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여(天喪予), 제자의 죽음 앞에서

논어, 학교에 스며들다.(3-5)

by 최성조

아침부터 뉴스 기사를 보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부산 〇〇〇〇고 여고생 3명 동반 자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꿈일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든, 진로에 대한 고민이든, 재단 비리로 인한 강사와의 갈등이든 이유야 어떻든 꿈 많은 여고생 3명이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큰 충격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는 지금까지 늘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언급되었음에도 또다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의 불행한 삶과 관련한 기사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아동·청소년이 학업 성취도에서는 선진국 중 최상위권을 기록했지만,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25년 5월 13일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산하 아동연구조사기관인 이노첸티연구소는 '예측 불가능한 세계, 아동의 건강'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 아동·청소년의 복지 실태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의 2018~2022년 자료를 바탕으로 3개 분야(정신 건강, 신체 건강, 삶의 질) 6개 지표(생활 만족도, 청소년 자살률, 아동 사망률, 과체중 비율, 학업 성취도, 사회적 교류)를 종합 분석했다.

복지 실태 종합 평가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27위에 머물렀다. 분야별로는 정신 건강이 36개국 중 34위로 최하위권이었으며, 신체 건강은 41개국 중 28위, 사회적 교류는 비교적 높은 4위를 차지했다.

가장 눈에 띄는 지표는 학업 성취도였다. 한국은 '일상생활에서 읽기와 수학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는 15세 학생의 비율'에서 79%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아일랜드(78%), 일본(76%), 에스토니아(75%)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정신 건강 부문에서는 부정적인 결과가 이어졌다. 15~19세 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평균 10.3명으로, 조사 대상 42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특히 일본, 튀르키예와 함께 자살률 증가 폭이 가장 큰 국가로 지목되기도 했다.

삶의 만족도 지표 역시 낮았다. 삶의 만족도를 0점(전혀 만족하지 않음)에서 10점(매우 만족함)까지 점수로 평가한 설문에서 5점 이상을 선택한 한국 청소년은 65%에 불과했다. 이는 조사 대상 36개국 중 30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신체 건강 지표에서는 아동(5~14세) 사망률이 인구 1,000명당 0.7명으로 낮았지만, 과체중 비율은 33.9%로 43개국 중 7위에 달해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편, 학교 내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은 8.2%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아, 또래 관계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노첸티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최근 5년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와 학업 성과가 하락하는 경향이 보인다”며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항상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두드러지게 언급하는 지표가 있다. “OECD 학업성취도 최상위권, OECD 청소년 자살률 최상위권, OECD 행복지수 최하위권”

이런 지표를 볼 때마다 학생들의 교육과 밀접하게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슬픈 감정을 감출 수가 없다. 아이들의 불행에 나도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르친 학생 세 명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냈다.

세 명의 죽음 모두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지만, 그중에서 10여 년 전에 내가 담임을 하고 졸업시켰던 아이의 죽음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그 친구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했던 학급의 번호가 1번인 학생이었다. 늘 조용한 성격이었고 미술을 좋아해 디자인 전공을 꿈꾸던 학생이었다.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음에도 미술 입시 학원을 다니는 것에 대해 늘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하던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좋지 못했던 아이는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6차례의 수시 지원과 3차례 정시 지원 모두 합격하지 못했고, 졸업하는 날까지 정시에 응시했던 두 개의 대학에 예비 합격 번호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졸업식 전에는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졸업하는 그날까지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졸업하는 당일 모든 학생이 번호 순서대로 무대에 올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증을 받고 옆에 서 있는 담임 교사와 악수를 하며 자리로 돌아가는 순서였는데, 당연 우리반 1번이었던 그 학생은 제일 먼저 무대에 올라오게 되었고 제일 먼저 졸업장을 받고 나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할까? 악수를 할까? 꼭 안아 줄까? 남학생들이라 꼭 안아 주는 것이 좀 그렇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졸업장을 받고 내 앞에 제일 먼저 섰을 때 그 친구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왠지 슬픈, 아쉬움, 허전함 이런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담겨 있는 그 표정,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표정이 내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축하하는 말이 와닿지 않겠지만 틀림없이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합격 소식이 오면 제일 먼저 나에게 알려야 한다. 알았지? 웃어 봐!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야!”

환하게 웃고 있는 다른 친구들 틈에서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아이는 졸업했던 그 학교의 교실에서 열흘 후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3월 2일,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날, 나는 처음으로 비담임을 맡아 홀가분함과 새학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한참 운전하며 학교로 출근을 하는데 7시 30분쯤 갑작스레 학교 전화번호가 찍힌 채 전화가 왔다. 아직 출근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좋지 않은 예감에 전화를 받았고, 교무부장님은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 선생님, 작년 졸업생 중에 김○○ 학생 알아요?”

“네, 작년 저희 반 학생이에요, 왜요?”

“큰일났어요. 지금 어디세요? 얼른 와요. 그 친구 학교에서 목을 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학교로 왔는지 모르게 학교에 도착하고 교무부장님이 말한 학급으로 뛰어 올라갔다. 작년 우리 반이 쓰던 교실은 아니었고 3층 제일 구석진 곳에 있는 교실이었다. 내가 도착해 교실로 뛰어 들어가니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학생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고, 난 졸업식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 눈을 감고 있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찰관 말로는 교실 앞 천장과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버팀목에 끈을 연결해 목을 맸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경찰서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아야 했다.

