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논어에 스며들다.(3-1)
2020년 학교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때문이었다. 언론에서는 한국전쟁 중에도 닫지 않았던 학교가 문을 닫았다며 연신 닫혀 있는 교문을 비추었다.
교사들에게 3월은 전쟁 같은 달이다. 1년 업무의 절반을 신학기인 3월과 9월에 처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3월이면 나는 늘 피곤에 절어 있고, 족저근막염으로 절뚝거리며 걸어 다닌다.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교사는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늘 농담처럼 했던 말, ‘학생이 없는 학교는 천국일 거야’라는 농담이 현실이 된 순간. 실제로 학생이 없는 학교에 출근했다. 하지만 학생이 없는 학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그렇게 삭막하고 서글플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없어 수업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코로나 팬데믹 대응을 위한 회의를 했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특별한 지침을 하달하지 않는 한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다. 탑다운(Top-down) 방식의 관료주의의 문제를 절감하는 한 달이었지만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실을 청소하고 아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봄 방학 중이었던 2월 23일, 정부는 일주일 개학 연기를 발표했다. 3월 9일에는 정상적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올 줄 알았기 때문에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3월 첫 주를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개학이 3월 9일에서 3월 23일로 2주 더 연기가 됐고, 또다시 4월 6일로 연기되었다. 이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SNS에 이런 글을 쓰며 아이들이 없는 학교의 허전함을 표현했다.
겨우내 학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무인택배함도 마련하였고, 아고라 광장도 생겼으며, 우리 부서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았던 자치협력부는 새로운 공간으로 분가를 했다.
학급에는 사물함이 새롭게 갖추어졌고 도색도 깔끔하게 끝이 났다. 급식실 식탁과 의자도 새것으로 바뀌었고 야외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생겼으며, 무엇보다 기존의 택배함이 고양이 아파트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매화는 피었는데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고 있다. 벚꽃비가 가득하기 전에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올해도 어김없이 해맑은 미소로 사진을 찍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020년 3월 24일)
인천국제고 벚꽃나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꽃망울이 여문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천국제고 벚꽃나무는 아이들의 사진을 위해 환하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인천국제고 벚꽃나무는 엄마를 만나지 못한 아이처럼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아이들이 오던 곳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12일)
4월 6일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했지만 개학을 했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였다.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시작했지만, 평소 아이들이 생활하던 기숙사는 문을 열지 못했다. 나는 기숙사를 관리하는 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언제든 아이들이 다시 등교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숙사에 오지 못하게 되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기숙사에는 아이들을 관리해 주는 사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청소를 하시는 여사님까지 9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기숙사 문을 닫게 되자 이 분들이 근무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기숙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숙사비를 납부 하지 않게 되었고, 기숙사비를 납부 하지 않게 되면서 기숙사를 관리를 위탁하는 업체에 기숙사 관리비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기숙사를 관리하시는 분들은 학교에서 직접 고용한 분들이 아니라, 기숙사를 위탁 관리하는 업체에 소속된 분들이시라 이 분들에 대한 급여는 학교와 계약을 한 기숙사 관리 업체에서 지급한다. 그러자 기숙사 사감 선생님과 청소 여사님은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어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었다.
실제 학생들이 정상 등교를 하게 된 것은 3학년이 5월 20일에, 2학년이 5월 27일에, 1학년이 6월 3일에 순차적으로 등교를 하게 되었고, 학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또 귀가하게 되어 한 학기가 지나가도록 닫힌 기숙사 문은 열리지 못했다.
5월이 되자 기숙사 사감 팀장님이 연락을 해왔다.
“부장님, 아이들이 언제 등교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거죠?”
“팀장님, 그렇네요. 학생들 등교는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될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부장님, 사실 저희 팀원들이 많이 힘듭니다. 2월 이후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감 선생님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만 그만두겠다는 팀원들이 많습니다.”
