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 DREAM, 박문치, 심규선, FKA twigs 외
샐리 : 밝고 부드러운 멜로디에 치중된 ‘When I'm With You’나 '시간 여행'이라는 메세지에 매몰되어 특별한 장점이 없던 ‘BTTF’와 달리, 본작의 타이틀곡 ‘Beat It Up’에서는 음악적 캐릭터가 명확해졌다. ‘Beat It Up’이라는 시그니처 사운드를 트랙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고, 어택감을 주는 킥 사운드에 '복서'라는 이미지까지 덧붙여 영(YOUNG)하고 에너제틱한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이전에 주문을 외우는 듯한 후렴구에 아프로비트로 강렬함을 선사했던 ‘맛’이나 글리치를 연상시키는 프로덕션과 캐치한 비주얼을 내세운 ‘버퍼링’과 결은 다르지만, 80-90년대 힙합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파워풀함과 재치를 동시에 구현했다. 더 나아가 R&B 감성의 후렴구와 80년대 뉴스쿨 힙합을 연상시키는 비트를 교차한 ‘Rush’, 90년대 붐뱁 위에 지펑크를 가미한 ‘Tempo (0에서 100)’로 팀의 '젊음'과 '패기'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엔시티 드림만의 에너지를 각인시켰다.
다만 방향성 확보와 음악적 완성도가 완벽한 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전작들에서 나타난 구성 상 단점이 여전히 보인다. 특히 다크하고 강렬한 분위기에 미니멀한 편곡을 선보인 ‘Smoothie’처럼 특정 표현을 계속 반복하는 후렴구는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Beat It Up’은 강한 힙합 사운드로 배경을 풍부하게 채우긴 하나, 속삭이는 듯한 보컬이 주는 임팩트는 약하다. 게다가 힙합 기반의 사운드가 늘어나며 랩 비중이 커졌고, 멤버 간 역량 차이는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보컬로 채운 프리코러스와 브릿지에는 캐치한 멜로디가 부재하여, 결과적으로 랩과 보컬 모두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파트 분배를 비롯해 송폼이나 후렴구 하모니 등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네오'라는 컨셉 아래 과감한 프로덕션을 시도할 수 있는 팀이다. 기존에 고수해 온 구조가 안정성을 주나, 유일한 답안은 아니다. 익숙한 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엔시티 드림만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화인애플 : 박문치의 [바보지퍼]는 그 자체로 시트콤임을 표방하고 있기에 비교 대상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특히나 한국 시트콤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유명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제작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해당 시트콤의 오프닝이 말 그대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라 노래하던 것처럼, [바보지퍼] 또한 인트로 트랙에서 'Put Your Zip Up!'하라고 말한다. 또한 엔딩 트랙으로는 ‘Good Life’를 부르며 '어쨌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시트콤식 전형을 따르기도 한다. 사운드로는 많은 피처링이 함께 코러스를 부르며 서로를 응원하는 듯하고, 가사로도 '시작해 볼까 우리의 Good Life'라며 마치 내 인생도 앞으로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트랙 중간에는 케이블 채널에서 5분에 한 번씩 방영되던 한약 광고 같은 트랙인 ‘babo Zipper Ad (75”)’을 수록하기도 했다. 또한 장르적으로나 무드적으로나 다채로운 흐름을 담아냈는데, 이 또한 시트콤 특유의 '정신산만함'을 잘 구현해 낸 장치가 되었다. 존박과 함께한 ‘Love Theme’은 마치 '지붕킥' 속 황정음•최다니엘의 애정씬에 등장할 것만 같고, 조유리와 함께한 ‘Code : 광 (光)’은 거친 기타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락 장르 곡을 시트콤에서나 겪을 만한 황당한 에피소드라는 가사와 엮어냈다. 이처럼 [바보지퍼]는 총체적으로 시트콤이라는 컨셉 그 자체로 분한 앨범이다.
그렇다고 시트콤이라는 컨셉을 설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애정이 간다는 말은 아니다. 이유는 비(非) 케이팝 씬에서도 '보는 음악'을 선사했다는 흥미로움에 있다. [바보지퍼]에서는 모든 트랙을 시트콤 에피소드로 구성해 MV를 대체했는데,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하는 케이팝 이외에도 주제를 통해 음악을 '보여준다'는 시도를 높이 산다. 이전에도 시트콤을 제작의 키워드로 삼은 앨범은 몇몇(Chilly의 [SITCOM], Gump의 [SITCOM]처럼) 존재했지만, 시트콤의 제목을 설정하며 비주얼적 프로모션까지 준비한 앨범은 드물다. 그 때문에 앨범 전체를 감상하는 데 지루함 없이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앨범이었다. 실제로 75초짜리의 광고 트랙이 귀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데 칭찬을 보내고 싶다. 이처럼 음악과 프로모션이 음악을 보여주기 위한 합이 좋았던 앨범이기에 애정을 느끼는데, 박문치는 이전에도 '호피스OST'라는 단일곡으로 시트콤 OST의 결을 시도해 그의 센스를 보여준 만큼 [바보지퍼]를 이어갈 다음 시즌을 구성하는 것도 구미가 당기는 선택일 것이다.
