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교에 스며들다.(3-8)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내가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떠오르는 단 한마디는 무엇일까? 공자는 ‘仁(인)’이었을 것이고, 석가모니는 ‘慈悲(자비)’였을 것이고, 예수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떤 단어를 떠올릴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홍세화 선생님은 2024년 4월 18일 세상을 떠나신다.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으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로 ‘유 키즈 온더 블록(tvN)’에도 출연한 작가인 김민섭은 홍세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3일 전, 간병하던 친구로부터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식을 듣고 홍세화 선생님의 병문안을 한다. 병문안을 하는 내용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책 서문에 실려 있다.
“선생님, 제가 누구에게도 물은 일이 없지만, 선생님께는 꼭 여쭙고 싶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로 말씀해 주셔도 좋아요.” 그는 길게 답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정갈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해 주었습니다. “그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나는,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똘레랑스, 유럽식 관용과 배려라는 그 단어를 알리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저에게/우리에게 전한 단어는 ‘겸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곁에서 오래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참아온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 홍세화 선생님의 마지막 문병을 다녀온 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겸손이라는 단어 하나만 직접 받아줄 수 있겠느냐고. 몇 시간 후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이 왔습니다. “겸손, 홍세화. 2024년 4월 15일.” 그리고 2일 후,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김민섭 작가는 홍세화 선생님의 빈소를 찾았을 때, “홍세화 선생님의 마지막 유언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소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인 ‘겸손’이라는 친필 서명이 이 책 앞 표지에 새겨져 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는 2023년 4월 김민섭 작가가 강릉에 작은 서점인 ‘당신의 강릉’을 열었을 때 축하하러 방문한 홍세화 선생님과 이원재 작가가 함께 북토크를 했던 대담 내용을 출간한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책을 다시 구성한 책이다. 김민섭 작가와 이원재 작가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의 대담 형식이라 무겁고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읽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학교폭력을 비롯하여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결국에는 민주시민 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만큼 시민으로서의 책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김민섭 작가와 이원재 작가가 함께 홍세화 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을 펴낸 책이고, 특히나 홍세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3일 전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친필인 ‘겸손’이라는 글씨가 책에 인쇄되어 있는 책이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 중의 한 권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겸손’을 떠올린 홍세화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셨을까?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은 태도가 있음.’이다. 겸손은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사람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미덕이기에 겸손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다.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조선 시대 초기인 태조부터 세종 때까지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면서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군수에 부임한 뒤, 고을에 존경받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절을 찾아갔다. 맹사성은 고승에게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최고로 삼아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고승의 답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맥 빠지는 내용이었다. 이에 맹사성은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라고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투로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고승이 이왕 왔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고, 이에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차를 따르는 고승의 태도가 이상했다. 찻물이 분명 넘쳤음에도 계속 차를 따르는 것이었다. 맹사성은 놀라서 소리치며, “스님, 찻물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고승은 맹사성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이에 맹사성은 자신의 오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 서둘러 일어나 방문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그만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고승은 웃으며 말하였다. “고개를 숙이면 머리를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이후 맹사성은 높은 관직에 있었음에도 벼슬이 낮은 자를 대할 때면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서 맞아들였고, 상대가 물러날 때도 손을 모으고 몸을 구부린 채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거처하는 집은 초라했고, 바깥출입을 할 때도 가마 대신 소 타기를 좋아해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宰相)임을 알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았다.
앞서 학생들에게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주제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이 ‘낭중지추’는 능력을 이미 세상에 드러낸 교육행정가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교육행정가는 이미 주머니를 뚫을 정도의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날카로운 날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기 힘들다. 진정 날카로운 날을 가진 사람은 그 날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딘 날을 가진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의 날과 자신의 날을 비교하려는 성향이 있다. 맹사성 역시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고승을 찾아갔으나 실상 고승의 날이 자신의 날보다 얼마나 더 날카로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맹사성이 만난 고승의 날은 무딘 날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만한 맹사성은 고승의 날카로운 날에 그만 크게 다치고 만다. 고승과 같이 자신 가진 날카로운 날을 언제든 감추고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능력을 겸손이라 한다.
