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3-3)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교무부장은 학교의 업무 중 가장 핵심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교원 조직 관리를 책임지는, 학교 교육의 중심축이자 운영의 실무자이기 때문에 교사 중에서 가장 신임이 높고 업무 역량이 뛰어난 교사가 맡는 것이 관례였으나 요즘은 과도한 업무에 비해 큰 보상이 없기에 꺼려하는 업무 중 하나이다.
나는 친구에게 교무부장으로서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업무적으로 특별히 힘든 건 없어. 다만 교장, 교감 선생님 기분을 맞추는 것이 힘들지.”
학교에서 관리자라 불리는 교장, 교감 선생님을 가장 많이 만나고 부딪히는 역할이 교무부장이다 보니 교장, 교감 선생님의 의중을 잘 헤아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엮인 관계인데 기분을 맞춰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를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나 봐?”라고 물었지만,
역시 유능한 교무부장답게
“아냐, 우리 교장, 교감 선생님은 엄청 좋으셔. 늘 배려해주시고, 민주적이고, 훌륭하신 분이야.”
친구와 사적으로 만난 자리이지만, 상대가 시교육청 장학사라 혹시라도 자신이 모시고 있는 관리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까 봐 순간 말을 끊고 훌륭한 관리자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교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교장, 교감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에 대한 험담이 뭐가 문제가 될까 만은 나 역시도 장학사로 일정 기간 근무를 하고 나면 교감으로 전직을 하게 되는 입장이라 선생님들이 하는 험담을 흘려듣지 못한다.
17년 교사를 하면서 5개의 학교에서 열 분이 넘는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그중에는 교사를 불신하며 강압적으로 학교를 경영하는 분도 계셨고, 모든 것을 교사에게 맡겨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장 선생님도 계셨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멘토로 삼을 만한 교장 선생님도 몇 분 만났다. 그중에서 두 분의 교장 선생님은 학교 경영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면서도 학교 경영을 너무나도 잘해서 과연 어떤 스타일의 경영 방법이 좋은지에 대한 혼란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 분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분으로, 학교의 중요한 사안의 최종 결정은 모두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하셨다. 대신 그 책임도 교장 선생님이 철저하게 지셨다. 이 분은 내가 처음 부장 교사의 역할을 맡을 때 만난 분이다.
2019학년도를 위한 업무분장에서 학생부장 자리에 나와 선배 교사 두 명이 지원 했다. 이런 경우에는 교장 선생님 또는 교감 선생님이 두 사람을 불러 상담을 통해 조율하거나 두 사람이 서로 조율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내가 학생부장을 하도록 일방적으로 결정하셨고, 선배 교사에게는 국제교육부장을 하라고 하셨다. 그 선배 교사는 국제교육부장은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교육부장을 할 바에는 학교를 옮기겠다고 말했고, 교장 선생님은 그렇다면 학교를 옮기라고 말할 정도로 강력하게 학교를 경영하셨다. 이렇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이셨기에 쉽게 교장실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자가 조회에 나가 경공에게 보고하며 물었다.
“어찌 조정의 분위기를 엄하게 하십니까?”
그러자 경공이 되물었다.
“조정의 분위기가 엄하면 국가를 다스리는 데 무슨 해로움이 있습니까?”
이에 안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조정이 엄하면 아랫사람은 말을 하게 됩니다. 아랫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윗사람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랫사람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저는 이를 벙어리라고 하고, 윗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은, 저는 이를 귀머거리라 부릅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뿐이라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찌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학생생활지도 방식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학생부장을 맡기로 했지만 과연 교장 선생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실지 확신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이 귀머거리여서 내가 벙어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교장 선생님과 가까워지기 전에 이미 부장 교사의 경험이 있던 선배 교사들로부터 교장 선생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부장 교사 지원을 망설이기도 했고, 교장 선생님의 이런 학교 경영 방식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3월에 학생부장이 되고 학생생활지도와 관련하여 개선하고 싶은 여러 일들을 정리하여 교장 선생님께 보고하고자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게 되었다. 교장실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운지 괜히 혼이나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나보다 먼저 부장 교사를 하고 있었던 다른 선배 교사는 나에게
“꼭 그 규정들을 바꿔야 해? 괜히 바꾼다고 하면 교장 선생님이 뭔가를 막 질문하실 거야. 그때 답을 하지 못하면 엄청 뭐라고 하신다. 그러니깐 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어가야 해. 안 들어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것이 더 낫고.”
라는 말을 해서 나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내가 바꾸고 싶은 규정은 모두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고, 불합리하다 생각한 것을 바꾸고 싶고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 학생부장에 지원했으니 교장 선생님을 만나야만 했다.
교장실에 들어가 교장 선생님께 새로 맡은 학생부장으로서 학생생활지도를 위해 몇 가지 제안 사항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하나씩 설명했다.
