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Nov 04. 2023

열녀를 위한 장례식 3

헌이라는 존재, 그리고 형식에 대한 질문들

그렇게 대학로의 한 밥집에서 신강수 배우님을 만났습니다. 만나자고 한 것은 저였는데, 지하철이 연착되어 제가 제일 늦게 도착해 버렸죠. 비를 맞으며 얼레벌레 뛰어갔을 때는 이미 이인수 연출님과 신강수 배우님이 마주 앉아 있는 상태였고,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밥을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이야기가 준비되지도 않은 채로 무작정 만나자고 한 셈이니까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계획들이 있긴 했습니다. 뭔가를 써가거나, 아이디어를 공유한 다음에 자문을 구해볼까, 이런 생각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1년 동안 제가 얻은 결론이란 저의 무지함과 더 이상 ‘헌’이라는 인물만이 허물 벗기의 모티브가 아니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냥 솔직하게 이 상태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대화 중간중간 버퍼링이 있긴 했지만, 약간의 사담, 소개, 하는 일, 관심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공유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장애’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도 모릅니다. SNS상의 하이라이트 영상이나 넷플릭스 영상 몇 개 본 게 다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직접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물의 각 서사가 펼쳐지는 콘셉트가 명확한 이 이야기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접목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고, 한 때는 모든 인물들이 대극장 무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모든 인물의 발화 방식을 일치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고, 적어도 헌 만큼은 좀 더 적극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형태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평소에 코미디에 대한 욕망은 드글드글하지만 동료들은 제 대본을 ‘약간의 웃음이 있는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본격 코미디 대본이라니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신강수 배우님은 그 일 자체를 업으로 삼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것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직 형식도 갖추어지지 않아서 여러 가지 것들을 고민하는 중에 형식적으로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고려하고 있다, 고 말하자 강수배우님은 직접 대본을 써야 하는지를 물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고, 다만 공부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형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에 강수배우님은 약간은 반가워하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신강수 배우님과 이인수 연출님께서 제가 알지 못하던 여러 레퍼런스들을 추천해 주셨고, 그 뒤로 여러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탠드업코미디언으로서 공연하는 일, 관객의 반응, 본인의 코미디에 대한 방향 등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들었죠. 역시 사람은 만나보고 경험해 봐야 알게 됩니다. 저의 지극한 낯가림과 일종의 환상, 기대 속에서 있던 신강수 배우님은 너무도 멀고 무서운 존재였는데, 제가 무서워한 것은 제자신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제 앞에 마주한 사람은 ‘동료’였습니다. 진지하고 용감한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낯설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이제는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만남이라고 기억합니다. ‘헌’ 역시 모든 등장인물과 동일하게 개별적인 문제와 슬픔을 지닌 하나의 ‘인간’으로 그려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 뒤로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소식을 SNS에서 발견하고 동료작가와 함께 공연을 보며, 이들의 말하기 감각과 태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코미디를 사랑하는 것처럼 헌 역시 이야기를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형식이 선택되었고, ‘헌’과 헌의 몸과 장애에 대해 더 알아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대상화는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대상화를 피하려거나 혹은 논쟁을 피하는 안전한 선택을 해서 모든 것을 뭉뚱그려 말하게 되면 하나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보여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한 인물을 쓰게 될 때도 조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규방>에서는 ‘헌’만이 장애를 지닌 인물이기에 ‘헌’이 이 세상의 모든 장애가 있는 인물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장애의 이슈를 한 인물이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히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할 말을 찾아내야만 했죠.

그런데 그때 저는 고증을 위해 몇 편의 논문을 읽다가 조선시대 때 ‘장애’에 대한 법과 문화가 제가 최초에 상상했던 것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뿔싸. ‘장애’가 있어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이 ‘헌’을 제가 상상으로 별당에 가둬둔 것이죠. 이건 전체 플롯이 흔들릴만한 설정 오류입니다. 다시 고증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습니다. 공연이 코앞인데 아 나는 망했구나.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여름에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계속>





<열녀를 위한 장례식>     

2023.10.27-11.05.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작 진주 연출 이인수     

출연 김주연 박소연 변효준 송인성 신강수 윤현경 이강우 이선휘 이현지               

공연이 단 하루 남았습니다ᆞ.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예약 창으로 연결됩니다 : )     

인터파크 예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4097     

매거진의 이전글 열녀를 위한 장례식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