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Frank Ocean, Dijon 렛츠고
왜곡된 소리, 비틀거리는 리듬, 현장 잡음, 그리고 울부짖는 보컬. 언뜻 보면 R&B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낯선 조합으로 R&B의 새로운 얼굴을 만든 이가 있다. Dijon, 그는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완성으로 들리는 것들로 가장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신보 [Baby] 뿐만 아니라 데뷔 앨범인 [Absolutely]에서도 대중에게 통용되는 정형화된 R&B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각 트랙마다 실험성을 부여하며 장르의 가장자리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왔다. 기존의 주류 R&B가 섬세한 감성과 다듬어진 사운드로 성공을 주름잡는 동안, 그는 거칠고 비 정형적인 구성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듣고 난 뒤 '설명하기 어려운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되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과 난해함으로 불리는 것들로 인해, 지난 수년간 정체된 것만 같았던 R&B 씬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발매된 [Baby]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이번에도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이다. 얼터너티브 R&B의 토대 위에서 네오 소울, 싸이키델릭, 베드룸 팝, 신스 훵크, 그리고 전자적인 요소들까지 결합하며 장르 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왜곡되고 비틀린 사운드, 리얼한 현장 잡음과 같은 불완전하게 들리는 요소들도 하나의 완전한 미학으로 만들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Baby!'는 얼터너티브 R&B를 뼈대로 삼되, 네오 소울스러운 보컬과 악기 파편들이 뒤섞여 튀어나오는 듯한 사운드의 연속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 마지막의 실제 아기 울음소리를 삽입한 대목은 현재 아버지가 된 자신의 서사를 담아낸 장치로 작용하기도 했다. 다음 트랙인 싸이키델릭 성향이 짙은 'Another Baby!'에서는 러닝타임 내내 불규칙하게 뒤틀리는 리듬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걸 볼 수 있다. 거기다 또렷하다가도 금세 흐려지거나 왜곡되는 보컬, 계속되는 갑작스러운 끊김, 다른 악기와의 밸런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대뜸 튀어나오는 피아노 등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요소들이 들리지만, 이 또한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게 된다. 외에도 신스 훵크를 기반으로 팝과 전자음의 글리치를 결합한 'Automatic' 등 트랙을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예측 불가한 전개는 매 순간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마냥 거칠기만 한 트랙들로 채운 것도 아니다. 'Yamaha'는 80년대 신스 훵크를 가져오면서 팝적인 감성을 더해 유려한 질감으로 재현했고, 'Rewind'에서는 악기 파편들이 날카롭게 튀어나오던 이전 곡들과 달리 어쿠스틱 기타를 활용한 미니멀한 구성이 돋보인다. 또, 마지막 트랙인 'Kindalove'에서는 베드룸 팝의 몽환적인 루프로 끝내 평온함에 도달하게끔 한다. 정리하면 이번 앨범은 과잉과 완화, 불안과 해소가 교차하는 감정의 파동을 서사처럼 그려냈다. 각 트랙마다 뒤섞이고 충돌하는 소리들이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만들어내지만, 그 실험적 요소들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앨범 안에서 응집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단순한 개별 트랙들의 집합을 넘어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작동하며, [Absolutely]의 연장선에 있지만 더 복잡하고 더 실험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걸로 보인다. 즉, 전작에서 얼터너티브 R&B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이번 [Baby]에서는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한 셈이다.
