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분리가 일어난 순간
2025년 마지막날인 오늘처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동서울행 고속버스 승하차문이 치익 압력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닫힌다. 운전석 오른편 맨 앞 좌석에 앉은 나는 배낭을 안고 있다. 무릎 아래 발치에도 짐이 있었을 것. 그날은 내가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홀로 서울 가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입시 결과 후에 서울 하숙집에 살러 가는 날이었을까. 전면 버스 유리 너머 플랫폼에 서있는 아빠는 움직이지 않는다. 버스가 후진한다. 아빠가 고개만 돌린다. 눈물이 맺힌 것도 같다. 나는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소리 죽여 울었다. 네 살, 열 살 터울 동생들과 엄마는 집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무 살에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었다.
부모님과 분리된 지 27년 후 나는 한 명의 아이가 있다. 열한 살까지 팔베개해서 재운 외동아이는 해를 넘기자 혼자 자고 싶다고 했다. 따로 잠든 그날밤, 애는 혼자 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어색한 기분을 참았다고 했고 나는 꼭 안고 있던 열매가 떨어져 나간 허전함에 뒤척거렸다. 그리고 그 애가 열세 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오늘, 6년 동안 함께 걸었던 등하굣길 또한 마지막임을 알았다. 애는 내일도 한 집에 살고 내게 오늘 반찬은 뭔지 물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여문 도토리처럼 애가 나와 분리되었음을 또렷하게 느낀다.
나를 혼자 고속버스 태워보내며 애틋해한 쉰 살의 아빠와 나의 나이가 가까워졌다. 그때 아빠는 흰머리 없이 곧은 머리카락이 까맣고 눈매는 날카로웠으며 부양 의무를 짊어진 어깨는 무겁고 긴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처럼 첫 번째 아이와 분리되는 순간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잠시... 집에서 멀리 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떠나는 것처럼 보였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올 테니 절대 헤어지는 게 아니었음에도 이후 흘러간 시간을 지금 돌이키니 이미 그때 나는 온전하게 독립하진 못했어도 부모님과 분리되었던 것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참새 새끼가 둥지에서 독립하려다 땅에 내려앉아 어미새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새끼새는 다리가 부러졌고 파란 신호가 걸린 횡단보도 중간이라 로드킬을 면했다. 날고 싶어. 날고 싶은데 주저앉은 아기새 30센티미터 위에서 애가 끊어지게 파닥파닥 어미 참새가 날갯짓한다. 신호가 바뀌면 둘 다 차에 치일 거 같고, 나는 아기새를 두 손으로 보듬어 건너간다. 빨간 신호로 바뀐 횡단보도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묵직한 자동차가 오갔다. 그 황망한 찰나에 어미새는 덩치가 사람만 한 까치(?)가 자기 새끼를 채갔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인간인 내가 어설프게 보살폈지만 소용없이 48시간 후에 새끼 참새는 죽었다.
죽은 새끼 참새를 묻어준 날 내 안의 감정까지 끌어모아 울었다. 나도 불완전한 상태로 부모님과 떨어졌다는 묵은 서러움일까? 생의 단계를 넘을 때마다 차곡차곡 시간을 지불한다. 나는 차근차근 나이를 먹는다. 스무 살 아이는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에 허세 부리며 20대를 보낸다. 서른 즈음엔 스스로 돈을 벌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분 내키는 대로 살 수 있으리란 착각을 한다. 40대는 어린아이를 쫓아다니며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세상으로부터 묻힌다. 그리고 마침내 지루하고 지루한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을 오늘 종결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볼 '간격'이 생긴다.
행복한 순간에 행복한 걸 느낄 수 없었다. 너와 내가 밀착되어 있던 시간은 두텁게 쌓였지만, 애착관계로 겨우 겨우 이어 붙인, 마냥 좋을 수 없었던 시절이 종결되었다. 한 시절이 매듭지어진 후에야 그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제야 아쉬워 애석함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