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스트리밍은 여전히 중요한 수익원이다. 그러나 더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영역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러한 흐름은 분명하다. 주요 음원 플랫폼의 MAU(Monthly Active Users: 월간 활성 이용자 수)와 이용 시간은 정체 구간에 들어섰고, 같은 기간 동안 스트리밍 지표 전반에서도 하락세가 관찰된다. 2019년 대비 2024년 기준, 최고 스트리밍 지수와 평균 스트리밍 지수 모두 약 40~50% 감소했다. 이는 음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스트리밍 시장이 포화 단계에 접어들며 수익이 분산되는 구조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해 보면 스트리밍 중심의 음악 소비가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산업 전반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화제성과 노출을 확보하더라도 과거만큼의 스트리밍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음반과 투어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K-pop을 중심으로 음반 판매량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음반은 더 이상 음악을 담는 매개체라기보다 팬 경험을 설계하는 상품으로 기능한다. 포토 카드를 모으기 위한 다양한 버전과 이와 연계된 팬사인회 문화는 ‘소장’과 ‘참여’를 결합한 구조다. 그러나 이 흐름의 정점에는 투어가 있다. 코로나 이후 공연 시장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 확장 국면에 들어섰고 아티스트 수익 구조에서 투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음악 산업의 경우 이 흐름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에 따른 필수에 가깝다.
한국은 대형 공연장이 제한적이고 공연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인구층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수 시장의 규모가 작다. 일본처럼 자국 시장만으로 음반/굿즈/투어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결과 K-pop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전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투어는 수익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변화는 단순히 ‘투어가 중요해졌다’는 말로 요약하기 보다는 ‘청취(스트리밍)’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경험(음반/투어/현장)’ 중심의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스트리밍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투어 중심 구조는 모든 아티스트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 음악 산업에서는 이미 높은 인지도를 확보한 아티스트와 초기 인지도가 낮은 신인/마이너 아티스트 사이에 전혀 다른 경로가 형성되고 있다. 메이저 아티스트는 확보된 인지도와 팬덤을 기반으로 투어의 규모를 확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TWICE(트와이스)다. TWICE는 데뷔 초반부터 국내 인지도와 대중성을 확보한 이후, JYP의 글로벌 프로모션에 따른 돔 투어를 통해 팬덤을 확장해 왔다. TWICE의 투어 성장 궤적은 명확하다. 2019년에는 K-pop 걸그룹 최초의 일본 돔 투어를 이루며 오사카/도쿄/나고야 3개 도시에서 5회 공연으로 총 22만 명을 동원했다. 이후 올해 진행된 ‘THIS IS FOR’ 월드투어의 일본 공연에서는 4개 도시에서 총 40만 명을 동원하며 규모를 한 단계 더 확장했다.
더 주목할 만한 지점은 내년 4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해외 아티스트 최초로 단독 공연을 개최한다는 사실이다. 도쿄 국립경기장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주 경기장으로 일본 대중문화에서 상징성이 가장 큰 공간 중 하나다. 이는 K-pop 그룹이 국가적 상징 공간에 진입하는 역사적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투어를 통해 축적된 글로벌 영향력은 공연 무대를 넘어 문화 콘텐츠로도 확장되고 있다. TWICE의 글로벌 위상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졌으며 이러한 사례는 투어를 통해 쌓인 브랜드 가치가 다시 콘텐츠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반면 초기 인지도가 낮은 신인/마이너 아티스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투어를 활용한다. 과거에는 신곡 발매 → 스트리밍/차트 성적 → 투어라는 선형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규모 투어를 출발점으로 팬덤을 형성하는 역방향 흐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때의 투어는 스타디움이 아니라 소극장/클럽/해외 소도시 공연과 같은 ‘마이크로 투어’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NCT WISH다. 2024년 11월에 진행한 데뷔 후 첫 투어는 약 3,000명 이하의 홀 투어 중심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약 10,0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아레나 급의 대형 공연장 투어로 확장하며 팬덤 기반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이 사례는 홀 투어를 통한 팬덤 형성 → 브랜드 인지도 확장 → 대규모 투어 진입이라는 경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뒤따르는 신인 아티스트들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XLOV는 퀴어 팬덤을 타겟한 중성적인 콘셉트를 중심으로 해외 소규모 공연과 온라인 바이럴을 통해 팬층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투어는 음악의 ‘성과’가 아니라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실제로 한국보다 동유럽, 중남미, 일본의 소형 공연장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아이돌이 현지 팬덤을 먼저 형성한 후, 직캠과 SNS 확산을 통해 인지도를 쌓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해외 팬덤을 기반으로 국내 방송과 공연 기회를 다시 확보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투어는 성과의 결과가 아니라 팬덤을 생성하는 최초의 접점으로 기능한다. 