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마미 Feb 12. 2022

하마터면 익숙함에 속을 뻔했다.


늘 내 곁에 든든하게 있어주었던 남편 없이 보낸 이틀 밤. 그 시간들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집구석이 왜 이렇게 휑하게 느껴지는지, 마음 한 곳이 허전했다.

남편의 빈자리를 잊으려 집안일도 하고 글도 쓰고 강의도 들으며 시간들을 바삐 보내려고 했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이 안 오는 마지막 밤에, 곤히 자는 아이 얼굴 한참 바라보다가 내 자리에 누워 눈 감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었다. 그 이후에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남편이 드디어 돌아왔다.


남편은 아들을 보자마자 한아름에 달려와서는 이곳저곳 쪽쪽거리고, 아들도 며칠 만에 본 아빠가 반가운지 큰 소리로 꺅- 거렸다. 나는 곁에서 부자의 애틋한 상봉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마침 날씨도 좋고, 가족 상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강정보로 나들이를 급 떠나기로 했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고 오랜만에 따뜻한 날씨여서 집에만 있기는 너무 아까웠다.

이동 중에 아이가 잠들어서, 차 안에서 좀 더 재우고서야 밖으로 나섰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얼마 걷지 않았는데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오빠네 부부들이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치킨을 먹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그간 못 봤는데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못 본 사이에 훌쩍 자란 아이들은 팔다리가 길쭉해졌다. 누나형들은 가장 어린 아가야가 신기한지 방풍커버 너머로 빤히 바라봤다. 이런저런 근황들 나누며 한참 수다 떨다가 인사를 나누고 우리 가족끼리 주변을 산책을 했다.  


다들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오랜만에 북적거림을 느껴본다. 아이도 방풍커버 투명창 너머로 사람들 구경하느라 눈이 이리저리 바쁘다.

강변에 잠시 서서 붉게 물든 노을이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진하게 내비치는 것이 아주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노을은 마음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반갑다. 노을의 따스함을 머금은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귀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나 : "저 반대편에 오는 가족들, 셋 다 똑같이 생겼지 않나? (웃음)"

남편 : "여보도 그런 생각했나? 나도.. 특히 눈이 복사 붙여 넣기인 줄 (웃음)"

나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도 닮아 보이려나?"

남편 : "그러지 않을까?"



나 "우리 저리로(절로) 가자............. 교회로 가지 말고"

남편 "에....?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오늘의 대화를 적어보니,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알고 보면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참 많다. 남편의 개그를 자주 듣다 보니, 내가 어떤 말을 하면 맞받아 칠 남편의 말도 미리 예상해서 먼저 해버리기도 한다. 신랑은 그저 웃는다. 부부는 모습도 생각도 닮아가나 보다.







최근 남편이 없는 일상을 보내며, 떠올랐던 말이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나의 일상에서 남편과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익숙했다. 익숙함은 참 무섭기도 하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끔 하니 말이다. 남편의 부재로 당연함이 아니게 되니 달리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할수록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남편의 배려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이유로 때론 막 대하기도 한다. 남편은 툭툭 내뱉는 나의 가시 돋친 말들 때문에 참 많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나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보니 늘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심리학도여서 그런 것인지 인간에 대해 통찰하고 이해하는 그 깊이는 존경스러울 정도다. 이 사람 자체가 속이 원체 깊고 넓기도 하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참 고맙다.



"휴... 하마터면 오늘도 익숙함에 속을 뻔했네! 오늘은 속지 않아서 다행이다."



매일의 일상에서 남편의 소중함을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익숙함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잔뜩 치우쳐진 나의 중심을 바로잡고, 균형 있게 남편에게도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남편의 입장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채워주고자 애쓰고 있다. 이런 내 마음을 남편도 아는지 기뻐해 주는데 그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함께 행복해진다.



가습기에 물 채우는 것을 깜빡한 것 같아 슬그머니 침실 문을 열어보니, 아이를 재우겠다던 남편은 아이와 함께 곤히 잠들어있다. 똑같은 포즈로 달콤한 잠에 빠진 부자를 뒤로 하고 나서는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온다.


'내 소중한 사랑들아, 굿 나잇!'

 


매거진의 이전글 꿈쟁이가 되고픈 욕심덩어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