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킥오프(Kick-Off) (1)

달리기의 시작

by 최성조

“헛, 둘, 헛, 둘! 고개 들고, 시선은 멀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오늘도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자전거를 타고 선캡을 쓴 영감탱이가 겨우겨우 달리고 있는 내 옆에서 참견을 한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물어볼 힘도 없다. 물어봐도 영감탱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헛, 둘, 헛, 둘’하며 박자만 맞출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구령을 붙이는 소리의 속도에 따라 나도 모르게 내 발걸음이 맞춰진다. 내가 지금 달리는 속도보다 구령의 속도가 더 빨라 점점 숨이 더 차오른다.

100킬로그램에 육박한 내가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일주일 전이다. 183센티미터에 73킬로그램이었던 16년 전, 무릎을 크게 다친 이후로 운동은 담을 쌓고 살았다. 그 이후로 정체기는 있을지언정 감량기는 한 번도 없이 꾸준한 성장기를 거쳐 나는 지금의 거구의 몸이 되었다.

열흘 전,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아들은 축구클럽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조기축구회다)에서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갑자기 말했다.

“아빠, 아빠 축구 잘하죠?”

나는 비록 축구교실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축구공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최대한 멋진 아빠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으쓱한 표정을 지으며

“야, 아빠 왕년에는 알아 주는 축구선수였잖아.”

“그럼, 아빠 저희 축구 클럽에 한번 나와 주시면 안 돼요?”

순간 예기치 못한 아들의 부탁에 당황해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내 표정을 재빨리 알아챈 아내가

“승훈아, 아빠 배를 봐, 아빠가 축구선수였던 것은 20년 전이고, 아빠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아빠가 축구선수였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 다 알아요. 포털 사이트에 아빠 이름 검색하면 바로 축구선수라고 나오는걸요.”

“승훈아, 그건 20년 전 일이고, 아빠가 축구선수였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우리 가족 빼고는 아무도 몰라요. 설령 최민혁이 축구선수였다는 건 알아도 그게 아빠라는 건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최민혁 이름 검색하면 이름 앞에 ‘전’ 축구선수라고 나오지 않든? ‘현’이 아니라 ‘전’!”

(음, 정말 아무도 모르려나)

“그래도 선출(선수 출신)이면 우리 축구 클럽에 있는 아저씨들보다 훨씬 나을 거 아네요. 아빠 제발요, 우리 이번에 K6리그로 승격하는 데, 아빠가 꼭 필요해요.”

“승훈아, 아빠 축구 하시는 거 한 번이라도 봤어? 못 봤지? 아빠 축구 안 하셔.”

(그래, 맞다 나는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일을 하지만 축구는 안 한다. 그래도 우리 승훈이 어릴 때는 같이 축구를 했던 것 같은데 한 번도 못 봤나?)

“힝! 유튜브에서 아빠 축구 하는 거 봤는데, 엄청 잘 하시던데요?”

(그럼 왕년에는 내가 좀 했지, 하하하 유튜브에 내가 축구 하던 영상이 있다고? 궁금한데 찾아볼까?)

“응, 그게 20년 전이야. 오죽하면 아빠가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코치 못하시고 운전기사 하시겠니?”

“못,,못 하는 거 아니고, 안 하는 거야. 운전을 더 잘하니깐, 사람은 말이야 잘하는 걸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뭐 행복하고,,돈도 벌고,,,”

갑자기 나를 째려보며 아들이 말한다.

“아빠가 잘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나? 그렇지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아야지. 난 운전도 좋아해.)

“맞아, 아빠는 축구 싫어하셔, 그러니 아빠 괴롭히지 마세요!”

(내가 축구를 싫어했나?)

아들과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뒤에 아무도 없는 유소년 축구교실 필드에서 축구공을 드리블 해 보았다. 그런데 드리블과 슈팅이 문제가 아니라 불어난 체중으로 10분도 채 뛰지 못하는 체력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내가 조기축구회에 나가든 나가지 않든 10분도 뛰지 못하는 체력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한창 그라운드를 누비던 시절 전·후반 90분을 뛰면 내가 뛴 거리는 10킬로미터가 넘었고, 그 거리 이상을 전력 질주를 했던 나였다.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 숙소까지 뛰어가기도 했었다. 물론 20년 전의 일이지만,

일단 감량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달리기였다. 10킬로미터를 목표로 코스를 짜기 시작했고, 때마침 집에서 출발하여 소래생태공원을 지나 소래포구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거리가 정확히 10킬로미터였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크게 다쳤던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달려 보고 있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지 4일째부터 갑자기 자전거를 탄 어떤 영감탱이가 나타나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은 기필코 저 염감탱이를 붙잡고 왜 남의 일에 간섭하냐고 꼭 물어봐야겠다.

“저기요,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자, 계속 달려야지, 멈추면 어떻하나? 헛, 둘, 헛, 둘”

“아니, 달리든 걷든 제 맘이지 왜 간섭을 하시냐고요. 그냥 자전거로 가던 길 가세요.”

“자, 계속 달려! 그러면 난 공원에 먼저 가 있을게. 얼른 와요!”

하시며 쌩 가버리신다. 이게 뭐지?

킥오프 그림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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