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dinary Heroes - ‘Open ♭eta v6.1’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이하 엑디즈)는 데뷔 싱글 ‘Happy Death Day’를 통해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 부드럽고 청량한 아이돌 밴드 이미지와는 달리 엑디즈는 대담한 가사와 사회 풍자 그리고 강렬한 기타 기반의 밴드 사운드를 내세우며 거칠고 파격적인 이미지를 내비쳤다. 그렇게 엑디즈는 K-POP 시장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영향으로 <2022 MAMA AWARDS>에서 신인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이후 엑디즈는 미니 1집 [Hello, World!]부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미니 4집 [Livelock]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그리고 최근 정규 1집 [Troubleshooting]과 디지털 싱글 ‘Open ♭eta v6.1’로 새 챕터의 서막을 올렸다. 지금의 엑디즈를 보고 있으면, 나도 그들처럼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긴다. 평범했던 소년들이 어떻게 히어로가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접속해보자
무미건조한 일상 속 평범한 소년들은 각자 자신이 락스타가 되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가상세계 ♭form(이하 플랫폼)의 존재를 알게 되며 그 세계에 호기심을 품는다. 그렇게 그들은 플랫폼에 접속하게 된다. 이 공간에서 만난 여섯 명의 소년들은 함께 엑디즈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현실세계에서 그저 상상만 했던 꿈을 실현한다. 엑디즈의 세계관은 이러한 메타버스 설정이 있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엑디즈의 앨범명은 모두 IT 용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세계관에 충실하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점. 이게 꽤나 흥미로운 포인트다. Hello, world!는 개발의 시작점으로, 사용자는 Hello, world!를 반드시 출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첫 과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니 1집 [Hello, world!]는 엑디즈의 시작점이며,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출력하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앨범이다. 여기서 엑디즈는 자신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존재들에게 반항하고 그런 이들을 모두 빌런이라 칭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대 위의 히어로라고 말한다.
Overload는 지나친 정보량 때문에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한 과열상태로, 과부하를 뜻한다. 이러한 의미와 같이 미니 2집 [Overload]에서는 엑디즈의 여정에 과부하가 생긴 듯 보인다. 여전히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들에게 강한 반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열이 발생한다. 지나치게 히어로를 자처한 행위는 엑디즈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빌런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미니 3집 [Deadlock]은 [Overload]에서 발생한 혼란의 심화로, 시스템상 둘 이상의 프로세스가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고 대기하는 일종의 교착상태를 의미한다. [Deadlock]에서는 영웅과 빌런이라는 두 프로세스(주체)를 두고 혼란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나, 결국 자신들의 내면에도 악마와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난 나일 뿐이야’라고 외친다.
Livelock은 Deadlock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반복하는 작업이다. 미니 4집 [Livelock]의 타이틀 ‘Break the Brake’ MV에 나오는 경찰차는 [Deadlock]의 타이틀 ‘Freakin’ Bad’ MV에서도 등장한다. Livelock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행위라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동일한 오브제의 반복은 ‘루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엑디즈는 [Livelock]을 통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일정 구간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그들은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끈질긴 Livelock을 거쳐 엑디즈는 정규 1집 [Troubleshooting]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된다. Troubleshooting은 오류를 해결하는 행위로, 그들이 발견한 해결의 열쇠는 바로 ‘우리’에 있었다. [Troubleshooting]의 타이틀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에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가상현실에 몰두하며 진짜 현실을 망각한 자신들에 대한 반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현실을 다시 마주하기로 다짐하고, 가상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것은 함께 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철창을 허물고 현실세계로 나온다. 그렇게 엑디즈는 단단해졌으며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Troubleshooting]으로 가상세계에서의 서사를 마치며, 엑디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주는 메시지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 인간이 속할 곳은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Open ♭eta v6.1’는 현실 무대에 나온 엑디즈의 첫 여정으로, 특유의 기타 사운드가 더욱 강해져 견고해진 느낌을 준다. 여전히 밴드 골격도 살아 있다. 눈여겨볼 것은 비주얼적인 요소다.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떠오르게 하는 ‘소년만화’ MV는 기존과는 조금 달랐다. 이전까지 엑디즈의 MV는 주로 그들의 퍼포먼스에 포커싱 되었지만 ‘소년만화’에서는 스토리가 생겨 엑디즈의 퍼포먼스와 스토리를 번갈아 보여주며 재생된다. 의상도 플랫폼을 탈피함과 동시에 비범함을 벗었고, 현실세계의 청춘물처럼 교복 차림을 하고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한결 다가가기 편했다. 사운드는 강렬하지만 비주얼이 청량해서 새로운 엑디즈 맛이라 신선하다.
