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

인간의 미지(未知)에 대한 성찰



역설적인 만남의 경험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쉽게 정의내릴 수 있었던 사람이,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앞이 더 흐려진다.


첫 만남에서는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진솔한지 가식적인지 어렴풋이나마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 윤곽은 오히려 흐릿해진다. 분명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모습들이 하나씩 깨져나간다.



인간이라는 미로

어떤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어제는 차분하고 신중한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다. 지난주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쳤는데 이번에는 놀랄 만큼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소심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어떤 순간에는 과감하고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종종 혼란스러워진다.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은 뭘까?' '어느 쪽이 진정한 그 사람일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아마도 그 모든 모습이 다 진짜일 것이라고.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자아들이 공존한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른 자아가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그 모든 자아가 다 '진짜'다.



예측 불가능함의 매력과 두려움

만날수록 더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예측 가능한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항상 신선한 자극을 준다. 오늘 만나면 어떤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마치 매번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설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다음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 없으니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다. 마치 계속 변하는 날씨 같은 사람들이다.



깊이의 역설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깊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얕은 사람들은 쉽게 파악된다. 몇 번 만나면 그 사람의 패턴을 알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은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 안에는 여러 층의 복잡함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층이 드러난다.


어떤 심리학자는 말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 안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 안의 다양한 면들을 억압하거나 일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일관성이라는 감옥

우리는 종종 일관성을 미덕으로 여긴다. "저 사람은 정말 일관성 있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칭찬한다. 하지만 때로는 일관성이 자신을 제한하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정의에 갇혀서 다른 가능성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은 이런 감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솔직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대나 일관성의 압박보다는 그 순간의 진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관계의 깊이와 불확실성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깊어질 수도 있고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예측 불가능함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관계에 생동감을 주기도 한다. 권태라는 것이 없다. 항상 새로운 발견이 있고,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상대를 새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기존의 판단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능동적인 관계 맺기가 요구된다.



나 자신도 모르겠는 나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사교적이고 어떤 날은 혼자 있고 싶다. 평소에는 신중하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타인에게는 관대하다가도 가끔은 놀랄 만큼 비판적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나를 완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내일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나 자신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아는 것'을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 알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것을 답답해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여행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새로운 발견인 여행 말이다.



미지의 아름다움

결국 인간의 미지함이야말로 관계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안다면 더 이상 흥미로울 것이 없을 테니까.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지루하지 않고, 삶은 예측 불가능한 모험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화내거나 실망하지 말자.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 이 사람 안에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때로는 피곤할 수도 있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사람들과의 편안한 관계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미지의 사람들이 주는 자극과 성장의 기회도 소중하다.



인간이라는 무한한 책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인간이란 결국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는 책 같다고. 몇 페이지를 읽었다고 해서 전체 내용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관계는 얼마나 단조로울까? 미지함이 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고, 호기심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그들이 우리에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신비로움을 일깨워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미지의 존재일 것이다. 그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자, 끝까지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미완성의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써져나가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사람》

또는 《나는 그 사람을 안다고 믿었다》





1.

처음엔 쉬운 사람이었다.

말이 잘 통했고,

생각도 비슷해 보였다.

어떤 부분은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다.


2.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걸 공유하고,

더 많은 자리를 함께하면서도

이상하게 어떤 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말은 오갔지만,

어딘가 그 사람은

한 걸음 뒤에 있었다.


3.

나는 더 가까워졌다고 믿었지만

그 사람은,

나를 한 번도

안쪽으로 들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4.

그 사람의 미소는 자연스러웠고

대화는 친절했지만

속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물처럼 스며들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벽처럼 단단했다.


5.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아니,

이젠 그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은,

그 사람도 그랬을까 싶다.

나를 안다고 생각했을까.





by 공감아티스트 오지훈 Aug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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