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게 퇴적된 원작에 새긴 선명한 각색
나는 이 영화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아니 더 깊이 빠져드는 걸까? 스포일러 있다.. 1회 관람해서 인용한 영화 대사가 정확하지 않으니 느낌 전달에 주력한 것으로 보아주시길 바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반백이다. 그 머릿결은 곧고 건조하다. 그녀는 오래된 나무 가지 일부가 꺾이는 것처럼 일순 바닥을 헛디디지만 나이테처럼 켜켜이 둘레를 키워 온 삶의 기조는 흔들리지 않는다. 멀고 먼 겨울밤 쓰러져 눈 덮인 채 얼어버린 그날로부터 칼보다 깊게 찌르는 봄이 스칠 때까지 어떻게 그녀는 죽이면서 살았을까. 키우기 쉽다는 식물조차 곁에 두기를 거부하는 60대 킬러는 짙은 녹음 속에 있을 때 녹아들 듯 어울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경탄한 장면이다.
몸의 감각은 허물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조각(이혜영 분)은 킬러로서 건재하다. 생명의 은인이자 첫사랑인 류(김무열 분)가 킬러였기 때문에 벌레 같은 인간을 방역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며, 그녀는 죽이는 일을 통해 내밀한 사랑을 간직하고 생을 유지한다. 그런 삶에 두 갈래의 균열이 생긴다. 하나는 지난날 그녀와 이어진 잊힌 인연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사랑처럼 아련하게 스며든다.
성녀와 마녀 그 사이 어디쯤 엄마가 있다
평소 냉철한 조각은 특이하게(?) 사적인 이유가 결부될 때 능력치가 최대한 발휘하는 것 같다. 가녀린 여인이 전설의 킬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포인트가 이혜영만의 아우라에 힘입어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여성성은 빛이 바래지 않으며 때로 야만적일 정도로 매혹적이다. 신화시대의 모성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유사한 느낌을 주는 배역과 배우는 영화 <알렉산더>에서 대왕의 엄마로 나왔던 올림피아스, 안젤리나 졸리다.
<파과>는 깊은 감정선으로 인해 따로 애정신이 없음에도 캐릭터 간 성적 긴장감이 높다. 조각은 흰머리가 많지만 머리숱도 많다. 기록을 남길 때 볼펜을 잡은 손이 마음 같지 않게 떨리고 돋보기안경도 필요하지만 눈빛은 형형하고 나이트클럽 갈 때 적절한 복장과 메이크업도 아주 잘 어울린다. 볼살은 패었지만 콧대가 미려하고 또렷하고 높은 목소리는 고혹적이다. 이혜영은 때를 딱 맞춰 '조각'으로 등장한 것만 같다. 냉혹한 킬러가 망설이는 순간처럼 설레는 건 없다... 왜 주저하는가? 어째서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가? <봄날을 간다>에서 은근슬쩍 라디오를 틀어 상우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알리는 은수(이영애 분)처럼.
응급 상황에서 자신을 치료한 30대 수의사에게 이름을 말해주고 자신에게 할 말 없는지 되묻는 그녀. 그녀에게 봄날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수의사 강봉회(연우진 분)는 수줍어 보이지만 강단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은은한 사람이 실은 옴므 파탈(!)이다... 조각의 정체를 다 들여다봐놓고도 태연하게 날카로운 각종 소지품을 돌려주고 영화 말미에는 결정적인 대사를 한다. 당신을 치료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기절해서 주저앉은 강 선생의 얼굴을 조각이 어루만지는 장면을 볼 때는 슬픔이 일었다. 조각이 이룬 적이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고 그녀의 가닿지 않을 감정이 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감도는 분위기와 닮은 영화가 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베니시오 델 토로가 딸 정도 나이인 에밀리 블런트의 뺨을 감싸는 장면이 그렇다. 위로하는 줄 알았더니 암살자 아저씨는 그녀의 고개 아래에 총구를 겨눈다... 비정할지어다) 이 달콤하고 은밀한 마음을 또 다른 30대인 투우가 굳이 산산조각 낸다. "바라보는 것은 자유지만, 자격이 없는 건 알지?"
