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양꼬치와 칭따오 맥주, 아들 녀석은 마라탕과 꿔바로우, 동네 양꼬치집에서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했다.
아들이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이다. 아마도 며칠 전에 말한 축구 클럽에 나와달라는 말을 또 하려고 하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해 죽겠는데 아들이 이 말을 하면 좋은 말로 답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아내에게 뭔가를 말하기 위한 눈치를 보고 있다. 내가 뭔가를 고민할 때 아내에게 그 고민을 털어 놓으면 항상 정답을 보여줬다.
내가 부상을 당해 아내가 실습하는 병원에 입원을 해 있을 때도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는 다른 의료진들과 달랐다.
수술은 잘 됐으니 재활은 당신의 몫이다. 그러니 재활을 잘 해보라고 무심하면서도 무성의하게 말하던 의사와 다르게,
항상 내 기분이 어떤지 눈치를 살피며 재활에 성공하여 그라운드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미래만을 이야기해 주던 간호사들과는 다르게,
재활 시간이 되면 병실로 찾아와 재활하러 가야 한다고, 조금만 힘들어도 짜증을 내며 주저 앉아 버리던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며 다정히 말해주던 물리치료사와 다르게,
내 아내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나에게 재활을 하지 않으면 평생 축구는커녕 제대로 걷기도 힘들 거라고, 그렇게 영원히 침대와 한몸으로 살아라며 독설을 날렸다. 또 재활을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대신에 나중에 축구를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남탓을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러는 아내에게 나는 한마디 했었다.
“재활을 하면 저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건가요?”
나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다시 너무나 축구가 하고 싶은데 재활을 해도 축구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 그러면 재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 탓이 되어버릴까봐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부상을 당한 것은 내 탓이 아닌데 말이다.
아내는 나의 질문에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 그게 그렇게도 하고 싶어요? 축구, 그게 환자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가요? 그렇다면 재활을 열심히 해 보세요. 해보고 나서 말하세요. 재활을 성공한다면 축구뿐만 아니라 더 힘든 것도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때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눈빛, 그 당당한 눈빛에 나는 반했다. 의료진도 다른 간호사들도, 물리치료사도 항상 나에게 좋은 말을 했지만 제대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나의 시선을 피하는 눈빛에 나는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고, 재활을 해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그 당당한 눈빛에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저 사람만 믿고 재활을 하면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때까지 나는 여전히 나를 이렇게 만든 선수를 원망하고 있었고, 따놓은 당상이던 신인왕을 놓친 것을 억울해 하고 있었다. 어쩌면 평생의 꿈이었던 국가대표와 해외진출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겁이 났었는데, 아내는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내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고 죽을 힘을 다해 재활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운동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아내였기에, 나는 항상 힘든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 아내에게 의견을 구했고 늘 아내의 뜻에 따라 결정했다. 오늘도 내 인생에 또 다른 어려운 질문을 아내에게 던질 것이다.
‘여보, 나 다시 축구가 하고 싶어. 해도 될까?’
아들은 나의 눈치를,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어색한 식사 시간이 흘러가고 거의 식사가 끝날 무렵 아내에게 말을 건내려는데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부자들 오늘 참 이상하네. 잘 먹지도 않고, 할말이 있는 듯한 분위기인데, 말은 안하고. 오늘은 내가 제일 많이 먹었으니깐, 오늘 저녁값은 내가 낼게.”
순간 말을 하려는 타이밍을 놓친 내가 당황하며 말했다.
“으응? 응, 고마워, 잘먹었어. 이 집 양꼬치 참 맛있어 그치?”
“네, 엄마 이 집 마라탕도 정말 맛있어요. 남은 꿔바로우는 포장해서 가도 돼죠?”
“자, 그럼 밥은 먹었으니, 우리 코노갈까?”
“코노? 코노가 뭐야?”
“참, 아빠는 코노도 몰라요. 코인 노래방.”