스토리에 대한 얘기도 하자면, MV에 등장하는 소녀는 매점 딸기 케이크을 얻기 위해 학우들과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다. 여기서 나오는 ‘최악의 상황에 주먹을 뻗는다. 몇 번이든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라는 가사로 이루어진 후렴은 소녀가 딸기 케이크를 무사히 얻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녀는 딸기 케이크를 얻지 못한다. ‘쓰러져도 마지막엔 일어나 I’ll never die’라는 노랫말과 함께 노래가 끝나며, 엑디즈는 책상에 엎드려 있는 소녀 옆에 무심히 딸기 케이크를 올려두고 떠난다. 가볍게 보면, 포기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엑디즈는 데뷔 때부터 ‘WE ARE ALL HEROES’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는 ‘히어로(주인공)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소년만화’ 이전까지의 엑디즈만 보면, 이 문장에 동조하기 어렵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현실을 넘나든다는 세계관 설정에서 오는 부조화, 둘째로는 영웅을 자처하지만 플랫폼 공간에서 그들이 영웅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나 이번 디지털 싱글 ‘소년만화’에서 드디어 엑디즈에게서 누군가를 돕는 진정한 히어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소녀에게 딸기 케이크를 얻어주는 게 결코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히어로적인 ‘선한’ 행위임은 분명하다. 이로써 엑디즈는 진정한 자아 실현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누군가는 엑디즈의 ‘소년만화’를 보고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니메이션 <나루토>속의 전설의 닌자 지라이야가 쓴 ‘근성 닌자전’을 보고 영웅이 되는 꿈을 꾼 나루토처럼
엑디즈는 확고한 콘셉팅과 독보적인 음악성으로 타 아이돌 밴드와는 차별점을 보인다. 다른 그룹들이 청춘과 사랑을 주 키워드로 청춘의 아름다움, 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 등 늘 같은 레퍼토리로 부드럽고 청량한 맛의 이지리스닝을 보여줄 때, 엑디즈는 현실에 대한 반항, 위선자들에 대한 비판과 사회 풍자 등을 소재로 남들 따위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는 거칠고 매운 마라 맛의 헤비한 록 사운드를 보여줬다. 미니 1집부터 현재까지 텍스트와 세계관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스토리텔링도 엑디즈만이 보유한 유일한 정체성이다.
이전부터 전통적인 록 팬들은 아이돌 밴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표출해왔다. 주된 이유는 보통 아이돌 밴드가 상업적이고 가벼운 음악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음악적 깊이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엑디즈는 ‘우리는 달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엑디즈는 꽤나 록 본연의 스피릿을 갖춘 밴드다. 데뷔 초중반에 비해 현재는 대중적인 사운드와 줄다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록 특유의 저항정신, 거친 사운드로 밴드 골격을 잃지 않고 있으며, 곡을 통해 그들만의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라이브 퍼포먼스 실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많은 록 팬들이 엑디즈 콘서트에 가서 그들의 팬이 돼서 오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놀랍게도 엑디즈 영웅전은 아직 정식 런칭을 하지 않은, 오픈 베타 상태다.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처럼 탄탄하고 꾸준한 스토리 텔링과 아이돌과 밴드 사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한 이 밴드의 행보가 상당히 기대된다. 앞으로 어떤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줄 지 모두 엑디즈를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