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HA KG의 소송과, 케이팝 현지화 그룹의 미래
바야흐로 현지화 아이돌의 전국시대다.
VCHA, KATSEYE, Dear Alice. 조금이라도 케이팝에 관심이 있었다면 들어보지 못했을 리 없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현지화 아이돌 그룹들을 나열했다. 현지화 아이돌이란, 케이팝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도입, 타 국가에서도 케이팝 아이돌 그룹을 런칭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K 없는 Kpop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현지화 아이돌의 가장 큰 목적이다. BTS, 블랙핑크 등 글로벌 단위로 인기를 얻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케이팝이 서구권에서 인식하는 하나의 주류 장르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지화 아이돌 그룹으로, HYBE는 KATSEYE, SM엔터테인먼트는 디어앨리스, JYP엔터테인먼트는 VCHA를 런칭했다.
그러나 현지화 아이돌의 런칭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점도 있다. 바로 케이팝 특유의 치열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과연 한국의 문화가 익숙지 않은 타국적의 연습생들이 받아들이고, 멤버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JYP의 현지화 걸그룹 VCHA의 멤버 KG가 VCHA의 소속사인 JYP USA를 상대로 전속 계약 종료 소송을 제기했다. KG는 트레이닝과 데뷔 이후 근무 환경이 열악했음을 이유로 들었으며, 일부 멤버가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음을 주장했다. JYP USA는 해당 내용이 다소 과장된 내용임을 밝혔으나, KG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밝혔으며, 케이팝 시스템이 보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의견 역시 개제한 바 있다.
회사와의 협의를 통한 단순 활동 중지나 탈퇴가 아닌, 전속 계약 소송 제기라면 보다 심각한 사안임을 인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KG는 대체 왜, 소송까지 제기할 정도로 분노했을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VCHA라는 그룹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VCHA는 JYP USA와 유니버설 레코드 산하의 레이블 리퍼블릭레코드가 함께 제작한 ‘A2K’ 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그룹으로, 미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한국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과정이 모두 방영된 바 있다. 멤버 선발 과정 역시 방송을 통해 모두 공개되었고, 미국에서 치뤄진 예선과 한국의 트레이닝 과정 중 본선을 진행해 선발된 멤버 6명이 최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과정을 공개했다는 점, 유니버설 레코드 산하의 레이블과 합작을 통해 미국 현지화 그룹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룹이 있다. 바로 HYBE의 KATSEYE(이하 캣츠아이)이다. 그러나 VCHA와 캣츠아이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연습생 기간의 차이이다. 캣츠아이를 선발한 오디션 프로그램 ‘The Debut: Dream Academy’의 참가자 중 대다수는 하이브 유니버설, 또는 한국에서의 연습생 기간을 거친 이력이 있지만, VCHA는 그러지 못했다. 케이팝 문화와 트레이닝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연습생 기간을 갖지 못한 채 바로 미디어에 노출되고, 데뷔를 진행하다보니, VCHA 멤버들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캣츠아이 멤버들보다도 케이팝의 문화를 이해하고 체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연습생 기간의 존재 유무 역시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동양과 서양 간 문화 차이다. KG의 입장문을 살펴보면, 식단의 엄격한 제한, 회사에 대한 부채, 개인 생활에 대한 제한 등이 계약 종료 소송의 가장 큰 이유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정도나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입장문 내의 워딩들은 모두 케이팝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익숙한 내용이다. 다큐멘터리나 입장문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돌이 출연한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 몇 가지만 시청한 적이 있다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비주얼을 위한 엄격한 체중 관리, 연습생 기간에 투자된 금액은 데뷔 후 수익 활동으로 상계하기, 핸드폰 사용 제한이나 연애 금지와 같은 조항들은 그동안 케이팝 내에선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대다수의 한국인 아이돌 멤버들, 또는 연습생들은 그러한 문화에 반감을 갖지 않고 관행을 따라왔다. 비교적 한국와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 국적의 연습생들도 비교적 관련 문제가 적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나 사생활 보호의 가치를 동양권에 비해 훨씬 중요시 여기는 서구권 출신에게는 훨씬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이다. 연습생뿐만 아니라 팬덤의 반응 또한 그렇다. 한국의 VCHA 팬덤은 KG가 겪은 어려움이 문화적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서구권 팬덤은 JYP와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KG는 매우 상이한 문화를 받아들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채 바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회사와 자신의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계약 종료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측 역시 가능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현지화 그룹의 런칭 이전, 케이팝이 글로벌을 타겟으로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져 왔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시작되는 트레이닝, 사생활 통제를 포함한 엄격한 생활 관리 등은 BTS, 블랙핑크의 성공 이후로도 자주 지적되어온 문제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혹독한 트레이닝의 결과물이 곧 케이팝의 흥행 요인이자, 다른 장르와 비교해 가지는 가장 큰 차별점이라는 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케이팝 그룹의 팬덤은 기존 팝 씬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특유의 잘 맞춰진 군무, 팀 멤버들과의 끈끈한 케미스트리, 비교적 구설수가 적은 사생활 등에 매력을 느껴왔다. 케이팝의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한다.