“아, 코인 노래방, 가자, 엄마가 가고 싶다면 가야지.”
내 머릿속에는 아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코인 노래방에 가서 어떻게 아내한테 말을 하지? 프로포즈하듯 마이크에 대고 크게 말해 버릴까? 그러기에는 심각한 말에 비해 너무 웃긴 상황이 연출될 텐데. 그리고 축구가 하고 싶다고 말을 하면 분명 아들이 자기네 축구클럽에 오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없을 때 말을 해야 한다. 나는 직접 뛰는 축구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것인데 말이다. 그럼 집에 가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말을 해야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는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 아들이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오게 된 노래방이라 뭘 불러야 하나 하며 선곡책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신청한 노래의 전주가 흘러 나온다. 잔잔하게 시작하는 록발라드같다. 무심코 툭툭 던지는 노래 가사에 아들의 거친 목소리가 노래에 참 잘어울렸다. 나도 모르게 아들을 쳐다보게 된다. 나를 닮아서 참 노래를 잘 한단 말이야.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그런데 노래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박힌다.
‘어라. 가사가 나한테 하는 말 같잖아.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라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나’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그래 지금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고 있어.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그래 나는 정말 멋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멋진 축구 선수를 길러내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우리 김현철 감독님 같은 분이 되고 싶어서 나는 그동안 축구교실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다시 축구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 특히 축구 선수로 실패한 내가 축구를 가르친다고 하면 다들 비난하고 비웃을까봐 무섭다. 과연 누가 나에게 축구를 배우려고 할까? 하지만 내가 가르쳐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을 한번 가져보면 어떨까. 그래도 될까? 해도 될까? 그동안 감추고만 있었던 나의 꿈을 이제 세상에 내보내도 될까?
이런 저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뭐야 당신 지금 아들의 노래에 감동 받은거야? 눈물까지 흘리고?”
“아, 아냐. 야 근데 이 노래 좋다. 이 노래 제목이 뭐야?”
“가수 임재범의 ‘비상’이요.”
“비상,,”
“자, 다음 엄마가 불러요.”
“그럼 엄마도 아빠가 눈물을 흘릴만한 노래를 한번 불러볼까? 이거 여자키로 부르기 힘든데, 그래도 한번 불러볼게.”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길 바다로 바다로 갈 수 있음 좋겠네
어쩌면 그 험한 길에 지칠지 몰라
걸어도 걸어도 더딘 발걸음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더 상처받지마 이젠 울지 마 웃어봐’
내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이 담긴 노래였다.
아내의 노래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아내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는 망설이거나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 감독님께 전화해서 초등학교 고학년반을 맡겠다고 말씀드리려 한다. 그리고는 이제 지도자로 첫발을 내 딛어 보려한다.
나도 강산애의 ‘할 수 있어’를 열창하고, 세 네곡씩을 더 부르고 노래방을 나왔다.
“여보, 흰수염고래 노래 너무 좋던데?”
“내가 잘 불러서 그런거야.”
“응, 정말 잘 부르더라. 나한테 보내는 노래지?”
“아니, 아들한테 불러준 노래인데? 아들,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겠지만, 힘들어도 잘 참고 견디자. 엄마 아빠는 항상 네 편이야. 알았지?”
“네 엄마!”
“뭐야, 나한테 불러준 노래 아니었어? 난 또 나한테 불러준 노래인줄 알고 좋아했잖아.”
“어이구 그랬쪄요? 하하하”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요.”
“응, 말 안해도 돼. 하고 싶은대로 해. 어차피 당신이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야, 나는 당신이 재활을 위해 물리치료실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모든 결정을 믿고 지지하기로 다짐했던 사람이야. 지금도 다르지 않아. 어떤 선택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난 당신 편이야. 마음 가는대로 해!”
“그래, 그럴게 난 흰수염고래니깐!”
나를 흘겨보며 아들이 말한다.
“아빠,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