태휘 : 심규선의 환상소곡집이 8년의 여정을 끝내며 마지막 장인 [Monster]에 도달했다. 전작 [Op.2]가 외부적 요인과 나의 관계를 다뤘다면, 이번 앨범은 '괴물'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선을 안쪽으로 돌려 나와 나의 심연을 대면하는 것에 집중한다. 타이틀 ‘Legend’는 가장 취약한 순간을 자기 고백 형식으로 꺼내놓고, 타이틀 ‘키르케 Kirké’는 신화 속 인물 '키르케'를 가져와 내면의 또 다른 얼굴을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두 곡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모두 결국 나의 심연을 직면한다는 하나의 흐름 아래 맞닿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심규선은 여전히 한국어 가사를 중심으로 음악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다만 문학적이고 시적인 결이 짙어 곱씹어야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과정이 심규선의 노래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을 넘어 머릿속에서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괴물'이라는 주제는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운드로도 자연스레 확장된다. [Op.3]는 [Op.2]보다 마이너한 진행 비율이 높아, 더 장엄하고 비장한 결이 강조된다. ‘죽은 마녀에게 바치는 시’에서 장대한 오케스트라와 부드러운 피아노는 첫 등장부터 압도하고, 심규선의 낮은 음역이 만나 마치 내면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는 듯하다. 이어지는 탱고 리듬 위의 하모니카와 반도네온은 불안과 집중을 동시에 자극하며, 내면에 잠식되어 있던 괴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연상된다. ‘미열’은 정반대의 분위기로 내면을 다루는데, 따뜻한 피아노의 여백과 속삭이듯 얹히는 드럼의 진행은 마치 외면하고 있던 또 다른 내가 조용히 다가와 몸을 데우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이외에도 [op.2]는 6개 트랙 모두 발라드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엔 조금 더 다양한 장르를 도전한다. 그중 ‘늑대향연’은 리드미컬한 브라스, 펑키한 베이스 그리고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보컬의 조합이 예상 밖의 전복을 보여주며 심규선의 색다른 매력을 볼 수 있는 트랙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전복이 앨범의 중요한 분위기 전환 장치로 작동했다고 느끼지만, 워낙 잘 만들어진 흐름 안에서 유일하게 하나였다는 점이 살짝 아쉬움으로 남는다. 괴물이라는 주제, 그리고 이것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던 방식이 탁월했기에, 만약 이런 트랙이 조금 더 배치되었다면, 시리즈의 '마무리'가 더 입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결국 이번 앨범의 중심을 가장 단단하게 지탱한 것은 심규선의 뚝심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유한 미학인 발라드 안에서 심연을 탐색하는 과정을 밀어붙였고, 다시 한번 날카롭고도 세밀한 문학적인 가사들로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감정을 과하게 부풀리지도, 반대로 숨기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에 트랙 하나하나가 가볍게 흘러가지 않았을뿐더러 자연스럽게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집중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심규선의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내면을 향한 몰입'이라는 지점에 가장 정확하게 도달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Monster]는 올해 내가 들은 앨범 중 가장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 앨범이다.
샐리 : 댄스 음악과 아트 팝을 섞어낸 전작 [EUSEXUA]의 속편.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그녀의 색깔을 선명하게 다듬는 데 성공했다. [EUSEXUA]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댄스 음악의 흐름이 이번 앨범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완벽한 댄스 플로어를 만들어낸다. 테크노와 드럼앤베이스 등의 신나는 리듬감과 활기찬 에너지를 매끈한 전자음으로 일관되게 녹여내고, 가녀린 보컬에서 풍기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화시켜 그녀의 개성을 뚜렷하게 새겼다. 특히 ‘Love Crimes’에서는 전자음으로 만든 강렬한 킥 사운드와 업템포 비트로 강렬한 에너지를 선사하고, ‘Sushi’에서는 화려한 트랜지션의 역동성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본질에 충실한 사운드와 브레이크 구간 혹은 변주를 활용한 프로덕션은 앨범 전체에 견고한 흐름을 구축했다.
하지만 깔끔히 정돈된 전자음의 질감이 후반부까지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 흐름은 아쉽다. ‘Piece of Mine’부터 칠(Chill)한 느낌으로 방향을 전환하더니, 강한 밀도로 빈틈없이 채워졌던 사운드 디자인이 느슨해져 다이나믹을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의 의미는 분명하다. [LP1]과 [MAGDALENE] 시기에는 트립합 기반의 실험적인 사운드나 전위적인 구성만큼 다양하게 변모하는 보컬로 독보적인 예술성을 보여줬지만, 감상 측면에서는 난도가 높았다. 하지만 믹스테이프 [CAPRISONGS]부터 댄서블한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스펙트럼을 넓히더니, 본작에서는 난해한 사운드를 즉각적인 쾌감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강한 타격감 위에 멜로디컬한 요소를 쌓아 직관적으로 리듬을 보여주고, 독특한 톤의 보컬은 몰입을 돕는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해석 없이도 흡입력 있게 청자를 장악하고, 그녀의 독창성을 더욱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펼치는 데 성공했다.
