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인천시티FC 유소년 축구교실 정훈 감독님께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제도 술을 드시고 주무셨는지 신호음이 한참을 울리도록 전화를 받지 않는다. 끊으려고 하는 순간 낮고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민코치가 나간 이후로 감독님의 목소리에 힘이 더 빠졌다.
“감독님, 초등학교 고학년반 지도를 제가 맡겠습니다.”
갑자기 감독님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나 높아졌다.
“최 코치, 정말? 너 진짜야?”
“네”
“농담아니지?”
“네”
근데 갑자기 감독님 목소리가 다시금 차분해졌다.
“야, 근데 아무리 작은 축구센터라고 하지만 말야. 그게 있잖아.”
“네?”
“아, 그게 근데, 그게 말이야.”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다. 할 말이 있으신 듯 한데 괜히 말꼬리를 흐린다. 그새 다른 코치를 구하신건가. 아니면 축구센터 문을 닫기로 하신 건가? 겨우 용기를 낸 건데 감독님 말에서 나올 말이 겁이 난다. 그냥 농담이었다고 말하고 끊을까? 그래 내가 코치는 무슨 코치야.
“감독님 말씀하세요.”
“그 유소년을 지도하려면 그 자격증이 있어야 해. 그래서 당장은 힘들고, 일단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서 자격증을 받아와야 하니깐, 얼른 일정을 알아보자고.”
“아, 하하, 감독님 저 자격증 있어요.”
“응? 너 자격증 있어? 운전면허증이나 워드 프로세서 자격증 말고, 그 AFC에서 인증한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네, 저 준프로까지 지도할 수 있는 AFC B급 자격증 있어요.”
다시금 감독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그건 또 언제 땄냐?”
“저 은퇴하고, 방황할 때 집사람의 권유로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입학했었잖아요. 그때 땄죠. 저 교생실습도 했고, 체육교사 자격증도 있습니다.”
“우와, 이 새끼, 아니 최 코치가 엘리트였네, 당장에 초등학교 고학년반 코치 맡고, 우리 전단지에 최코치 얼굴 딱 박아서 홍보도 하자고.”
“네, 감독님, 근데 아시죠? 저 아직 그거. 그거 극복을 못했어요.”
“뭐? 입스?”
‘입스’라는 단어는 나에게 금기어인데, 너무나 쉽게 말씀하셔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래 나는 사실 무릎 부상도 심했지만, 무릎은 재활로 거의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입스라는 정신적인 부상이 있었다. 그 부상을 결국 극복하지 못해 은퇴를 했던 것이다. 내가 입스로 은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이 감독님이시고, 그래서 감독님은 그동안 내가 운전만 하도록 배려를 해 주셨던 거고, 내게 아이들을 지도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얼마나 힘드셨으면 나에게 아이들 지도를 하면 안되겠냐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너무나 힘들고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말하고 나니 나 역시 너무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입스를 이미 극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네”
“야 최 코치, 최 코치더러 뛰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애들 지도하는 건데 입스가 뭐가 중요해. 괜찮아. 그라운드에 서면 막 토하고 그러는 것만 아니면 돼.”
“에이, 그건 아니에요.”
“그럼 됐어. 최 코치 축하해. 이제 밥값하자.”
‘그래, 밥값하자’ ‘밥값? 뭐야 그럼 그동안 운전한 것은 밥값이 안 됐다는 거야? 나 운전 진짜 많이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