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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핑블이 말아주는 <2024 SM엔터 결산>

For 핑크블러드

by 고멘트

20년차 핑크블러드가 말아주는 <2024 SM엔터테인먼트 결산>


케이팝의 개척자, SM엔터테인먼트가 30주년을 맞이했다. SMTOWN LIVE 콘서트, SMTOWN 앨범, 오케스트라 라이브 공연, 30주년 기념 브랜드 필름 등 다채로운 온오프라인 프로젝트를 예고하며 화려한 자축을 준비하고 있다. 어연 20주년이 된 핑크블러드로서, SM 아티스트들의 올 한 해 성과를 조명하고 발매된 앨범들을 감상에 따라 나누어 리뷰해 본다. 진심 어린 애정과 걱정을 담아.



Good: 에스파만 좋았던 건 아니라고요


명확히 제시한 아티스트의 정체성

aespa - ‘Supernova’, [Armageddon]

NCT127 - [WALK]

aespa와 NCT127은 올해 모두 정규 앨범을 발매했는데, 두 팀 모두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에스파는 키치한 ‘Supernova’부터 맥시멀한 쇠 맛의 ‘Armageddon’까지 SM과 대중이 원하는 에스파의 이미지의 접점을 정확히 찾아냈다. SM과 에스파가 의도한 목적과 타겟은 명확했고, 매력적인 음악과 뮤직비디오, 코레오그래피까지 대중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NCT127은 데뷔 초부터 힙합의 여유로움을 지향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SM의 깔끔하고 정돈된 맛이 있는 팀이었다. 정규 6집 [WALK]는 그런 매력이 가장 응축된, 그러면서도 멤버들의 농익은 퍼포먼스가 극대화된 앨범이며, 2000년대의 빈티지를 구현하는 콘셉트와 뮤직비디오에서의 비주얼 요소들도 훌륭했다. 랩과 보컬을 오가는 팀 특유의 백화점식 곡 수록도 이제는 안정권에 접어들어 흐름이 자연스럽다. NCT127의 정규 앨범 중 가장 깔끔한 진행이다. SM이 NCT를 매개체로 힙합을 시도한 이래로 가장 멋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앨범의 유기성

태연 - [To.X]

수호 - [점선면 (1 to 3)]

써클 디지털 차트에서 월간 1위를 차지하는 등 태연의 ‘To.X’는 ‘사계’와 ‘INVU’ 이후로 또 한번 태연의 음원파워를 입증하는 음악이었다. 수록된 다섯 번째 미니앨범 [To.X]는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여섯 개의 트랙이 모두 어긋나고 불합리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소재를 활용했는데, 그 주체를 바꿔가며 진행하고 하나의 트랙이 곧 또다른 트랙의 회신 역할을 해 연쇄적인 효과가 있는 앨범이었다. 스토리의 유기성에, 쉬운 멜로디로 대중성을 사로잡은 타이틀곡은 훌륭한 덤이었다.


수호는 솔로 데뷔 때부터 뚝심 있게 한 장르만을 고집해왔다. 사실 그룹 활동 시기에는 발라드나 어쿠스틱이 잘 어울리는 보컬이라 생각했었는데, 솔로 활동을 진행하며 본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을 빠르게 찾아갔다. 올해 발매했던 [점선면 (1 to 3)] 역시 그 록에 대한 뚝심이 빛난 앨범이었다. 록이라는 장르 안에서 최대한 여러 가지를 섞으면서도, 앨범의 수록곡들이 장르가 혼자 삐져나오거나 가사의 어투가 튀는 부분이 없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올해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SM의 솔로 음반이다.



빛나는 솔로 데뷔

도영 - [청춘의 포말 (YOUTH)]

재현 - [J]

솔로로 데뷔한 멤버들의 시도가 빛난 앨범들도 있었다. NCT에서 솔로로 데뷔한 도영과 재현의 앨범은 하나의 그룹에서 두 명의 전혀 다른 색의 보컬리스트가 데뷔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태용, 텐, 마크와의 비교에서도 흥미롭다.


도영의 정규 앨범 [청춘의 포말 (YOUTH)]은 청춘의 아름다움을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표현했고, NCT에서의 보컬보다 훨씬 청량하고,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푸른 하늘을 담은 앨범아트 또한 앨범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표현한다. 파워풀하게 뻗는 고음과 강렬한 기타 리프들은 영락없는 제이록 스타일을 떠오르게 하고 첫 솔로 데뷔임에도 아티스트의 역량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었다. 즐기기 쉬운 록도 좋지만, 조금 더 날이 선 보컬도 궁금해진다.


