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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Oct 31.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10월 4주)

로제/Bruno Mars, 율음, 제니, Kelly Lee Owens 외


"어그로는 이렇게 끄는 겁니다"


1. 로제 (ROSÉ), Bruno Mars - ‘APT.’

 : 술자리 게임 '아파트 게임'의 구호를 후렴구로 쓰는 색다른 발상,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의 콜라보, 해당 곡의 주인공이 블랙핑크의 로제라는 점까지. 궁금해서 들어볼 수밖에 없는 조합이 아닐까. 호불호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트로와 후렴구가 특히 인상적이다. 그동안 로제는 블랙핑크로서, 또 각종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로서 화려하고 시크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싱글을 통해 단숨에 밝고 친근한 대중 가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모두에게 익숙한 팝송 Tony Basil의 ‘Mickey’를 샘플링한 곡으로, 전형적인 후크송 스타일의 팝 락이다. 2분 50초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확실한 기승전결과 탄탄한 보컬로 완성도를 높였다. 또 점차 고조되어 폭발적인 고음의 브릿지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구조까지 기본에 충실한 곡이다. '게임 구호'를 활용해 제작된 곡의 정체성과도 어울리는 복고적이고 쉬운 장르로 거부감을 덜어냈다. 


수없이 반복되는 후렴구 탓에 강한 중독성을 갖는 곡이지만, 한국식 발음의 '아파트 아파트'가 내내 등장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만하다. 이러한 진입장벽을 허무는 것은 곡에 완벽하게 녹아든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케미가 아닐까 싶다. 분홍색 배경과 검은색 옷으로 블랙핑크를 표현했다는 귀엽고 단순한 뮤직비디오까지 즐거운 감정 전달에 충실한 음악이다.





"처음은 아쉽게도 60% 율음"


2. 율음 - [CICADA] 

루영 : 스윙스가 당시 위더플럭(현 AP Alchemy 산하 레이블 저스트뮤직)에 영입한 '최연소' 래퍼로 화제가 되었던 율음이 영입된 지 2년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레이지 장르 중심으로 전자 사운드와 오토튠을 자주 활용하는 래퍼였기에, 이번 앨범에서 오토튠을 많이 덜어내고 재즈와 R&B 기반의 샘플링 트랙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장르 스펙트럼을 확장시킨 게 가장 눈에 띄는 점이었다. 


그러나 일부 트랙의 경우 칸예 웨스트를 레퍼런스로 삼은 게 많이 드러나는 지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Sky’의 칩멍크 소울(보컬 음정을 높여 샘플링하는 기법)을 차용한 부분에서는 칸예 웨스트의 대표곡 ‘Through the Wire’을 들었을 때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밖에도 ‘Hold My Hand’, ‘Mr. No Blues (I’m Like That)’와 같이 샘플링을 시도한 트랙에서는 칸예 웨스트의 정규 1집, 2집에 수록된 밝은 분위기의 곡들과 궤를 같이 한다고 느꼈고, 오히려 전자음과 신스베이스, E.P가 리드하는 ‘Back To Work’와 ‘True And Honest’에서 '율음'으로서의 음악적 자아가 가장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기존의 스타일을 넘어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 하나, 정규 앨범인 만큼 '율음'다움이 '칸예 스타일'에 가려진다고 느껴진 부분은 앞으로의 프로듀싱 과정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15세의 나이에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레퍼런스 재해석을 포함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혼자서 다 해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성과이다. 랩핑은 단조롭고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는 편이나, FLEX나 자기 과시보다는 아티스트/래퍼로서의 고민과 패기, 청소년기에 겪는 성장통에 대한 자기 고백과 성찰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Masks : Side A], [Masks : Side B]를 발매했을 때와 비교하면 가사와 랩핑, 편곡 스타일 면에서 성장이 눈에 띄게 보이는 아티스트이기에, 향후에는 ‘100% 율음’을 선보일 수 있는 기량을 다음 정규 앨범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단조롭지만 매력적인 주문"


3. 제니 (JENNIE) - ‘Mantra’

키키 : 모두가 손꼽아 기다렸던 제니의 컴백. 드디어 제니가 YG를 떠나 새로 설립한 회사에서 보이는 첫 솔로 앨범이 발매되었다. 제니가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프로듀싱 능력까지 선보인 곡이다. 댄스와 일렉트로닉 팝을 기반으로 한 음악으로 신스 사운드가 세련되게 들린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보다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한 매력이 있다. 음역대가 다이나믹하게 변하지도 않아서 사운드적으로 풍성하게 명암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미니멀한 비트가 오히려 제니의 보컬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제니의 안무, 화려한 퍼포먼스에 주의가 집중되어 시청각의 발란스가 잘 맞는 듯했다. 이번 앨범은 특히 음반보다도 국내 음악 방송에서 보여준 라이브 무대에서 훨씬 제니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 역동적인 안무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발성과 성량으로 탄탄한 가창력까지 보여주어 스타성이 더욱 돋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제니의 곡을 음원으로만 들었을 때 다소 단조롭다고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운드도 트렌디하고 이국적이어서 유니크한 느낌도 나는데 약간 밋밋하게 느껴진 것은 전체적으로 낮은 음역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곡 도입부부터 코러스로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멜로디를 더 각인시키기도 했지만, 키가 대체적으로 낮아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확 터지는 느낌이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방송에서 보여준 라이브는 제니의 탄탄한 가창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제니 특유의 시원한 고음이 있었다면 기승전결이 더 뚜렷해져 곡이 더욱 입체적이었을 것 같다. 음원에서는 제니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진 못했지만, 라이브에서만큼은 제대로 진가를 보여준 싱글이었다. 11일에 발매되는 정규 앨범에서는 음원의 맛까지 잘 살렸으면 하는 주문을 걸어본다.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