여기서 차트 성적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지가 된다. 결국 같은 K-pop 산업 안에서도 메이저는 ‘확장형 투어’, 신인/마이너는 ‘개척형 투어’라는 전혀 다른 성공 공식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투어 중심 시대가 만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K-pop이 오랫동안 의존해온 ‘스크린 중심 모델’이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K-pop은 이미 3세대부터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SNS 확산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이는 스트리밍과 영상 플랫폼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수익의 중심이 현장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이 모델은 한계에 부딪힌다. 정교한 동선과 칼군무를 위해서는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다. 반면 현장에서의 즉흥성과 관객과의 교감은 오히려 ‘틀어짐’을 전제로 한다. 화면 속 완벽함을 위해 훈련된 아이돌이 관객 앞에서 어색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화면 속에서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넘어서 그 완벽함을 현장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Stray Kids다. Stray Kids는 K-pop 시스템 안에서 비교적 높은 창작 자율성을 확보한 그룹으로 음악 제작부터 무대 표현까지 멤버 개인의 개성과 판단이 강하게 반영되는 팀으로 평가받는다. 이 자율성은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교한 퍼포먼스 구조를 유지하되 매 공연마다 멘트, 제스처, 에너지의 강도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관객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호응한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퍼포먼스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Stray Kids는 글로벌 투어를 기반으로 팬덤을 확장해오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최초로 8연속 1위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 유튜브 시대에는 ‘스트리밍과 잘 어울리는 영상 속 아이돌’을 소비했다. 지금은 틱톡과 숏폼 플랫폼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작한 영상이 아닌 팬이 촬영한 아이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환경이다. 편집된 무대 영상이 아니라 흔들리는 직캠과 현장의 소음, 관객의 반응이 음악 소비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이는 곧 음악 소비의 중심이 ‘잘 만들어진 화면’에서 ‘현장에 있었던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변화에는 코로나 시기의 집단적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팬데믹 동안 음악 소비는 철저히 스크린 안에 갇혀 있었고, 그 반작용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경험’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이 변화는 K-pop이 오랫동안 지향해온 아이돌의 정체성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K-pop 산업은 오랫동안 ‘화면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되는 존재’를 이상적인 아이돌로 구축해왔다. 정교한 퍼포먼스, 흠 없는 비주얼, 편집과 연출을 통해 완성되는 이미지가 곧 경쟁력이었던 시대다. 그러나 투어와 현장 경험이 수익과 영향력의 중심이 되는 지금, 이러한 정의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박진영이 과거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라이브를 잘하는 아티스트’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한 가창력의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아이돌은 더 이상 ‘잘 보여지는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아티스트로서 현장을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K-pop이 마주한 딜레마는 명확하다. 화면 속 완벽함을 유지하면서도 현장에서 성립하는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투어 중심 시대의 핵심 과제는 얼마나 큰 무대를 도느냐가 아니라 화면을 넘어선 공간에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과 존재 방식을 갖추는 것이다. K-pop의 다음 단계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이미지의 경쟁이 아니다. 경험의 중심에서 음악과 태도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의 전환에 달려 있다.
by. 광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