사실확인 고마우나 네가 질투하는 거 다 안다
투우(김성철 분)를 보면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악마 같은 아이 케빈이 떠오른다. 케빈 엄마(틸다 스윈튼)와 케빈의 절망적인 모자관계 때문에 케빈이 외동이었으면 덜 미치광이였을까 싶었지만, <파과>를 보자니 그런 가정이야말로 쓸모없다. 투우가 조각에게 돌진하는 장면은 제발 사랑해 달라는 신호로 보인다. 케빈은 마지막에 보통 아이처럼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봐주는 것 없이 서로 베고 쏘고 찌른 후 조각 품에 안기듯 누운 후에야 투우도 오랜 감정을 마지막 숨으로 토해낸다.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던 투우의 최후를 보며 진실하고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정적인 사랑을 실은 나도 매일같이 다양한 강도로 겪고 있음을 깨우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응시하고 직시하고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외계인과 우주 전쟁하는 만큼의 난제다.
소년 투우의 집에 가정부로 위장해서 함께 지냈던 시간을 조각은 잊고 있었다. 곱게 빻아준 약을 동그랗게 입 벌려 받아먹던 사내아이를. 방역 대상이었던 남자는 밤 12시에나 귀가했고 어린 아들에게 손찌검하는 사람이었다. 조각은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시간이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식모살이로 단련한 살림실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열흘이나 그 집에 머물면서 그녀는 어린 투우에게 끼니를 잘해 먹였을 것 같다. 따스한 엄마처럼 감싸 안았다가 홀연히 요정처럼 떠난 그녀에게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자란 아이가 찾아온다. 영화 <A.I>의 로봇아이 데이빗처럼 각인된 사랑을 재차 갈구하면서. 폐장한 놀이공원에서 이뤄진 결투는 조각이 투우 등짝을 엄마처럼 때리면서 혼내는 것으로 보인다. "잘못 배웠구나."
왜 그렇게 잘해준 것입니까, 이토록 슬퍼질 것을
너 죽고 나 죽자고 서로 덤벼들다가 피투성이로 널브러진 두 사람은 성스러운 조각상 '피에타'를 재현한다. 20년 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오들희(이혜영 분) 여사는 진짜 아들을 모욕하고 내치는 비극적인 모성을 연기했는데, <파과>에서 그 연장전 혹은 확장판을 본 듯하다. 함께 험난한 하루를 보내고 머리 산발한 상태로 귀가하자마자 투우에게 밥을 해 먹이는 조각을 보면서도 나는 엄마와 아들의 애증 관계를 투영했다. 좀 더 나아가 형제자매가 엄마의 사랑을 다투는 구도로 보면 투우의 감정이 잘 이해된다. 물론 이들은 친형제가 아니고 조각의 자식들이 아니지만 투우의 광기는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형(강봉회) 더 좋아하지 마, 엄마. 지금 여동생(강해니) 더 이뻐하는 거야? 나만 봐! 나만 사랑해 줘! 둘째 포지션 투우의 절규.
영화는 사회악을 제거하는 방역을 지속하는 킬러로서의 조각을 보여주며 맺는다. 원작에서는 조각의 일상이 미묘하게 달라진 점을 묘사하며 그녀의 삶을 더 들여다본다. 비옥한 텍스트로 가득한 소설 덕분에 영화 <파과>를 보고 일어나는 쓸쓸한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 에프킬라로 고독하게 살았든 하루하루 매상 걱정하며 과일가게 주인으로 살았든, 한정된 삶의 각 단계에서 마주칠 상권이 죽은 상가 골목 같은 굴곡을 어떻게 감당하면 좋을지, 킬러가 등장하는 판타지에서 무중력 상태로 떠도려는 나를 현실로 내려앉게 한다. 이런 호흡은 영화 <해피엔드>와 비슷하다. 아내를 죽인 후 남편(최민식 분)이 맞이한 다음날로 끝맺음으로써 지금까지 여운이 남았던 것처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살아야 한다.
원작에서 투우와 결전 후 조각은 손이 하나만 남는데, 그 남아있는 다섯 손가락에 네일아트를 받는다.(삭제 후 영화 개봉했지만 촬영한 장면인 듯) 살아있는 한 인생은 이렇게 반짝이는 순간을 선사하며 이어진다. 타이타닉에서 살아남은 로즈가 미국에서 이렇게 저렇게 잘 살았다 사진 액자를 비춰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파과처럼 뭉크러진 황혼의 그녀가 맞이하였을, 내가 무엇이 아니더라도 혹은 무용하더라도 존재 자체로 좋다는 달큰한 맛이 내게도 번져왔기 때문에.
<파과>, 20년 전 <달콤한 인생>이 가져다준 감동과 짝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