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긴 우회로에 대한 자화상
길고도 잔혹한 시간 동안, 나는 음악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혹독한 형벌이었는지.
그렇게 나는 매일 음악을 붙잡고 있었다……
기억 속의 그 아이는 참으로 단순했다. 기타를 혼자 독학하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그 시절.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들렸고, 모든 감정이 선율로 변환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커서 작곡가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그 아이의 눈에는 의심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현실이라는 벽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걸 수 있다고, 순진하게도 믿고 있었다. 어른들의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라는 말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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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그렇게 극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해야 할까. "음악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주변의 조언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어느새 그런 말들에 설득당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만들어냈다. "이것도 창조적인 일이야", "코딩도 예술이 될 수 있어",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진정 원했던 삶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IT업계에서의 성공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 남들보다 빨랐고, 사업적 감각도 있었다. 회사를 차리게 되고, 직원들을 고용하게 되고, 매출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성취감을 느꼈다. 겉으로는.
회사 대표라는 직함이 주는 만족감은 분명히 있었다. 사회적 인정, 경제적 안정,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타이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채워질수록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점점 더 메말라갔다.
밤늦게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면 문득 어린 시절의 그 선율들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멜로디들을 어디에도 풀어낼 수 없는 답답함. 회의 중에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중에도 불현듯 떠오르는 가사 한 줄, 코드 진행 하나. 그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회사가 안정되면", "더 여유가 생기면", "나이가 들면". 하지만 그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성공할수록 더 바빠졌고, 책임은 더 커졌고, 음악은 더 멀어져갔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외로웠다. 겉으로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꿈을 배신한 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른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가 나올 때면 괜히 위축되곤 했다. "나도 원래는..."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던지.
특히 힘들었던 것은 동창들과의 만남이었다. 음악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들을 볼 때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부러움과 동시에 안도감도 있었다. 그들의 불안정한 삶을 보며 "그래도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그들의 눈에서 발견되는 그 빛나는 열정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밤마다 찾아오는 애달픔은 어쩔 수 없었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이었지만, 정작 내 안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계속 말라가고 있었다. 꿈을 유예한다는 것, 아니 사실상 포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아픈 일인 줄 몰랐다.
그래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회사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몰래 피아노를 쳤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기타를 들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출장길 호텔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녹음했다. 마치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그렇게 수집된 음악적 파편들이 하드디스크 한구석에 쌓여갔다. 미완성된 곡들, 어설픈 가사들, 어디에도 발표할 수 없는 감정들의 기록. 그것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다.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가끔 술에 취해서는 친한 친구들에게 그런 곡들을 들려주곤 했다. "언젠가는 정말 음악을 해보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꿈을 키운다는 것과 꿈을 이룬다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 줄 몰랐다.
수십 년이 흘렀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어가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회사는 안정 궤도에 올랐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의 잔혹함도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는"이라고 미뤄왔던 그 "언젠가"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후회였다는 것을. 음악을 해서 실패할까 봐가 아니라, 음악을 하지 않고 죽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성공한 사업가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한 번도 자신의 진짜 꿈을 시도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 깨달음은 마치 벼락처럼 나를 강타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60대, 70대가 되어서야 음악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물론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결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렇게 오래 망설였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회사를 정리하고, 음악과 글쓰기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의 그 해방감이란. 마치 오랫동안 꽉 끼는 신발을 신고 걸어오다가 드디어 벗는 기분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미쳤다", "나이가 몇인데", "안정된 삶을 버리고 뭐하는 짓이냐".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말들이 예전처럼 상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확신이 섰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했던 삶이라는 것을.
음악을 단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다. 아무도 모르게, 세상은 몰랐지만 나는 매일 음악을 붙잡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다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었고, 클래식이든 영국 메탈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음반 속에서, 광고의 한 구절 속에서… 내 손을 거친 수많은 선율이 흘러갔다.
그러나 그 모든 건 ‘내 이름’이 아니었다. 내 흔적은 남았지만, 내 목소리는 묻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 이름을 걸고, 내 온 생을 걸어 만든 첫 곡이 세상에 나왔다. 그 순간은 마치 긴 겨울 끝에 첫 새싹이 터져 나오는 듯했고, 오랜 세월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숨결이 한꺼번에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내 삶 자체였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제 와서 시작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젊은 시절에 시작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을 음악들이 있다는 것을. 인생의 무게, 현실의 아픔, 꿈을 유예했던 세월들이 주는 깊이가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내 음악에는 20대의 나에게는 없었던 것들이 담겨 있다. 상실의 아픔, 타협의 쓴맛,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다시 꿈을 향해 걸어가는 용기. 이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재료가 아닐까.
늦은 출발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록 우회로를 돌았지만, 결국 본래 가고자 했던 길로 돌아왔다는 것이.
음악을 다시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상처들이 하나씩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꿈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현실에 타협했다는 자괴감, 시간을 허비했다는 후회감들이 점차 사라져갔다.
아, 그 모든 시간들도 필요한 과정이었구나. IT업계에서의 경험, 사업가로서의 고민들, 현실과의 끊임없는 갈등들이 모두 지금의 내 음악에 녹아 있다. 만약 20대에 바로 음악을 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깊이와 무게가 있다.
상처는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고, 절망한 만큼 간절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이 음악과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기술 문서만 써왔던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다니. 수십 년간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글을 통해 분출되었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회사를 운영하면서 쌓인 인간에 대한 통찰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던 철학적 사유들이 글 속에 녹아들어갔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인생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이제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자에서 예술가로의 변신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줄 몰랐다. 결국 창조한다는 본질은 같았던 것이다. 다만 도구가 코드에서 음표로, 알고리즘에서 감정으로 바뀌었을 뿐.
이제는 완전히 음악가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글을 쓰는 것이 호흡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있다.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후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적어도 내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가끔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면 부러워한다. "용기가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이것은 용기라기보다는 체념에 가깝다. 더 이상 거짓된 삶을 살 수 없다는 체념.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절박함.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긴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 꿈꾸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여행. 비록 많은 우회로를 돌았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진짜 음악가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대의 나는 기교는 있었지만 깊이가 없었다. 50대의 나는 기교는 부족하지만 깊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젊음의 패기보다는 인생의 무게가, 기술적 완벽함보다는 감정의 진정성이 더 소중하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다. 현실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꿈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모든 상처와 아픔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마침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꿈꾸던 그 자리로.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남은 인생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뒤늦은 귀향이지만, 이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2025년 8월 어느 날, 『숲의 노래 : 나무가 들려준 이야기』라는 제목과 나의 또 다른 이름, 음악감독 **피디스티브오(PD_SteveOh)**가
숲 속에서 직접 느낀 순간들을 12편의 음악, 에세이, 그리고 시로 엮은 감성 여행서
'여음서'의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by 공감아티스트 오지훈 Aug 07.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