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 : 날카롭고 부드럽다

브래드 피트 그리고 찰스 부코스키

by Gomsk

브래드 피트를 영화에서 처음 본 때는 비디오가게에서 대여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였을까? 아니면 당시 비디오테이프 빌릴 때마다 대여점 안팎을 채웠던 그의 영화 포스터들 중에 얼굴부터 눈에 익었던 것인가. 게리 올드만의 드라큘라와 결이 달랐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 영화는 흡혈귀에 대한 공포보다 영원히 사는 존재의 고민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장면은 브래드 피트가 금발을 늘어뜨리고 발코니 가장자리에 드러누워 고뇌하던 모습이다. 연기력도 굉장하지만 이 사람의 스타성은 햇빛 같은 머리색처럼 눈부시다. 톰 크루즈가 '정'이라면 브래드 피트는 '반'에 위치하는 느낌이 든다. 톰 크루즈가 가업을 잇는 아들로 영화에 나온다면, 브래드피트는 엉뚱하고 황당무계한 일을 벌일 것 같다......


common?quality=75&direct=true&src=https%3A%2F%2Fmovie-phinf.pstatic.net%2F20250530_1%2F1748565987062zjBdn_JPEG%2Fmovie_image.jpg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브래드 피트가 방황하거나 반항하면 제 옷을 맞춰 입은 듯 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기운이 있어서다. 그는 중심을 흔드는 변수, 혜성 같은 배우다. 그래서 <트로이> 아킬레우스 역할이 찰떡처럼 어울렸던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전 또한 시간이 지나도 되살아나는 생생한 장면이다. 신화가 지배하는 세상의 인간 중에 가장 성실한 남자를 대표(?)하는 헥토르를 아킬레우스가 눈에 잡히지도 않는 속도의 동작으로 죽이던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 정말로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존재 같다. 인간이 노력으로 닿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자구나...... 무릎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마저 들게 한 아킬레우스. 그렇다고 브래드 피트가 올림푸스 신을 연기하면 어색할 것 같다.(굳이 비교하면 리암 니슨이 제우스를 연기하면 잘 어울린다)


그는 강하지만 때로 무력하고,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에너지가 폭발한다. 브래드피트가 경계에 있는 존재를 연기하면 그런 사람이 마치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실감이 든다. <F1 더 무비>의 소니 헤이스가 그렇다. <F1>에서 소니(브래드 피트)는 레이싱 중에 페널티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이용한다. 현장 상황에 따른 최적의 생존 전략을 펼치는 모습은 야성이 서로 부딪히는 자연 그 자체다. 흔들림 없이 냉철하고 무엇보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상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초원의 맹수처럼, 소니는 속도로 인한 압박에 단련된 육체로 기민하게 판단한다. 아부다비에서 최후의 트랙을 달리는 순간, 극장에 있는 관객 십여 명 모두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날고 있다'는 극 중 표현에 내 심장이 같이 뛴다.

영화 <청연>에서 파일럿 장진영이 불가능해 보이던 비행을 밀어붙인 후 맞이한 상황과 같다. <청연>에서 그녀는 구름을 뚫고 높은 하늘 장막 너머 세상을 만난다. 그 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 같고 그녀는 영원을 접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소니의 레이스는 시적이다. 가장 달라붙는 느낌은 찰스 부코스키의 시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는 노골적이고 숨김이 없으며 거칠고 적나라하다. 동시에 조금 전 펼쳐진 여린 꽃잎처럼 순수하다. 부코스키의 시는 '거짓은 다 토해내시지' 하듯 주정뱅이가 위협적으로 쏟아낸 것 같은 문장으로 읽는 나의 위선을 깨부순다. 그리고 마침내 부드럽게 감싼다. 부코스키의 시에서 그가 어린아이들이 있는 길가에서 천천히 차를 모는 구절을 읽을 때 울컥 터져 나온 서러운 감정은 '완전한 치유'였다. <F1>에서 목숨을 걸고 속도를 올리는 레이서 소니가 좁은 길에서 한 무리의 동물들이 지나갈 때 천천히 차를 멈출 때도 비슷한 감동이 일었다. 절정을 경험한 사람은 마냥 질주하지 않는다. 날카롭게 집중하고, 임계점을 통과하는 순간 자유로워진다.


common?quality=75&direct=true&src=https%3A%2F%2Fmovie-phinf.pstatic.net%2F20250610_281%2F17495372062715DOOH_JPEG%2Fmovie_image.jpg 노을은 종결, 떠나는 느낌을 준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일생을 일상으로 채워가는 평범한 나와 같은 인간이 이런 지점에 서게 되면, 물론 곧바로 죽어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꼭 만나야 하는, 경험해야 하는, 그래야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F1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재기한 소니가 다시 메마르고 광활한 사막으로 향할 때 후련한 해방감을 느꼈다. 세상이 소니의 젊은 시절을 실패로 점철된 삶이라고 비하할 때 그는 자신을 풍요롭게 가꾸었다. 파도를 타는 서퍼로 살고 택시 드라이버로 일하기도 했다. 소니는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따라갔다. 삶의 굴곡마다 그의 정신과 육체는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짙은 체리색 선글라스 너머 심해처럼 깊은 푸른 눈동자가 묻는다. 그래서...... 너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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