화인애플 : [Small Talk]의 트랙들은 유튜브의 "카페에서 공부할 때 플레이리스트"에 군데군데 끼워져 있을 것만 같다.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 동시에 기억에 남는 트랙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나마 앨범명과 동명의 ‘Small Talk’에서 들려주는 'Every Morning Every Night' - 비울 곳은 비워주며 얻어낸 중독성 – 이 앨범의 인공호흡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보컬 Ehrlich 특유의 비음도 특이하다는 첫인상을 주지만 이후 피로함을 불러오고 만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낮은 텐션을 유지하지만, 앨범의 메시지인 이별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다고도 느끼기 어렵다. 굳이 꼽자면 앨범 초반부 트랙의 사운드가 '작은 교회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할 때 느낄 수 있는 힘없음' 같아, 이별을 대변한다는 정도. [Small Talk]은 과도하게 안전한 선택이었다. 밴드 Whitney는 데뷔 이래 본작과 같은 무겁지 않은 락 감성([Candid]의 ‘Bank Head’처럼.)을 이어오다 전작 [SPARK]의 ‘REAL LOVE’, ‘Memory‘에서 보다 강한 드럼/베이스 사운드를 녹여내기도 했다. 기존 리스너의 낯설다는 반응에 발걸음을 뒤로했을 수 있지만, 안전함은 성장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단점일 수 있는 보컬을 보완하는 방안은 앞서 언급한 저음역을 무겁게 가져가는 곡과 함께할 때 아닐까? Whitney가 다시금 '실험적인', '위험한' 선택을 강행할 타이밍이다.
태휘 : 5 Seconds of Summer는 공백기 동안 개인 솔로 활동을 마친 후, 3년 만에 완전체로 파격적인 무언가를 갖고 나타났다. 전 앨범 [5SOS5]은 청춘성과 낭만을 중심으로 한 보이밴드 감성을 유지했다면, 이번 앨범 [Everyone's a star!]은 직설적인 태도와 함께 전 앨범과 확연한 태도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데뷔 이후 오랜 시간 원디렉션의 캐리커처처럼 소비되고, 어린아이 취급을 전제로 한 보이밴드 역할로 비춰졌지만, 이제는 그 프레임을 직접 마주하여 돌파하려는 흐름으로 읽힌다. 성숙한 시각에서 출발해 완성된 이번 앨범은 가장 단단하게 증명해 보이는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5SOS의 변화된 태도는 전반부의 트랙에서부터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NOT OK’에선 기존의 팝 락보다 훨씬 더 거친 락의 결로 이동하며, 불안, 야심이 가득한 에너지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특히 거친 가사와 디스토션 베이스 리프가 조화롭게 맞물려, 이들이 반항적인 기조가 체감될 만큼 강렬하다. ‘Boyband’에선 레트로 신스와 그루비한 베이스가 곡을 주도하면서 보이밴드의 고정관념을 비웃듯이 꼬집는다. 중반부에선 이들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무기로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은 점이다. ‘I'm Scared I'll Never Sleep Again’은 청량한 공간감과 서늘한 무드를 더해 The 1975의 ‘Robber’를 연상케 하고, ‘Ghost’는 마이너와 메이저가 극적으로 대비되며 약간의 괴기한 느낌을 주지만, 절제되면서 따뜻한 보컬 톤과 연이은 백킹 코러스는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이 두 개의 트랙은 초반 5SOS가 가진 얼터 팝 감성을 세련된 방식을 되돌려오며, 거친 전반부와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룬다.
가장 주목한 트랙이자, 앨범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Evolve’이다. 앞선 트랙들이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해부하며 쌓아 올린 정서를 이 곡이 하나의 '성장'이라는 문장으로 엮어낸다. 펑키한 베이스 리프와 단단하게 정돈된 리듬 섹션은 통제력을 잃었던 시절을 인정하면서도, 그 혼란을 지나 진화하겠다는 결심을 밀어붙인다. 전반부의 보이밴드 이미지를 조롱하듯 비껴가는 태도, 중반부에서 과거의 팝 감성을 해체해 더 성숙하게 재배치한 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선언하는 결론까지, 이번 앨범은 결국 '소년'의 이미지를 벗고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귀결된다. 보이밴드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랜 시간 팀을 유지해 온 그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숙제를 놀라울 만큼 명확하게 해냈다. 강렬하고, 거침없고, 동시에 유쾌한 방식으로. 이번 앨범은 여태껏 자신들은 어떤 팀이었고, 팝 락이라는 장르를 넘어 훨씬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최고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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