그에 비해 재현의 미니앨범 [J]는 훨씬 잔잔하고 무드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로맨틱하고 섹시한 알앤비의 향연이다. 재현이라는 멤버가 가진 아이덴티티와 그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을 정확하게 짚어내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NCT 도재정 활동에서도 느꼈지만, 재지하고 그루비한 곡들을 자연스럽고도 섹시하게 소화하는 능력을 보면 백현을 잇는 또 하나의 알앤비 아이돌이 될 재목이 아닐까 싶다.



So So: 난 핑블이니까 괜찮아


▶ 범작에 그쳐버린..

Red Velvet(레드벨벳) - [Cosmic]

RIIZE - [RIIZING]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타이밍을 고려하면 원하는 만큼의 한 방은 부족했던 앨범들이다. 레드벨벳은 올해 데뷔 10주년이라는 경사를 맞이했고, 기념 앨범 [Cosmic]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Cosmic’은 안정적인 멜로디 진행과 함께 멤버들의 단단한 보컬이 인상적인 곡이지만, 근래의 ‘Feel My Rhythm’이나 ‘Chill Kill’과 비교하면 확실히 리플레이 밸류가 떨어지는 곡이다. 수록곡들의 진행은 더욱 심심했는데, 10주년을 자축하는 이스터에그나 신선한 자극이 부족한, ‘레드벨벳표 따뜻한 팝’의 단순한 나열이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적당’히 한 앨범이 되었다. 동방신기의 10주년인 ‘Something’과 소녀시대의 10주년인 ‘Holiday’, ‘All Night’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워진다.


2024년 데뷔 이후 첫 번째 미니앨범을 발매한 라이즈 역시 그렇다. 펑키한 사운드, 레트로한 신시, 샤이니를 떠오르게 하는 청량감과 밴드 사운드는 전작 ‘Get A Guitar’의 안전한 연장선이었다. 멤버들의 퍼포먼스 소화력이나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운 리듬감은 좋았지만, 첫 앨범의 타이틀이니 음악이나 안무가 좀 더 과감했으면 어땠을까. (Siren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분명 달랐다.) 수록곡들 역시 ‘라이징’이라는 앨범명만큼이나 무난한 앨범이었다.



Bad: 널 사랑하지만 너 지금 헛소리한다


▶ 앨범의 목적이 궁금하다

NCT DREAM - [DREAM( )SCAPE]

아이린 - [Like A Flower]

‘맛’이나 ‘ISTJ’의 과감함과 독특한 아이디어와 워딩으로 듣는 재미가 쏠쏠했던 이전의 정규 앨범들과는 다르게, 올해 NCT DREAM의 앨범은 꽤나 지루했다. 특히 [DREAM( )SCAPE]의 타이틀 ‘Smoothie’는 빌드업 이후 후렴의 맥 빠지는 진행이 몰입감과 집중을 깨뜨려버리는데, 음악이 후렴에서 갈 길을 잃으니 퍼포먼스 역시 ‘그저 그런’ 맛이 되어버리고, 콘셉트조차 명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 성숙한 이미지의 구축인지, 섹시함이나 여유로움을 표현할 것인지, 정확한 방향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즈니’가 아닌 대중의 눈에는 아직 풍선껌을 불던 소년이나 핫소스를 외치던 청년들일 테니.


아이린의 첫 솔로 데뷔 앨범 [Like A Flower] 역시 앨범이 의도하는 바와 아이린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으로 어떤 점을 내세운 건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드벨벳의 조이, 웬디, 슬기 모두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단 하나의 미니앨범으로도 서로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하지만 [Like A Flower]는 타이틀부터 수록곡까지 장르, 가사 등 무색무취로 음악이 흘러가버리며 아이린의 음색이 가장 매력적일 수 있는 음역과 멜로디를 제대로 활용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린의 단점이 보이게 만드는 아쉬운 앨범이다.