‘낭중지추’의 진정한 의미는 아직 주머니를 뚫을 정도의 날카로운 날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자신의 날을 곧추 세우려 노력해야 하고, 날카로운 날을 완성한 사람은 그 날을 감추고 드러내기를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논어』에도 ‘겸손’과 관련된 문구가 참 많이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그것을 찾는다.”
바람직한 변화의 주체는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고 그로 인한 문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 실수와 잘못을 해결하는 태도에 따라 군자가 되고 소인이 되는 것이다. 군자는 소인과 달리 실수와 잘못에 대한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군자는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지 않은지,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성찰함으로써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이를 우리는 겸손이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교육행정가는 자신의 날카로운 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향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날을 잘 감출 수 있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치 있고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 욕구가 있다. 특히 성과와 업적을 강조하는 현대의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겸손은 오히려 불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의 능력으로 최고의 성과와 업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최고의 성과와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협업 문화이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남을 알아봐야 하고, 남이 나를 믿어 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남을 믿어야 하는데 겸손한 태도를 지닌 사람은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개인의 성과보다는 전체의 성과 달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겸손한 태도를 지닌 사람의 장점은 경청의 태도와 수용성의 자세이다. 겸손한 태도를 갖춘 사람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 늘 남의 말을 경청(傾聽)하는 태도를 보인다. ‘경청’이란 ‘傾 (기울일 경)’과 ‘聽(들을 청)’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 몸을 기울여 상대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세상에서 겸손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 나에게 몸을 기울여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준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진실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겸손한 사람이 하는 말 또한 나도 경청하게 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지시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로, 사람의 마음은 내가 말로 설득할 때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과 경청의 태도를 갖춘 사람의 주변에는 늘 능력이 있는 사람 즉, 인재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겸손한 마음과 경청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렇다면 겸손의 미덕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겸손의 미덕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몸을 닦는 것이다.”하셨다. 자로가 “이와 같을 뿐입니까?” 하자, “몸을 닦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이와 같을 뿐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요 임금과 순 임금께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은 군자는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즉, 겸손한 태도를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은 것이고, 공자는 “공손한 태도와 공경하는 마음의 자세로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을 먼저 수양해야 사람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로가 “더 갖추어야 할 것은 없을까요?”하고 다시 물으니, 공자께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수양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성인이신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셨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행정가라면 꼭 갖추어야 할 역량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갈고닦아야 한다는, 곧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전설적인 성왕도 어렵게 여겼던 점이라 한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경(敬)을 통한 자신의 수양(修養)에서 비롯된다. 경을 통한 수신(修身) 이후에,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한 것이다. 결국 겸손하고자 하는 자기 성찰의 마음이 평온한 세상을 만드는 근본인 것이므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할 미덕이 ‘겸손’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에서 김민섭 작가는 결국 마지막에 이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어른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홍세화 선생님은
한국에서 어른이라고 하면 완성된 존재랄까 그런 게 전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 의미의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끝없는 변화, 성숙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굳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할 때 자기 변화, 자기 성숙의 여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의 현존재가 미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그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 스스로 미완의 존재임을 의지로 붙들어야만 해요.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완성된 존재일 수 없다면 자신의 잘못된 점, 부족한 점에 대한 부단한 성찰을 통해 수정하거나 보충해 가는 그런 긴장을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살피고 외출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거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런 자세가 참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결국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것은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주고 아끼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끔, 계속 끝까지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세화 선생님께서 평생을 살아오며 깨달은 점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자세가 참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결국은 상대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말로 공자가 말씀하신 자기 성찰로 비롯된 겸손한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겸손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힘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겸손은 단순한 인격적 미덕을 넘어, 타인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관계를 살리는 힘이다. 교육행정가는 교사들이 마음껏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삶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겸손은 서로를 연결하는 가장 든든한 다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행정가로서, 교사로서,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겸손의 태도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 속에서 비로소 학생을, 동료를, 그리고 사회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 홍세화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처럼, 나는 살아가는 동안 겸손의 태도를 항상 떠올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겸손’에 더해 내가 살아가며 배운 또 다른 가치를 떠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