사실 예감은 하고 있었다. 기숙사 문이 닫혀 기숙사 용역비를 업체로 보내지 않고 있었으니. 그래도 업체에서 최소한의 급여는 지급해 줄 것이라고 애써 믿고 싶었다. 하지만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팀장님께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막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교장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시교육청 학교교육국장을 역임하시고 2020년 3월 1일 자로 새로 부임하신 분이셨다. 교장 선생님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느라 취임식도 못하시고 정신없는 날을 보내고 계셨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고 싶었다. 우리 학교로 발령이 나던 날부터 모든 직원을 가족과 같이 여기고, 존중한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면 어떤 방안을 찾아 주실 것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임식도 못하고, 학생들도 만나지 못한 채 코로나 팬데믹 대응만 하고 계시는 교장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교장 선생님께 두서없이 말씀을 드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상황을 논리적으로 보고하기 보다는 사감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부장님, 부장님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당연히 도와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난 그 방법을 여쭙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교장 선생님,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교장 선생님께 왔습니다.”
“구청에서 코로나로 인해 근무하지 못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지원하겠다는 공문이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안내하면 좋을 것 같군요”
“네, 교장 선생님 이미 알아봤습니다. 그 지원은 학교에서 고용한 분들을 지원하는 것인데, 사감 선생님은 학교에서 고용한 분들이 아니고 관리 업체 소속이라 지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관리 업체 직원이 100명이 넘어 정부에서 지원하는 영세기업 혜택도 받지 못하나 봅니다.”
“큰일이네요. 그러면 사감 선생님들이 그만두시게 되면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학부모님들 불만이 클 겁니다. 현재 업체가 매년 저희랑 재계약 대상 업체로 선정이 되는 것이, 학생들과 라포를 형성한 사감 선생님들이 바뀌지 않는 조건이 재계약의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감 선생님이 바뀌면 학생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학생들 역시 사감 선생님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러면 학부모님들께 도움을 구해 봅시다. 학부모회장님과 협의를 준비해 주세요.”
“교장 선생님, 학생들이 기숙사를 이용하지 않는데, 학부모님들께 기숙사비를 납부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동의하지 않으실 거 구요.”
“부장님, 이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방안, 그리고 우리를 위해 밤새 학생들을 자녀처럼 관리해 주시는 사감 선생님, 그리고 그런 사감 선생님이기에 재계약을 요구한 학부모님, 그리고 부장님의 지금 표정, 정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해봅시다.”
어리둥절했다. 학부모님들께 학생들이 기숙사를 이용하지 않는데 기숙사비를 내라고 할 명분은 없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을 믿고 각 학년 학부모회장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교생 학부모님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부모님들께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는 연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사감 선생님들이 현재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말씀하셨다. 그냥 관두셔도 되지만 아이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사직하지 않고 버티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하며 버티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와주시기를 부탁하셨다.
코로나로 국민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사도 어렵고 자영업자도 어렵고, 학부모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사감 선생님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데 기숙사비를 낼 수는 없다고 하셨다.
나는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께 섭섭했지만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한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갑자기 온라인 회의 중에 학생들 한, 두 명이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사감 선생님은 부모처럼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사감 선생님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기숙사에 돌아갔을 때 사감 선생님이 그대로 계시길 원한다고.
갑자기 학부모 회의에서 학생과 학부모 회의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려울 것만 같았는데 학부모님들께서 약간의 기숙사비를 납부 하는 것에 동의하신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방역 도우미 채용을 위해 내려온 예산이 있어 사감 선생님을 방역 도우미로 채용하여 기숙사와 학교 시설 소독 등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 기쁜 소식을 사감 팀장님께 전했다.
사감 팀장님은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감 팀장님은 너무나 감사하다며 축축한 목소리로 답하셨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분들이 매일 나와서 근무를 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부모님들께도 최소한의 부담만 드리는 것으로 결정했고, 교육청 예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얼마나 버틸지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음 날부터 사감 선생님은 교대로 출근하며 기숙사도 청소하고, 학교 건물을 방역하며 버텼다. 무엇보다 한 분의 사감 선생님도 그만두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우셨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보며 버텨주셨다.
그러다 5월이 되고 학생들이 등교를 하기 시작했고 기숙사 문도 다시 열렸다. 4인실을 사용해야 하고 잘 때는 마스크를 벗고 자기 때문에 방역에 취약한 시설이라 교육청에서 담당 장학사님이 매번 나와 우려를 표했지만, 사감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기숙사 문을 다시 닫는 날은 오지 않았다.
『논어』의 옹야(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인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에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반드시 성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이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을 것이다.”
나는 사감 선생님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로 어려움을 이겨낸 교장 선생님과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그리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어려움 조금씩 나눠 주신 학부모님들이야 말로 ‘성(聖)’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었나 한다.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