CCTV를 확인한 경찰관 말로는 학생이 봄방학으로 아무도 등교하지 않던 어느 날 몇 번이나 학교를 드나드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날 나오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혹시 ○○이가 우리 반 교실에도 갔었나요?”

복도에는 CCTV가 없어 정확한 동선은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우리 반 교실은 집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었다. 아이들이 언제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확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가 우리 반 교실이었던 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왜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교실에서 난 너희들의 아빠라고 말했는데, 교실에 왔었으면 당연히 나에게 전화했었어야지. 삶의 끈을 놓고자 하는 상황에서 그 아이가 전화하지 못한 나는 담임의 자격이 아니, 교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내 눈에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부모님을 조사했던 경찰관은 말했다. 그 친구가 대학에 합격했다고,

또한번 나를 원망했다. 합격하면 꼭 나에게 전화하라고 했는데, 아니 내가 먼저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전화하지 못했다.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끝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고 추가 합격이 되지 않았나보다 했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수험번호를 알고 있었고 몇 번의 클릭으로 합격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합격 여부를 한번이라도 확인했더라면 먼저 전화를 했을 테고 그러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합격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대학에 합격했는데 원했던 대학이 아니라 재수하겠다고 부모님께 말했고, 부모님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간다고 나간 뒤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오리엔테이션에 간 줄만 알았던 부모님은 3일이 지난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고 3월 2일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합격하면 꼭 나에게 전화하라는 나의 말을 듣지 않은 그 아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먼저 전화해서 물어보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학교에 왔으면 내 생각이 났을 텐데, 그럼에도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던 그 아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내가 그만큼 곁은 내어주지 못한 교사라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경찰관은 말했다. 사인이 명확하고, 다행히도 선생님은 상담 일지도 잘 적어 놓으셨고, 무엇보다 졸업한 이후의 사건이라 아무런 책임이 없으시다고 그냥 돌아가셔도 된다고.

나는 다행이라는 말과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에 너무나 화가 났다. 하지만 경찰관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이 없다. 1년 동안 아이를 책임졌지만 결국에는 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불쌍한 교사를 위로하는 말이었으리라.

장례식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부모님께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이 아이의 죽음이 아니었더라면 3월 2일에 새로 부임하여 학교장 취임식을 성대하게 열었을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장례식장을 뭐 하러 가냐고 큰소리를 내셨다. 그 아이가 그리고 그 부모는 학교의 죄인이라고 하셨다. 한 아이가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멀리 떠났는데, 부모는 아이를 가슴에 묻었는데 그게 어찌 죄인이 될 수가 있을까?

교장 선생님께 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혹여라도 그런 말을 꺼내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꼬투리 잡아 학교를 상대로 뭐라도 뜯어내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댓거리를 할 힘도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한참을 나를 붙잡고 우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분노의 말과 원망의 말을 쏟아내셨다. 말도 안 되는 원망이었지만 아버지도 말도 안 되는 원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겠지만 나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래야만 아이를 가슴에 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원망을 들으리라,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내가 사과를 하리라, 사과를 해서 모든 것을 돌릴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1년간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비담임이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어떤 선생님은 병가라도 내야 할 텐데 병가의 사유가 명확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때 수 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다행이다’는 말이 아직도 와 닿지 않는다. 어떻게 다행일 수 있는지,


『논어』에도 제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드러나는 구절이 있다.


안연이 죽었다. 소식을 들은 공자가 슬퍼했다.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안연이 죽자 공자의 곡소리가 너무나도 애통했다. 걱정이 된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십니다. 몸을 상하실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게 보였느냐? 하지만 내가 저 사람을 위해 통곡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그러하겠느냐”

안연은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공자보다 30살이나 어렸으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그렇기에 안연의 죽음에 하늘이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고, 몸이 상할 정도로 애통해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자의 죽음을 한 번도 겪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다행일 것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랬음 좋겠다.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은 자식의 죽음과도 같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동안 교육정책을 만드는 교육행정가들도 청소년의 자살율을 낮추고 행복지수를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벼랑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제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학교를, 교사가 더 이상 가르치는 아이들을 가슴에 묻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의 시선에서 교육정책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힘껏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교육정책을 다 뜯어고쳐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만 한다.

SBS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래서 지금 소 읽고 외양간 고치자고요?”

“네, 고쳐야죠. 소 한 번 읽었는데 왜 안 고칩니까? 그거 안 고치는 놈은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

더 많은 아이들을 잃기 전에 뜯어고쳐야 할 것은 다 뜯어고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다시는 아이들을 못 키운다. 뜯어고칠 것은 다 뜯어고쳐야만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끊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신문 기사가 내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실리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 본다.

“예년과 달리 한국 아동·청소년이 학업 성취도는 선진국 중 중위권을 기록했지만,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은 최상위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덩달아 한국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 역시 선진국 중 최상위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그동안 학업성취를 중시했던 학교 문화를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최고의 가치를 두고 교사가 중심이 되어 뼈를 깎는 개혁을 추진한 성과로, K-컬쳐에 이어 K-에듀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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