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요?, MZ세대가 던지는 질문의 힘.

논어, 학교에 스며들다.(3-7)

by 최성조

“이걸요?”, “제가요?”, “왜요?”

요즘 직장에서 상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는 이 세 마디는 MZ세대를 상징하는 ‘3요’다. 얼핏 반항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안에는 업무의 목적·주체·이유를 명확히 하려는 세대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MZ세대는 밀레니얼(M)세대(1981년~1996년생)와 Z세대(1997년~2010년생)를 아우르는 말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2025년 현재, 이들은 20~40대가 되어 직장에서 주축이자 문화의 선도자가 되었고, 자기 성장·일과 삶의 균형·공정성과 평등을 중시하며 기성세대와 다른 소통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MZ세대의 이러한 특징의 원인을 살펴보면, 기성세대가 주축이었던 1970년대는 ‘한강의 기적’ 절정기로,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산업화에 따라 제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입사 지원 1~2차례 만에 49.5%가 취업에 성공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저임금을 토대로 한 불균형 성장정책, 재벌 위주의 성장 우선 정책은 노동자를 ‘SSKK(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는 대로)’의 문화에 길들여 지게 했다.

하지만 MZ세대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인한 기업 구조의 변화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입시, 취업, 승진 등에서 극심한 경쟁을 겪으며 자라온 세대이다. ‘근면하고 성실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는 기존 세대의 관념과는 달리, 경쟁의 결과가 능력보다는 가정환경, 사회적 배경과 인맥 등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공정성의 가치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또한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MZ세대는 정보 습득에 있어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배경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이버 공간을 신뢰하게 되고, 사이버 공간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언제든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정성과 평등, 특히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공정한 경쟁과 원활한 협업을 위해서는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규칙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모든 사람은 모두가 같은 룰 아래에 있어야 하는 의식이 강해 현실에서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면 참지 않고 바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성향을 보인다.

MZ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한 ‘3요’인 ‘이걸요?’, ‘제가요?’, ‘왜요?’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걸요?’는 지시받은 업무의 정확한 내용과 목적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말이고, ‘제가요?’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 왜 자신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말이고, ‘왜요?’는 해당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감 선생님이 교내에서 흡연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발견해서 3학년 학년부장을 불러 흡연하는 학생을 지도하라고 말을 했다고 하자, 교감 선생님은 당연히 학생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학년부장에게 흡연하는 학생을 지도하라고 지시한 것이겠지만, 학년부장 입장에서는 흡연은 교칙 위반이므로 학생부에서 지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흡연 학생 지도를 학생부장이 아닌 학년부장인 내가(제가요?) 교칙을 위반한 흡연 지도를(이걸요?)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왜요?)

물론 이 상황에서 학년부장이

“교감 선생님, 흡연한 학생이 3학년 학생인 것은 맞습니다만, 흡연은 교칙 위반이라 학년부장인 제가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부에서 지도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을 했다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말을 듣는 교감 선생님의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3요’를 말하는 학년부장보다 교감 선생님의 말하기 방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자 학년 총무로, 당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학여행은 여행사에 위탁하여 수학여행을 추진했었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외부 업체 위탁 없이 학교 자체적으로 수학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일정이나 숙소 예약 등은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40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비행기 예약이 제일 큰 문제였다. 여행사에 위탁하게 되면 쉽게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가 있으나 학교에서 단체 예약을 하려고 하니 전용기를 예약하지 않는 한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400여 명의 비행기표를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여행사에서는 비행기 좌석을 미리 선점할 수 있지만, 학교는 개인 자격으로 예약해야 해서 예약과 동시에 결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당시 저가 항공사였던 ‘진에어’가 제주도 취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진에어에 연락을 취했더니 흔쾌히 좌석을 선점해 주겠다고 하여 작성한 수학여행 계획서를 가지고 교장 선생님께 보고를 드렸다. 나름 큰 어려움을 해결해 냈다는 기쁜 마음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 제일 큰 어려움이 왕복 비행기표 예약이었습니다만, 다행히 진에어에서 좌석을 선점해 주기로 하여 해결되었습니다.”

“진에어? 안 돼!”

“네? 왜요?”

MZ세대가 아닌 내가 나도 모르게 ‘왜요?’라고 말을 해버렸다.

“왜요? 왜요?가 지금 교장한테 할 소리야?”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돼서요”

“내가 자네를 이해시켜야 할 군번인가? 진에어가 뭐야? 대한항공으로 알아 봐”

그러고는 더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교장실을 나왔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한 ‘왜요?’를 본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셨고, 나는 일을 추진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왜 진에어를 이용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 이유가 납득이 되어야 다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다면 어땠을까?

“왜 대한항공이 아니라 진에어를 이용해야 하나?”

