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
창밖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반짝인다. 구름 한 점 없이 해만 덩그러니 떠있어서 그런지, 채도가 높아진 듯 모든 것이 진하고 선명하다. 저 멀리 보이는 나무도 흔들흔들 춤을 춘다.
'라라라라라라라라~'
순간 기분이 '포카리스웨트'가 되어 아기를 업고 나설 채비를 했다. 이 자연을, 이 기분 좋음을 아이에게 맛 보여주고 싶다.
어린 시절 나의 포카리스웨트는 소돌 해수욕장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지는 항상 바다였다. 우리의 여행은 '출발 준비'부터 시작되었다. 하루 전에 재워둔 오삼불고기 주물럭, 김치,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챙기는 어머니의 손길은 분주했다. 컵라면과 쌀을 챙기고, 코펠 세트와 브루스타, 가스는 필수 준비물이었다. 아버지는 차의 모든 문을 열고 여행을 준비하셨다. 차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하시고는, 어머니가 현관 앞에 내놓으신 준비물들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럼 언니와 나, 남동생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면서 드실 사탕과 껌을 사 오는 것이 목적이지만, '너희 먹을 것도 사라'는 말씀도 꼭 지켰다. 슈퍼에 다녀와 우리는 차에 타서 어머니가 오시길 기다렸다. 한참 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는 엄마 손에는 또 짐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에는 모기향, 휴지, 비상약, 구급키트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멀미가 심했던 나는 1년에 한 번 가는 바다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차를 타자마자 눈을 감고 아버지가 틀어주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신기하게도 금방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민박촌에서 천천히 운전을 하면 거의 다 도착했다는 의미였다. 그럼 어머니는 저장해 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저희 도착했는데, 남은 방 있나요?"
어떤 예약 시스템도 없었던 90년대에는 숙소도 현장 당일 체크인을 해야만 했다. 작년에 갔던 숙소에 자리가 있으면 그곳으로 가고, 아니면 여기저기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알아보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그게 몇 시든 엄마는 항상 밥부터 안쳤다. 코펠에 냄비밥을 하고, 뜸이 들 동안 오삼불고기를 구우면 그만이었다. 담을 넘어 들어오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먹는 첫 끼는 언제나 꿀맛이었다.
보통 바닷놀이는 둘째 날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침밥을 두둑이 먹고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튜브를 껴안고 맨발로 조금만 걸으면 골목길 끝에 바다가 펼쳐졌다. 돗자리를 펴고 어머니가 자리를 잡으시면, 우리는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다. 소돌 해수욕장은 동해인데도 물이 얕게 들어와서 어린 우리가 마음껏 놀 수 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우리들이 바다를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바다에 가만히 누워있는 걸 좋아했는데, 깃털처럼 가볍게 물에 두둥실 떠다니면 파도가 귀에 넘실댔다. 그럼 세상의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귀가 물에 푹 잠기면 바깥에서는 듣지 못하는 바닷속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재밌는 바다 놀이를 많이 알려주셨다. 물싸움, 비치볼, 튜브 뒤집는 것, 수경을 쓰고 잠수해서 언니 발을 낚아채는 것 모두 즐겨하는 놀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때그때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새끼 학꽁치가 길을 잘못 들어 해안가에 몰려든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해수면을 이소룡처럼 내리쳐서 그것들을 기절시켜 페트병에 담았다. 재밌어 보였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아버지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래서 한 때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손 날로 바다를 내리치고 있었다.
우리와 실컷 놀아준 아버지는 간식시간이 되면 어머니에게 우리를 데려다 놓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작살을 가지고, 파도가 심하게 깨지는 암석 쪽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자는 새벽시간을 취미시간으로 활용하시기도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면, 짠 물 냄새를 풍기며 수돗가에 앉아계셨다.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라며, 까만 가시 속에서 계란 노른자 같은 것을 꺼내 입에 쏙 넣어주시곤 했다. 가끔은 작살에 물고기도 끼어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시원함, 어린 시절의 포카리스웨트였다.
창문 밖 세상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시원한 여름을 보여 주려던 길은 몇 걸음 만에 막혔다. 뛰어들 바다가 없어 우리는 다시 에어컨 앞에 섰다.
“바다? 계곡? 아니면 워터파크?”
등에 찰싹 붙은 뜨끈한 아기가 뭐든 좋다며 얼굴을 비빈다. 언젠가 이 아이가 기억할 첫 청량은 오늘 내 품에서 흘린 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모님이 내게 그랬듯, '뜨겁지만 시원한' 그런 특별한 여름을 선물하고만 싶어진다. 네 여름을 식혀줄 포카리스웨트는 어떤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