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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Jul 26. 2022

구직 활동을 시작하다

이력서 열 장을 들고 무작정 스타벅스로 향했다.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한 지도 어언 한 달 차.

밴쿠버 다운타운은 돌아볼 대로 돌아봤고 슬슬 가져간 돈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로 잡 헌팅을 해야 할 때였다.


난 무조건 스타벅스에서 일할 거야.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다짐하는 순간부터 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왜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카페 알바를 2년여간 해오며 카페 일이 너무 좋았고, 스타벅스만큼 캐나다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곳도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스타벅스의 상징인 초록색 앞치마를 꼭 입어보고 싶었다.


밴쿠버로 떠나기 전부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카페나 인터넷에 있는 스타벅스 구직 팁을 잔뜩 읽었다. 스타벅스는 온라인 지원이 원칙이지만 직접 이력서를 돌리는 게 더 좋다는 둥, 인터뷰를 두 번, 세 번 보는 경우도 많다는 둥 다양한 후기가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스타벅스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 들어갔다. 스타벅스 캐나다는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는데, 한 계정으로 5개 매장까지 지원할 수 있다. 메일 여러 개로 더 많이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우선 5개만 해보고, 연락이 안 오면 더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글 맵스를 켠 후 집 근처 스타벅스를 쭉 살폈다. 그리고 집 근처 매장 다섯 개를 추린 후 온라인 지원을 완료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직접 발품을 팔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손에 들고 온라인 지원을 했던 매장 다섯 개를 다 들르기 전엔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첫 목적지인 던스미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던스미어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는 호텔 건물 1층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침 일찍 나와서 한가할 것이란 나의 예측은 첫 번째 매장부터 빗나가고 말았다. 손님으로 갈 땐 아무 생각 없이 열던 스타벅스 문이 그때는 얼마나 굳게 닫혀 보이던지.


이걸 들어가? 말아?를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일은 구해야 하고, 그렇다면 이 과정은 언젠가 겪어야 하는 거고, 스벅 파트너들은 다 친절하고, 내가 이 매장 다시 안 오면 그만인데 왜 나는 문을 열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가.


하지만 첫 번째 매장에서는 결국 내 마음과의 싸움에서 졌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벌써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순 없기에 발길을 돌려 두 번째 목적지인 시무어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곳은 주택가에 위치해서 굉장히 조용하고 한산해 보였다. 또다시 망설여졌지만 스스로를 세뇌했다.

'나는 손님이다, 손님이다.'


매장에 들어가서 먼저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그리고 픽업대에서 언제 말을 걸면 좋을지 타이밍을 열심히 살폈다. 당시 두 명의 직원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용기 내어 첫마디를 뱉었다.


Can I see your manager? (매니저 좀 만날 수 있을까?)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매니저는 지금 없다고 했다. 일요일에 출근을 한다고 하여 라떼를 들고 매장을 나왔다.

떨렸던 첫 도전이었지만 절반 정도의 성공이었다.

그래도 첫 시도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비티 거리에 있는 세 번째 매장으로 갔다.


이미 한 번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또 다른 문 앞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단계를 또 보냈지만 이전 매장보다는 빠르게 문을 열었다.

텀블러를 구경하며 분위기를 살피는데 검은 앞치마를 한 사람이 근처에서 푸드 코너를 채우고 있었다. 앞치마 색이 다른 것이 매니저 같은 느낌이 들어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이 매장에서 예전에 일했던 사람인지 다른 직원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꺄르륵하며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또다시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매니저 같은 사람이 음식 코너에 다시 왔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말을 걸었다.


Excuse me? Are you the manager of here? (혹시 여기 매니저세요?)


다행히 매니저가 맞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을 구하냐 물었더니 슬프게도 지금은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레주메는 주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친절한 매니저는 지금 사람을 뽑진 않지만 레주메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의 첫 이력서 전달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첫 번째 성공에 스스로를 칭찬하며 용기가 더 생겼다. 그래서 바로 그랜빌에 있는 두 매장 중 하나로 갔다.

오늘의 네 번째 스타벅스였다.


들어가서 텀블러를 하나 구매했다.

이력서를 내기 위해 오늘 하루 스타벅스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건지. 내 부족한 용기는 그대로 비용이 되었다.


이번 매장은 분위기가 지금까지 방문한 곳들과 사뭇 달랐다. 한가하고, 말을 걸 타이밍도 많은데 도무지 말을 걸 수 없는 그런 느낌. 이유모를 망설임이 오래 지속됐다.

자리를 잡고 사람 구경을 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귀여운 직원에게 다가갔다. 매니저를 볼 수 있냐고 물으니 매니저는 지금 없고, 슈퍼바이저를 불러와줬다.


슈퍼바이저에게 지금 사람을 뽑느냐 물어보니 입사 지원은 온라인으로 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온라인으로는 이미 지원을 했다고 하니 단호하게 'NO' 라며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레주메를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매장을 나왔다.


사람의 촉이라는 게 참 정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망설여지고 쉽사리 말을 걸 수 없던 것엔 이유가 있던 것이다.


단호한 거절을 당한 후 살짝 기가 죽었지만 다섯 번째 매장인 그랜빌 거리의 다른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픽업대에서 음료를 받으며 직원에게 매니저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직원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언어였다.


한국분이시죠?


아, 이 얼마나 반가운 순간인가. 밴쿠버에 와서 영어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인이 많은 환경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일을 구하겠다며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들린 한국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안도가 됐다.


매니저는 무슨 일로 찾냐길래 혹시 사람을 뽑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곧 그만둘 거라 아마도 뽑을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매니저는 오늘 없고 월요일에 온다고 해서 레주메는 다시 주러 오기로 했다. 그래도 오프닝이 있는 곳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매장을 나섰다.


다섯 곳을 다 들르는 게 목표였으므로 첫 번째에 포기했던 던스미어 매장을 다시 방문했다. 지금까지 들른 네 곳의 경험을 용기 삼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픽업대 주변을 맴돌며 타이밍을 보다가 길고 긴 음료 줄이 끝났을 때쯤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곳도 매니저가 없었다. 대신 다른 직원을 불러줬는데 슈퍼바이저인 듯했다. 매니저가 휴가를 가서 다음 주나 되어야 오니 자신에게 이력서를 주면 전달해주겠다 했다. 그분은 나에게 다운타운에 사는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이른 새벽에도 출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이력서를 받아갔다. 마지막까지도 가장 용기내기 어려웠던 매장이었지만 막상 이야기해보니 느낌이 좋았다. 역시 부딪혀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섯 개의 스타벅스를 다 돌고 나니 내심 뿌듯했다. 비록 이력서는 두 장 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목표를 완수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래,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의 가능성을 새로이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캐나다에서의 구직활동 첫날이 저물어 갔다.


과연 이 중 어느 곳에서 나는 일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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