“네, 올해부터 여행사에 위탁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행기 좌석을 구하려고 하다 보니 대한항공은 개인에게 좌석을 선점해 주지 않아 예약 후 즉시 결재를 해야 하는데, 수학여행 참여 인원이 유동적이고 계획이 수립된 이후 수학여행비를 징수하기 때문에 좌석 선점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진에어는 좌석 선점을 해 주겠다고 하여 진에어를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진에어는 저가 항공사라 안전적 측면에서 부모님들이 불안해하지 않겠나?”

“진에어가 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에어가 대한항공 자회사이고, 안전을 위한 항공 정비는 대한항공 정비사가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저가 항공사라 대한항공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수학여행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만에 하나의 사고에 대비를 해야 하는 곳이네, 특히 학부모의 불안도 고려해야 하니, 인지도가 높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나?”

라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진에어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에게 인식시킬 방안을 찾았을 것이다.


『논어』에는 다음 글귀가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써서 전쟁하는 것, 이것을 일러 백성을 버리는 것이라 한다.”


정확한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고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상대를 버리는 것과 같다. 버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뜻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수학여행 사건이 있은 지 1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업무의 정확한 내용과 목적,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 그리고,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업무 지시를 받고 있다.

지난 주에도 300여 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추진하기 위해 보고 했다가 장소를 변경하라는 업무 지시를 받았다. 300여 명이 참여할 수 있는 규모의 장소와 식사, 그리고 분임 토의 등 다양한 여건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장소를 선정한 곳이라 변경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왜’ 변경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전문직원이 되고 처음 받은 신규전문직원 역량 강화 연수에서 논리적이고 명확한 보고를 위해서는 6하원칙을 활용해야 한다고 배웠다. 6하원칙은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이다.

보고를 받는 사람은 경험이라는 갚진 자산을 가진 사람이기에, 보고 내용을 머릿속에서 구조화시켜 가며 듣는다. 그러다 머릿속에서 그동안 자신이 겪은 업무 대한 경험과 지식에 의해 미흡한 내용과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 내용을 6하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3요’를 하지 않도록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면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은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백성들로] 다 알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 구절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백성들을 따르게 하려면 먼저 그 이유를 알게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하는 ‘왜요?’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왜요’라는 무한 질문을 하는 나이가 있다. 내가 특목고에서 오래 근무를 한 탓인지 지인들은 가끔 나에게 어떻게 키우면 특목고를 보낼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지인들에게 아이들이 ‘왜요?’라고 질문을 하면 그때는 귀찮다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답을 해주라고 답한다. 무조건 답을 해주기 보다 아이가 생각할 수 있게 질문을 같이 해 주면 더욱 좋다. 하지만 ‘왜요?’의 무한 질문에 시달려 본 부모들은 알겠지만,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는 ‘왜요?’면 답을 하겠지만

“엄마 밥은 왜 먹어야 해요?”

“배고프니깐”

“왜 배고픈데요?”

“…”

이와같이 논리적으로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들을 아이들은 무한으로 쏟아낸다. 어떤 때는 나를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별 생각없이 “왜요?”하는 듯한 느낌에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부모는 “그만 좀 물어봐! 나도 몰라!”라고 소리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는 어느 순간에 “왜요?”의 질문을 멈추게 된다.

부모는 “왜요?”의 고통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그 순간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멈추게 되고, 호기심을 멈추는 순간 주변에 대한 관찰력, 탐구력, 나아가 창의력까지 아이들의 무한한 능력 개발은 멈추게 된다.

아이들을 영재로 키우고 싶은가? 그러면 무한한 ‘왜요?’에 대해 무한한 답을 해 주어야 한다. 답을 하기 쉽지 않다면 함께 답을 찾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 정도의 노력도 없이 ‘왜 우리 아이는 창의력이 떨어질까?’ ‘옆집 아이는 이런 생각도 하는데 왜 우리 아이는 이런 생각을 못할까?’라는 원망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은 부모의 탓이니깐.

물론 세상에 대한 탐구력과 창의력을 위해 업무 지시를 자세히 해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 지시에 ‘왜’에 대한 납득이 되어야,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를 것이다.

흔히 협업을 위해서는 수평적 관계에 의한 수평적 협업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수평적 협업 못지않게 수직적 협업 역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직적 협업이 성공하려면 상급자(리더)의 경험과 비전, 그리고 하급자(실무자)의 추진력과 아이디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한데, 피라미드 구조의 직장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지속적으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 팀장님과는 수시로 소통을 하지만 그 위의 국장님과 5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가 않고, 교육감님과는 1분 대화도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급자는 그동안 업무를 해 본 경험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기대하는 결과를 실무자에게 빠르고 자세하게 설명하여 실무자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하는 수직적 협업이 꼭 필요한 것이다.

최근에는 ‘3요’를 넘어 ‘5요’가 나타났다고 한다.

“최 장학사, 올해 인천교육정책 우수사례 보고해 주세요.”

“제가요?”

“네, 최 장학사가요.”

“이걸요?”

“네, 그걸요?”

“왜요?”

“국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니까요?”

“지금요?”

“네, 지금요, 퇴근 전까지 해주세요.”

“쟤는요?”

“……”

곧 ‘어떻게요?’도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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