시간에 와서 도와줍니다. 제가 괜찮다고 안 도와 줘도 된다고 말을 해도 꼭 같이 치워주고, 수레도 밀어줍니다. 사실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요즘 아이들 눈앞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습니다. 그나마 우리 학교 애들은 제 앞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들은 없지만 다른 학교에 있을 때 제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석이는 말입니다. 항상 저를 도와 줍니다. 한두번이 아니에요.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그럽니다.”

당직 기사님 말로는 첫 번째 면학을 끝나고 30분 동안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 동안 민석이가 쓰레기를 치우는 기사님을 도와 드렸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야간면학이 끝나면 간식도 먹고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도록 다른 쉬는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민석이는 항상 그 시간에 쓰레기를 함께 치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3년간 민석이를 가르쳐 왔음에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무리 담임 교사라 하더라도 학생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학년말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아이들에게 혹시 누락된 내용은 없는지, 또는 선생님이 알아야 할 내용은 없는지 등을 상담을 통해 확인한다. 그런데 민석이는 한 번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기사님, 이 이야기를 왜 갑자기 와서 하시는지요? 혹시 민석이가 뭔가를 부탁하던가요?”

나는 혹시나 대학 입시를 위해 민석이가 기사님께 부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손사레를 치시면서 말을 하신다.

“아닙니다. 선생님, 민석이가 요즘 예전보다 표정이 좀 좋지 않아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민석이가 요즘 대학 원서를 쓸 준비를 하는데 대학 선택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말입니다. 당직 기사를 하고 있지만 이 학교에서만 7년째입니다. 그동안 인사 잘하고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이 몇 명이 있었는데요, 다들 서울대, 고려대 뭐 진짜 좋은 학교들 잘 가더라고요. 뭐 공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대학에 갈만한 녀석들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그런데요 민석이 정도면 서울대 가야 할 녀석입니다. 이런 녀석이 서울대 안 가면 누가 갑니다. 진짜 착한 아이에요. 저는 민석이가 서울대를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꼭 민석이가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착한 것으로 대학에 진학하면 우리 학교 아이들 다 서울대 가야죠. 민석이 좋은 대학 갈 겁니다. 종종 아이들 이야기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당직 기사님은 그렇게 교무실을 나가셨다. 민석이가 평소에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밤에 당직 기사님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그동안 썼던 민석이의 교사 추천서를 다시금 꼼꼼히 읽어보았다. 다른 학생의 추천서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추천서를 지웠다. 그리고는 당직 기사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솔직하게 적었다. 그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없더라도 민석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대학에서 뽑아 갈 것이라고, 아니 최상위권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민석이의 송곳은 너무나 날카로워 주머니를 뚫고 나와 언젠가 대한민국에 그 이름을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2월과 8월이면 인사발령으로 교육청이 어수선해진다. 교육전문직원은 교사와 달리 부서나 업무에 대한 희망원을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발령이 나서 부서를 옮기고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인사발령 때가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나는 ‘낭중지추’라는 이 한마디 말로 인해 인사발령 때가 되어도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능력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있고, 그 뚫고 나온 송곳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큰 역할을 맡길 것이고, 아직 내 송곳이 주머니를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지 못하다면 더욱 송곳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 역시 수많은 평가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낭중지추’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조금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본인의 송곳이 주머니를 뚫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누군가는 그 송곳을 봐 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주머니를 뚫지 못했다면 송곳의 날을 더 강하고 날카롭게 하기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쓰고, 그 노력으로 송곳을 갈고 닦아 빛을 낸다면 그 빛이 세상을 비출 날이 분명히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석이는 흔히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라고 일컫는 우리나라 최상위권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내가 그동안 쓴 교사 추천서 중에서 가장 평범한(?) 추천서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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