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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하고 글 하나만 같이 쓰자

고지식하지만은 않았던 1년 6개월 간의 트집잡기

by 고멘트

22년 초 겨울이 실제로 추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쌀쌀했던 걸로 기억난다. 나는 당시 모종의 사유로 첫 엔터 회사를 떠나 신문기자 친구의 가이드로 언론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탈엔터를 결심하게 되었던 이유가 씬에 잘 알려져 있는 물리적인 힘듦이나 경제적인 처우 때문은 아니었다. 리스펙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서로가 부정적인 에너지만을 내뿜기 바빴던 조직 문화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람 관계부터 어긋나 있는 환경에서 배우면서 성장한다는 건 초 긍정맨인 나에게도 무리였다.



그러나 호기롭게 도전하여 언론사 면접까지 보게 된 상황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때 나는 다대다 면접을 처음 겪어본 사람이었고, 덕분에 남들이 면접관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구경할 수 있었다. 엔터와 미디어 업계가 그러하듯, 지원자들은 오랜 시간 간절하게 기자를 꿈꿔왔던 친구들이 많았다(면접용 스토리텔링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옆에 앉은 나는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글 좀 끄적거릴 줄 아니까 이력서를 넣어 본 지원자'일 뿐이었다. 면접관으로부터 과한 개성을 지적하는 말까지 듣게 되니 문득 “내 몸이 엔터인 체질이긴 하구나”라는 결론이 도출되었고, 어떻게 기자가 된다 하더라도 꿈과 간절함을 가진 바로 옆의 지원자들처럼 즐겁게 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다시 엔터로 돌아가기 위해 음악 리뷰를 시작하고 싶었다. 과거 2명의 친구들과 ‘관종별곡’이라는 신보 리뷰를 진행했는데, 그 친구들은 이미 직장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멤버를 찾아야 했다. 때마침 음악 고인물 지인이 관련해서 글을 꾸준히 쓰고 싶어 했고, 블로그에서 만나 친해진 엔터 지망생 동생도 이해관계가 맞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관종별곡이라는 이름을 ‘고지식한 놈들의 트집잡기’인 고멘트로 변경했다. 실제로 고멘트의 포문을 열었던 우리 세명은 굉장히 고지식한 놈들이었다.



22년 3월, 고멘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내가 바로 취업에 성공해 버리는 비보(?)가 찾아왔다. 물론 엔터인에게 신곡을 모니터링한다는 건 너무나도 기본적인 소양이기에 나는 고멘트를 떠나진 않았다. 하지만 3명이 매주 글을 쓰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기를 2주로 늘릴까 한 달로 늘릴까 고심하던 찰나에 멤버 블로그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너무 참여하고 싶다”라는 그 이웃의 말에 우리는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고, 어찌어찌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가진 뒤 고멘트의 멤버로 합류하도록 이끌었다. 고멘트가 출신이 어떻든 친하든 말든 “너 내 동료가 돼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여름이 되자 타 직종에서 일하고 있던 형이 고멘트에 관심을 가졌다. 취준생 포트폴리오 만들기를 위한 자리기도 하지만 음악 글쓰기는 일종의 취미 및 자아실현으로도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명은 매주 리뷰를 깔끔하게 굴리기에 딱 떨어지지 않았고, 고멘트는 처음으로 공개 모집을 진행해서 6명의 구성원을 갖추게 되었다. 더불어 3명씩 팀이 되어 움직이는 시스템도 이때 완성되었다.



이후 고멘트는 엔터 취준 라인들에게 소소하게 관심을 받으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외부에서 먼저 들어오고 싶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고, 기존 멤버들의 믿음직한 지인을 섭외하기도 했으며, 뻔하지 않은 사람을 구하고 싶을 땐 공개모집을 진행했다. 올해 초에는 글쓰기가 아닌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개설하고 영상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멤버들을 모집했으며, 이때부터 내부에 멤버들끼리 고전 음악듣기 등 서브 스터디를 조성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 탈퇴한 사람은 1명도 없어서 우리는 필요해서 사람을 모집한다기보다는 좀 더 큰 커뮤니티를 지향하고자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이후 기획안 발표 행사, MT 등 소소하게 내부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학연, 지연 없이 음악이라는 교집합 하나로 굴러가는 거대 소모임/동아리인 셈이다.



이제는 ‘엔터 취업을 원하는 취준생들을 위한’, ‘정보 교류가 필요한 엔터 현직자들을 위한’, ‘음악에 대해 떠들고 싶은 일반 직장인들을 위한’, 혹은 ‘술과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등 대충 음악 리뷰 모임으로 소개하는 고멘트에 딱 잘라 하나의 수식어를 붙이긴 어렵다. 그렇지만 글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조직 문화와 관련해서는 고멘트만의 긍정적인 무언가가 있음은 분명하다. 취준생들은 현직자에게 가까운 형누나처럼 자유롭게 정보를 얻어가고, 현직자들은 취준생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와 팬덤으로서의 의견을 받는다. 더불어 취준생끼리는 동지로서, 현직자끼리는 실무 팁을 공유하는 장으로서 기능한다. 그 외 음악을 좋아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음악 살롱의 역할도 한다(생각보다 오프라인에서 음악이야기를 딥하게 할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다). 이러한 점들이 뒤섞여 고멘트 고유의 문화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엔터 산업은 사람들끼리 끊임없이 부딪히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갑툭튀하는 현장 일을 해야 하고, 트렌드 파악과 함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하니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구조다. 여유가 없는 현실에 주니어들을 위한 교육은 전무하다. 나는 그 역할을 조금이나마 고멘트가 해결해 줄 거라고 장담한다. 단순히 지식의 누적이 아닌 태도와 씬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열정은 하루이틀 강의를 듣는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음악이란 입체적인 상품을 분석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시선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며, 그 결과로 자신만의 좋은 기준과 미적 감각이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음악으로 떠들고 웃는 고멘트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 덕분에 많은 멤버들이 성장해서 좋은 인사이트로 무장한 현직자가 되었다. 고멘트의 문화를 학습한 멤버들이 다양한 회사에 흩어져서 조직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꿔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비약일까? 여전히 작고 초라하지만 1년 6개월 간의 ‘트집잡기’에 동참해 준 구성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by 최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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