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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바하면 남친 생겨요?

네 생깁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나의 방학 목표는 고득점의 토익 성적이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어학연수를 이유로 훌쩍 먼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갑자기 늘어나버린 시간을 오로지 영어 성적에 쏟기로 마음을 먹었다. 토익학원을 등록하고 데이트를 위해 항상 비워두었던 주말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비춰봤을 때, 가장 최적의 업종은 카페라고 판단했다. 그 중에서도 오픈조. 일단 옷에 냄새가 베지 않아 아르바이트 전후로 일정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을 때 온 몸에 남던 패티 기름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세계에서 마감조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다 쓴 식기와 기기들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조건 오픈조가 같은 시간 대비 이득이었다. 하지만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이 없어 생각보다 합격이 어려웠다. 뭐라도 하나 들이밀면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미친듯이 지원서를 뿌려 쉴틈없이 면접을 보러 다녔다.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는지 결국 집에서 가갑고 오픈조(10시~18시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기준에 아주 완벽한 카페에 합격하게 되었다.


"출근하면 A가 오픈하고 있을거야. 나중에 혼자서도 오픈할 수 있게 A한테 일 확실히 배워놓으세요."

점장님의 말대로 첫 출근날 이미 문을 열고 오픈 준비를 하는 알바생이 있었다. 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A는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와 하얀 얼굴, 선한 눈매에 멋진 콧날까지 한 마디로 너무나 잘생긴 친구였다. 속으로 계탔다 미쳤다 내 인생에 이런 행운이 등등의 온갖 주접이랑 주접은 다 떨었다. 잘생긴 외모에 비해 숫기가 없는지,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며 인사하는 그가 퍽 귀여웠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A는 얼굴도 잘생긴데다, 감격스럽게도 성격까지 좋은 친구였다. 일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지사에, 미안할 정도로 궃은 일을 도맡아 했다. 가끔 찾아오는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는 항상 물을 떠다 줬다. 선한 마음씨와 정직한 성격, 적당한 유머감각에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그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기도 했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때라 그에게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저 친구들에게 무지 잘생긴 알바생이랑 일한다고, 역시 카페 알바생은 얼굴을 보고 뽑는걸 보니 나도 한 미모 하나보다(?!) 정도의 농담같은 대화에만 등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외국으로 유학을 간 남자친구는 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안받기 일쑤였고 드문드문 무미건조한 연락만 반복되었다. 하도 전화를 받지 않아 일부러 피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그와의 연애 스토리를 설명하면 정말 길어질테지만, 당시는 심각한 권태기를 지나 피상적인 안정을 형성했던 시기였다. 거기에 먼 타국에 있어 얼굴보고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더 이상 연애를 이어나갈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 허무하고 슬픈 감정에 빠져 있을 때, A는 갑자기 나에게 훅 들어왔다. "시간되면 영화보러 갈래?" 이 한 마디와 함께.



조금은 후덥지근한 여름 밤, 그와 영화를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밤거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얼마만인지, 기분이 참 좋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위기만 남은 관계에 더 이상 에너지를 쏟기 싫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A와의 관계는 서서히 발전했고, 이윽고 연인이 되었다.


23살 여릅부터 시작한 우리의 인연은 놀랍게도 2021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랜 연인에게 부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수 년간 겪어온 '짬바'로 어느 정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없어서는 안될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달까. 이제 예전처럼 얼굴만 봐도 설레고, 두근거리지 않게 된 지는 오래지만 (종종 설레게 할 때도 있다.^^) 따듯하고 언제나 나를 보듬어주는 그가 참 좋다. 23살 카페 알바생이었던 그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아마 내 인생사 중 영원히 잊지 못하는 순간 중 하나가 되겠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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