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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윤지 Jul 05. 2022

초롷다

지구색은 매미 소리와 함께 초롷다.

매거진 <지구색물감>은 땅, 풀, 돌, 꽃 등의 천연 재료를 모아 지구색 물감을 만들어가면서 쌓인 에피소드를 나눕니다.

뜨겁다.

그리고 습하기까지.

지난 주 내내 무섭게 비가 내리더니 요 몇일은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진다.

변화 무쌍한 날씨에 몸이 아직 적응이 안되는지 졸음이 쏟아진다.

게으름을 피우다 짧은 명상을 하고 오후 네 시가 넘어서야 동네 카페로 나섰다.

습하고 뜨거운 기운에 피부가 따갑고 간지럽다.

10분 남짓 짧은 산책 길을 걷는 데도 몸이 무겁다.

(C) 2022. Yunji Gong 초록빛이 지천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달래려 시선을 돌려본다.

초록빛이 지천이다.

어릴 때 색을 표현하는 서술어 중에 ‘노랗다, 빨갛다, 파랗다’와 달리 ‘초롷다’는 말은 없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초록이 지천일 때는 ‘와! 초롷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C) 2022. Yunji Gong. 오후 햇빛을 머금어 야들야들한 잡초들

오후 햇빛을 머금은 잡초들은 야들야들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약간 노랗고 초롷다.

시원한 카페에 들어서서 따뜻한 쑥 꽃 차를 한 잔 시켰다. 초로스름한 쑥 꽃 색이 따뜻한 물에 번진다. 습하고 더운 기운을 따뜻한 차로 다스리고 남은 오후는 힘을 내보기로 한다.

(C) 2022. Yunji Gong. 쑥꽃차가 초로스름하게 우러나고 있다.

저녁 무렵 카페에서 나오는 데 코가 간질간질하고 미열에 두통이 온다. 냉방병이 온 것 같다.

연신 재채기. 에취!

냉방병 기운이 돌면 늘 상상하곤 한다. 지난 가을부터 에어컨에 서식하던 곰팡이가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 찬바람을 타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상상.

(C) 2022. Yunji Gong 20220704 지구색 : 초롷다.

으슬으슬한게 감기가 올 것 같다.

햇볕으로 나가 몸을 말리려 카페를 나선다.

이미 해는 지고 하늘은 검푸르게 내려앉았다. 매미가 운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땅거미가 내려앉은 초록 들판의 잡초를 몇가닥 뽑아와 종이에 문지른다. 한 종류는 조금 옅은 초록이고, 다른 한 종류는 조금 짙은 초록이다.

오늘 만난 지구색은 여름의 습한 기운과 매미 소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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