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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Jun 22. 2021

잉어 꿈 샀던 이야기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이러저러한 일이 닥쳐오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헤드뱅잉을 하며 “아” “오” “으흠” 하며 추임새를 넣고 있다. 그렇다고 점괘나 사주풀이를 전부 믿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점집이든 철학관이든 타로 카페든 어디가 용하다고 하면 따라갈 뿐, 내가 먼저 가자고 나선 적도 없다. 아니, 큰길가의 타로 카페를 보고 술김에 한두 번 권하기는 했던가.


예전에 내 직업과 졸업한 학교를 맞추고 당시 남자친구와 곧 헤어지게 될 거라던 점쟁이가 있었다. 과연 그런 상황이 오기에 ‘제법이네’라고 생각했으나, 얼마 안 지나 “개인적으로 마음 아픈 일이 생겨 가게를 접습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점집이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점쟁이는 미리 알지 못했을까, 알고서도 대비를 못 했을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딱 맞다. 어느 스님께서 “‘중’은 얕잡아 부르는 말이니 ‘스님’이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라고 왜 스스로 머리를 못 깎겠어요?”라고 말씀해 주신 적 있기는 하지만.


올해 초 친한 언니를 따라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가서 사주를 보았다. 공무원으로는 큰돈을 벌 도리가 없는데도 나보고 크-은 부자가 될 거라기에 시큰둥하게 들으며 습관대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돌아왔다.


“5월 이후에 괜찮은 남자를 ‘줍게’ 된다”라고도 했었지, 하고 떠올린 건 5월을 일주일 앞두고 친구에게서 잉어 꿈 이야기를 들은 때였다. 꿈에서 추어탕을 먹으러 갔더니 주방장이 엄청나게 큰 잉어를 꺼내오더라고 했다. “그 꿈 내가 사마” / “연애도 안 하면서 왜때문에 태몽을?” / “연기가 난다는 건 어디에 굴뚝이 있다는 얘기잖아”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한 끝에 자그마한 선물을 주고 꿈을 샀다.

※ 꿈 팔기는 꿈을 상대에게 말하고 그 상대로부터 돈이나 물건 등 값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출처: 네이버 지식인)


그 5월에 나는 두 손을 모두 써야 셈할 수 있는 만큼이나 소개팅을 했다. 잉어 꿈은 과연 효험이 좋구나, 하고 내심 감탄했다. 꿈을 판 친구도 “애프터서비스야”라며 소개를 몇 건 주선했는데, 이렇게까지 자기 상품에 투철한 책임감을 가진 걸 보면 공부가 아니라(친구는 범죄학 박사생이다) 사업을 했어도 크게 성공했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5월의 소개팅 중에서 연애로 이어진 건은 없었다. 나중에 듣자니   친구의 친한 사람이  무렵에 아기를 가졌더라고 했다. 역시 태몽이었구나. 꿈의 효험은 장래효가 아니라 소급효로군. 그러고 보니 철학관에서 내가 ‘줍게 남자는 조상님께서 보내주신다고 했었다.  그러셔도 괜찮지만, 이왕 보내주신다면… (제가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지 아시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점괘나 사주풀이를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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