서구권의 기준에 맞춘 트레이닝 기준은 기존 한국에서 통용되는 트레이닝 시스템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JYP 관계자는 VCHA 멤버들의 트레이닝 과정에 대해 캘리포니아 법률을 준수하고 있으며, 매일 근무 시간을 미성년자의 경우 6시간, 성인 멤버는 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연습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기존 한국 트레이닝 시스템과 비교하면 매우 완화된 기준이다. 당연히 기존 그룹들에 비해 트레이닝 기간을 더욱 길게 가져가지 않는 한, 기존과 유사한 퀄리티를 만들어내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 케이팝의 경우, 동양권 멤버들이 주를 이뤘고, 서구권에서도 케이팝을 다소 이방인처럼 여겨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트레이닝 문화에 대한 비판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큰 불씨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수의 케이팝 그룹들이 서구권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고, 그에 맞춰 늘어난 서구권 현지화 그룹이 높은 성적을 거둔다면 당초의 현지화 그룹의 목적을 이루게 될 수도 있다. 케이팝을 단순한 이방인의 문화로 여기는 것이 아닌, 주류 문화로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는 그런 결과 말이다. 만일, 그런 목적을 이루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케이팝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비판 의견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당장 그룹의 일원이 될 연습생들부터 반발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대중 역시 거부감을 가지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연하지만, 케이팝 시스템이 전세계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특히 현재 데뷔한 현지화 그룹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룹을 런칭하고, 이후 활동을 이어나갈 때, 그 트레이닝 시스템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세심한 점검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서는 인권 부분이나 연습생들의 정서 관리 영역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왔지만, 서구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그 정도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 기준에 맞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보완과 타협이 필요하다. 특히 미성년자 연습생들이나 현지화 그룹을 다룰 때라면 식단 관리, 보호자와의 꾸준한 연락, 사생활 제한 등에 더욱 예민한 기준을 둘 필요도 있다.
연애, 개인 SNS나 핸드폰 이용 제한은 케이팝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현지화 그룹이라면 어느 정도는 포기나 타협할 필요도 있다. HYBE의 캣츠아이는 이런 부분에서 선례를 보이는데, 멤버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방영 중은 물론이고, 데뷔 후에도 여전히 과거에 사용하던 SNS를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일부 멤버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밝히거나, 공개적인 연애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케이팝 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서구권의 스타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어색한 모습은 아니다. 그렇기에 동양권의 팬덤이나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 역시 필요하다. 범죄가 아니라면, 케이팝 씬 내에서 반복되어 왔던 사생활 관리의 영역 역시 일종의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인식해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더해, 거시적인 영역에서 보았을 때 서구권 팬덤 인식의 변화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BTS 멤버 RM의 인터뷰가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기자가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열띤 노력에 관한 다소 무례하리만큼 비판성이 짙은 질문을 던지자, RM은 단호하게 답했다. 서구권에서 보기엔 지나칠 정도의 노력이나, 혹독한 연습의 과정, 치열한 사람들의 삶은 서구권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식민 지배의 기억, 또 빠른 속도의 발전이라는 역사의 영향이며, 케이팝의 매력을 만드는 하나의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기에 서구권의 팬덤의 인식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과는 다른 역사를 가진 문화권에서 만들어낸 장르가 케이팝이고, 그 장르에 애정을 가진다면 자신과는 다소 다른 스탠스를 기본으로 두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 당연히, 케이팝에 몸 담은 일원들 케이팝 내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나, 서구권에서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근로 시간 또는 노력의 정도는 한국 문화권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법적으로 현저히 문제가 발생할만한 사안이 아니라면, 이는 단순 문화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님을 보다 공고히 할 필요도 있다.
사실 현지화 그룹들의 성적표는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JYP의 Nizu 정도를 제외하면, 현지 메인 차트 등에서 현지화 그룹의 이름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특히 VCHA나 캣츠아이처럼 서구권을 타겟으로 한 그룹들은 더더욱 그런 경향을 보이는데, 결국 이는 서구권의 주류 문화는 여전히 케이팝식 프로듀싱에 대해 진입장벽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으로, 서구권의 멤버들이 많은 현지화 그룹에 대해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동양권에서는 서구권 멤버들이 다수인 현지화 그룹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 역시 알 수 있다. 이렇듯 현지화 그룹은 태생부터 서양과 동양의 확연히 다른 두 문화권 사이 중간 지대에 위치하고 있기에, 팬덤을 구축하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본 목적처럼, 현지화 그룹의 성공을 통해 케이팝의 본격적 확대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양 문화권의 인식 변화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인 공연 확대, 참신한 컨셉이나 공격적인 SNS 마케팅, 또는 기존 팝스타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음원 발매 등 당초 설정한 타겟팅이었던 서구권 문화에 보다 쉽게 녹아들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KG의 소 제기는 과거 케이팝 그룹 멤버들이 제기했던 전속 계약 중지 소송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외려 케이팝, 또는 노동 문화에 대한 서구권과 동양권 인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다툼과 문제 제기로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 역시 꾸준히 변화, 발전이 일어나왔음을 인식한 한국 팬덤은 다소 이해가 어려운 소송의 내용이었을 것이고, 반대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감 있는 인식을 가진 서구권에서는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의 더욱 더 적극적 변화를 촉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소송이었을 것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현지화 그룹이 유의미한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케이팝의 관행이 어느 정도는 변화할 필요성, 그리고 동시에 서구권의 인식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대면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큰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현지화 그룹이 보다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