단지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RIIZE - [Love 119]

태연 - [Heaven]

라이즈의 싱글 ‘Love 119’은 ‘응급실’을 샘플링해 아련한 향수와 겨울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투박해도 너무 투박한 멜로디와 래핑이 곡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멜로디와 리듬이 단조로우니, 그에 맞게 안무 또한 단순해질 수밖에 없었다. ‘Get A Guitar’나 ‘Talk Saxy’에서 보여주었던 난이도나 화려함과 비교하면 멤버들의 처연한 비주얼에 기댄 퍼포먼스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Boom Boom Bass’ 발매 이전의 쉬어가기임을 고려하더라도 너무나 쉽게 쓰여진, 그리고 틀어진 방향성이었다.


항상 좋은 퀄리티로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까지 사로잡았던 태연의 싱글 [Heaven]은 어딘가 어긋난 방향의 기획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음악의 심심함은 차치하더라도, ‘Heaven’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의 연출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못하고 어색하다. ‘천국’이라는 긍정적인 소재를 한 번 비튼 것까지는 좋았으나, 계절감에 맞지 않게 뜬금없이 삽입된 호러와 핼러윈 한 스푼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여름 싱글격이었던 ‘Weekend (2021)’가 음악 자체는 심심했으나 명확한 레퍼런스와 완벽한 구현으로 대중들의 선택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 싱글이 태연이라는 아티스트에게 꼭 필요한 음악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올해, 그리고 앞으로의 SM


올해 SM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수확이 ‘에스파의 활약’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Supernova’ - ‘Armageddon’ - ‘Whiplash’로 이어지는 3연타로 팀의 체급 자체가 달라졌고, 팬덤의 확장은 물론 탄탄한 대중성까지 확보했으니, 이젠 그 누구도 에스파의 음악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에스파의 성과를 증명하듯, 더팩트뮤직어워즈, 코리아그랜드뮤직어워즈, MAMA AWARDS, 멜론뮤직어워드, 골든디스크어워즈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SM의 현재 강점을 가장 훌륭하게 증명하는 아티스트이다.


앞으로의 SM을 이끌어 갈 신예들의 탄생도 의미가 크다. 라이즈는 ‘Get A Guitar (2023)’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데뷔한 바 있고, 2024년에는 싱글과 첫 미니앨범으로 팬덤의 기반을 다져 첫 팬콘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일각에서는 샤이니의 대중적이고 청량한 음악 색깔을 이어나가는 팀으로 인식하기도 하는 등 보이그룹의 약점인 대중성을 잘 극복하고 있다.


NCT의 마지막 데뷔팀 ‘NCT WISH’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NCT127’, ‘Way V’, ‘NCT DREAM’과는 또다른 콘셉트로 핑크블러드의 이목을 끌었다. 모그룹인 NCT로부터의 낙수효과와 오디션 프로그램 <LASTART>부터의 팬덤 형성, 보아와 켄지의 프로듀싱과 멤버들의 출중한 퍼포먼스 역량 등 다양한 요소가 이 팀의 잠재력이 되어주고 있다. 대중에게 크게 각인될 수 있는 한 방을 터뜨리는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라이즈와의 차별화까지 꾀한다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룹뿐만 아니라 태용, 도영, 재현(NCT), 찬열(EXO), 아이린(Red Velvet), 민호(SHINee) 등 이제 막 솔로 활동을 시작한 멤버들은 팀 활동의 공백기를 자연스럽게 메꾸며 팬덤의 이탈을 걱정하는 시선을 불식시켰다. 다양한 팀에서 수많은 멤버가 솔로 활동을 진행 중인데, 어떻게든 콘셉트나 장르가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하려는 그 치열한 고민이 다채로운 솔로 앨범들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30주년의 SM에게, 20주년의 핑블이


SM엔터테인먼트의 핑크블러드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망할 놈이지만 망하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주 예전부터 팬덤을 구축하고 성장시켜왔고, 케이팝이라는 산업의 기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케이팝 팬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라이즈의 전 멤버 ‘승한’의 복귀 번복 등 이따금씩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과,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한 방이 부족해 김이 빠지게 하는 기획들은 항상 큰 비판을 받곤 한다. 모든 슈퍼스타가 그렇듯, 까와 빠가 존재하기에 이리도 롱런하는 듯하다.


H.O.T.의 첫 등장과 보아의 오리콘 점령을 거쳐 에스파의 대상 수상과 naevis의 데뷔까지, 놀라움과 신선한 자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30주년, 40주년의 핑크블러드를 맞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도 오래도록 힘내주기를 바란다. 50주년의 SMTOWN LIVE를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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