Dijon을 향한 찬사와 평단의 주목은 [Baby]의 높은 퀄리티, 이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과거 두 아티스트를 불러온다. 바로 'Prince'와 'Frank Ocean'. Dijon은 그들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다. Prince가 선보인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혼합, 흑인 음악 씬 최초로 드럼 머신의 사용 및 베이스 제거 등과 같은 실험적인 태도는 Dijon의 음악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치 모순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소리를 의도적으로 뭉개고 왜곡했지만 오히려 리듬감은 더욱 선명해졌고, 중간중간 끊기거나 튀는 음향이 있지만 그러한 불완전함이 모여 완전한 결과물을 이룬다. 또한, 포크나 락처럼 전혀 다른 장르로 틀어버리거나 결합하는 독특한 시도를 통해, Prince가 연상되는 거칠고 비정형적인 음악을 구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Yamaha'와 'Automatic'에서는 Prince가 풍미했던 80년대 신스 훵크의 흔적이, 'My Man', 'Baby!'를 비롯한 몇몇 곡에서는 보컬 톤이나 구사하는 방식에서 Prince 특유의 관능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실험적인 태도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Dijon이 추구하는 전반적인 스타일은 Prince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Prince보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 Frank Ocean일 것이다. 특히, 전작 [Absolutely]의 첫 트랙이었던 'Big Mike's'를 들으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보컬에 리버브를 잔뜩 걸어 몽환적이면서도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기법은 영락없는 Frank Ocean의 그것이었다. 아마 웹사이트에서 Prince보다 Frank Ocean의 언급이 더 많은 이유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Frank Ocean의 향이 짙게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둘은 장르 접근 방식도 비슷했다. Frank Ocean이 얼터너티브 R&B를 기반으로 다양화된 스토리나 메시지, 뻔하지 않은 구성으로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면, Dijon은 얼터너티브 R&B를 기반으로 하되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장르로 뻗어 나갔다. 더 나아가 실제로 평단이 주목하는 지점은 단순 모방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Prince와 Frank Ocean이 개척한 작법을 계승하긴 했지만,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구현했다. 예컨대 파열되는 보컬, 충돌하는 각종 잡음 등 이러한 것들이 모여 하나로 이루는 순간들 말이다. 즉, Dijon은 Prince와 Frank Ocean의 토대 위에 있지만, 그 이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들을 꾸준히 넣어왔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Prince와 Frank Ocean과 '닮았다'로 단순히 치부하기 보다는 '닮음 너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Dijon에 대한 호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그는 데뷔 앨범이었던 [Absolutely]으로 "R&B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당 앨범 역시 얼터너티브 R&B를 기반으로 싸이키델릭, 네오 소울, 락,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구성이었다. 'Many times'에서는 거친 기타 사운드로 과감히 락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와 대조적으로 'Annie'에서는 포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God Is Wilson'에서는 완전한 얼터너티브 R&B를 구현했으며, 외에도 컨트리적 요소를 넣는 등 다채로운 장르적 혼합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생생한 현장감의 날 것의 사운드,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머신의 조합 등 그간 R&B 씬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시도들도 엿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Baby]의 크레딧에는 히트곡 프로듀서들의 흔적이 있으며, Justin Bieber의 'DEVOTION', Matt Champion의 'Aphid', Bon Iver의 'Day One' 등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마저도 단순히 협업을 한 사실에 그친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적재적소에 드러내며 조화를 잘 이루었다. Justin Bieber의 팝적인 결을 따라가되 틈새마다 독특한 질감의 보컬을 얹으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완성했고, Matt Champion과의 협업에서는 자신의 보컬 색을 유지하며 곡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거기다 Bon Iver의 2022년 투어 공연에 오프닝 무대에도 서는 등 업계 관계자들의 활발한 러브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개된 [Baby]는 전작이 빚어낸 기대를 능가하기 충분한 앨범이었고, 결과적으로 Dijon을 '떠오르는 신예'에서 '씬을 이끌어갈 아티스트'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Frank Ocean이 2016년 [Blonde]를 끝으로 잠적한 이후, R&B 씬은 한동안 정체된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The Weeknd가 주류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팝적인 영역에 가까워지면서 씬 전체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 사이 Frank Ocean의 자리를 넘보듯 Daniel Caesar, Gallant 등 그를 연상케 하는 아티스트의 등장도 있었으나, 상업적 성공에만 머물 뿐 Frank Ocean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물론, SZA처럼 굵직한 성과와 함께 스타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빛나는 커리어에서 가까웠다. 다시 말해, Frank Ocean이 남긴 공백을 단번에 메꿀 만한 혁신을 끌어낸 이는 아직 없었고, 그저 수치로 입증된 성공에만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Dijon의 등장은 지난 수년간 정체되어 있던 R&B 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준다. 데뷔 앨범 [Absolutely]이 단발성의 성과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Baby]를 통해 다시 한번 씬을 주목시킨 그를 보면 Prince와 Frank Ocean에서 느꼈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단순한 화제성이나 일시적 반짝임이 아니라 씬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열어갈지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저 '잘 나가는 뮤지션'에서 그칠 게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by.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