교장 선생님은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난 여러 가지 질문을 할 것에 대비하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짧은 말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더 할 말 있나?” 하셨고,
난 “아닙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얼른 일어나 나오려고 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최 부장, 내가 최 부장을 학생부장으로 시켰잖아. 최 부장이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과 같아. 나보다 최 부장이 학생생활지도 면에서는 더 전문가일 것 아냐. 그러니 뜻대로 해보게. 그러다 잘 안되거나 어려운 것이 있으면 바로 말을 하라고.”
나에게 말씀해 주신 교장 선생님의 이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말 신나게 일했다.
학생부장이다 보니 학교폭력 관련 민원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때도 학부모의 민원에 대해서 교장 선생님께서는 항상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내가 질 테니 원칙대로만 해”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많은 교사가 원하는 것이어도 교장 선생님께서 아니다 싶은 것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면도 보이는 분이셨다.
처음 학생부장을 시켜주셨던 교장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시고 새로운 교장 선생님께서 부임해서 오셨다. 나는 그 해도 역시 학생부장이었다. 그분은 민주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분이셨다.
먼저 각 부서의 부장과 교장, 교감 선생님이 참여하는 부장 회의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전 교장 선생님이 주관하는 부장 회의는 각 부서의 현안을 설명하고 부서 간의 의견 차이가 있거나 조율할 부분이 있으면 교장 선생님께서 나서서 결론을 내려 주셨기 때문에 회의 시간이 50분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교장 선생님과 하는 부장 회의는 토론식 회의로 부서에서 제기하는 문제가 있으면 다양한 의견을 모두 듣고 부서 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때까지 교장 선생님은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눈치만 보게 되고 회의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지기도 했다. 특히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라인으로 개학이 이루어지고, 확진자 발생에 따라 학교가 수시로 문을 닫던 때라 한번 회의를 시작하면 2~3시간씩 회의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부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교장 선생님께서 속 시원하게 결정을 해주시면 좋을 텐데 끝까지 듣고만 계시고 부서에서 서로 조율하고 모든 교사가 함께 토론해서 결론을 내리라고 하니 더 힘들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교장 선생님의 경영 방식에 적응해 가면서, 코로나 팬데믹의 어렵고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교사가 학교의 상황을 공유하고 교사 개개인이 학교의 결정에 중요한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여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내가 겪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두 분의 교장 선생님 중 어느 분의 경영 방식이 더 좋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사실 두 분 모두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학교를 경영하신 교장 선생님의 방식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교직원 모두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였고, 모든 교사의 의견을 중시했던 민주적 합의 방식을 추구한 교장 선생님은 의사결정 속도는 느렸지만 모든 교사가 학교의 주체로서 함께 참여하여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 수가 있었다.
두 분의 학교 경영 방식은 너무나 달랐지만 두 분의 교장 선생님은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교직원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셨다. 실제로 두 분 교장 선생님 모두 몇몇 부서에서 업무를 추진하다 민원이 들어 온 경우에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학부모를 만나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셔서 부장님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모습을 보이셨다.
내가 관리자가 된다면 어떤 관리자가 될까?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이다.”
신규 교육전문직원 역량강화 직무연수를 받을 때 선배 장학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민원 전화가 왔을 때.
“제가 엊그제 처음 발령을 받아와서 잘 모르는데요.”
라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엊그제 발령을 받아 온 것은 내 사정이고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교육청에 도움을 구하고자 전화를 했는데 장학사가 처음 와서 잘 모른다고 하면 어디에 물어봐야 하겠냐고 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전문직원이 되어 처음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전화벨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아직 내 업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데,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장학사 체면에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척을 했다가 잘못 알려주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민원인의 전화를 받고 “제가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난 뒤에 ‘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으니 진정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 같았다.
보통 교장의 자리에 있는 분은 교직 경력이 35년 정도 되신 분들이기에 다른 교사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겠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의 교장 선생님은 절대로 안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처음 내가 부장 교사가 되고 나에게 해주셨던
“나보다 최 부장이 학생생활지도 면에서는 더 전문가일 것 아냐. 그러니 뜻대로 해 보게.”
그래 이 말이 첫 번째 교장 선생님이 진정한 앎을 실천하는 방법이었고, 두 번째 교장 선생님은 모든 교사의 말을 듣고 토론을 한 후에 업무 처리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을 실천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결국에는 모든 일은 사람을 쓰는 일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훌륭한 리더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보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 일을 처리해 나가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잘 알게 된 후에 일을 처리해 나가면 실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방법 모두 본인이 모를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분의 교장 선생님의 학교 경영 방식이 너무나도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본질은 같았던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잘 아는 사람을 통해 모르는 것을 배우며, 그 모르는 것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책임은 본인이 스스로 지는 것’ 이것이야 말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공자가 말한 진정한 앎이 아닐까.
내가 훗날 교장 선생님이 되면 어떤 방식으로 학교를 경영해 나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 그 용기 하나만은 가지고 있는 관리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