4. Kelly Lee Owens - [Dreamstate]

 : 이번 [Dreamstate]는 Kelly Lee Owens의 네 번째 정규 앨범으로, 전자음악 특유의 차가운 질감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보컬과 역동적이고 멜로딕한 신스, 섬세한 베이스 라인이 환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전 트랙에 걸쳐 비슷한 패턴이 이어지고, 그 때문인지 초반 트랙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몰입감이 휘발되어 거룩한 보컬이 점차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장단점이 명확한 앨범이다. 결론적으로 꿈결 같고 환상적인 감성을 전달하지만, 다채롭지 못한 사운드 구성과 다소 예상 가능하고 장황한 전개가 몰입을 방해하는 듯하다. 조금 더 거칠고, 조금 더 탄력 있고, 조금 더 변칙적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1, 2번 트랙인 ‘Dark Angel’, ‘Dreamstate’은 올해 들은 일렉트로닉 트랙 중 가장 인상적이었기에 더욱 아쉽다.





"Phum Viphurit, 아니 Paul Vibhavadi는 진짜 유명한 나무늘보임"


5. Phum Viphurit - [Paul Vibhavadi Vol. 1]

루영 : 거대한 나무늘보의 깜짝 등장? 그 정체는 바로 황소윤과의 콜라보곡 ‘Wings’로 한국에서 인지도를 쌓은 태국의 인디포크 아티스트 Phum Viphurit(품 비푸릿)이다. ‘Lover Boy’, ‘Hello, Anxiety’ 등 특유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청춘의 고민과 낭만을 노래해 왔던 그는 Paul Vibhavadi라는 가상의 나무늘보 캐릭터를 만들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Paul Vibhavadi Vol. 1]는 그 여정의 첫걸음을 뗀 앨범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와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도 어쿠스틱 기타와 신스가 중심이 된 인디포크 장르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전작보다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의 변화가 눈에 띈다. 첫 번째 트랙 ‘The Other Side’에서는 UK 개러지를 차용하여, 어쿠스틱 기타와 마림바가 리드하는 흥겨움 위에 반복되는 하이햇 사운드를 얹어 곡에 리듬감을 더하였고, 다음 트랙 ‘Balter Baby’는 펑키(Funky)한 베이스 리프를 기반으로 하우스 리듬과 다양한 신스를 활용하여 활기차면서도 몸이 들썩일 정도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 밖에도 ‘Past Life’에서 랩 피처링을 넣는 등 기존에 없었던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확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Paul Vibhavadi로서의 모험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앨범이다. 느긋하고 낙천적인 Paul Vibhavadi의 성격이 상상되는 편곡도 인상적이었다.


음악 외에도 이 앨범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뮤직비디오에 담긴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이다. ‘The Other Side’에서는 Phum Viphurit이 나무늘보 분장을 하고 Paul Vibhavadi로 직접 분하여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였고, ‘Balter Baby’에서는 DDR 게임 플레이 영상처럼 구성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Paul Vibhavadi가 자신의 안식처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음악처럼 유쾌하게 담아냈다. 익숙한 편안함을 주지만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는 자칫 진부할 수도 있지만 Phum Viphurit의 유쾌하면서도 진솔한 화법과 비주얼적 측면에서의 도전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책 한 권을 막힘없이 읽은 것 같은 앨범이었다. Paul Vibhavadi의 다음 여정은 또 어떻게 흘러갈지, [Paul Vibhavadi Vol. 2]가 벌써 궁금해진다.





"이모 감성은 어디로?"


6. The Kid LAROI - ‘APEROL SPRITZ’

키키 : The Kid LAROI의 새 앨범 [APEROL SPRITZ]는 초기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이모 힙합 악동 이미지가 사라진 모습이다. 이전 곡 ‘Girls’가 틱톡에서 바이럴로 성공하면서 팝 음악에 자신감을 얻은 것인지 이번 앨범에서도 ‘Girls’와 비슷한 느낌의 곡을 발매했다. 힙합과 팝 요소를 섞어낸 경쾌한 바이브의 곡이지만, 이전 곡이 주류 팬층에게 인기를 얻었던 만큼 새로운 시도보다는 비슷한 스타일로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이 대중성을 얻기엔 좋지만 소울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I drink Henn, she drinks Aperol Spritz"라는 후렴구는 캐치한 멜로디로 반복되지만, 다소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전작인 ‘Girls’가 잘 되긴 했지만, 점점 초기에 보여주었던 이모 색깔이 없어져서 아쉬운 느낌이다. 저스틴 비버를 연상시키는 듯한 랩 스타일과 팝스타의 행보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과연 좋은 방향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어린 나이에 이마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아티스트인 만큼 앞으로 음악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그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선 평타를 치는 음악보다는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인 것 같다. 





※ '둥', '키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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