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흙을 먹는 소년

by 공담소

가족들과 저녁 산책을 하는데,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는데, 흙 묻은 손바닥을 핥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발견함으로 그의 세계에 침범하고 말았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손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쟤, 뭐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남편이 속삭였다. 진심으로 궁금해 묻는 어투였다.

“어떡하긴, 말려야지!”

나는 아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세히 보니 유치원복이 깨끗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바가지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럴 리 없었다. 한 장면만 보고 아이가 흙을 먹고 있다고 단정 지어 버렸다. 나의 때 묻은 생각을 한탄하려고 할 때, 아이는 태평하고 아주 느긋하게 보란 듯이 흙투성이 손바닥을 다시 핥았다.

‘혹시… 아픈 아이인가?’

아이는 숨어 있지도 않았고,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본인이 상상하는 세상 속에서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과장해서 생각하면 공격성이 있을 수도 있고, 나에게 달려들거나 돌을 던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주변에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부모가 방치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요즘 유치원생이 보호자 없이 밖에서 혼자 노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의구심, 두려움, 부모로서의 죄책감이 한꺼번에 요동쳤다.

한 걸음 더 다가서니 아이의 눈빛이 보였다. 멍해 보이는 듯하지만 진지함도 섞여 보였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궁금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헤아리려고 하지 않고 너무 빨리 판단하려고 했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나의 아버지도 어렸을 적에 흙을 먹어보았다고 했던 것 같다.

‘흙을 먹을 수도 있지 않나?’

왜 흙을 먹으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온몸으로 자연을 탐색하고 있을 꼬마 탐험가일지도 모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존중해 주는 게 더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도, 아이를 말리고만 싶다. 고민하다 타당한 이유를 기어이 하나 찾아내고 말았다. 음식이 아닌 것을 먹고는 탈이 날 수 있다. 그래, 이 이유면 충분하다.


막상 다가가려니 다음 발걸음이 무겁다. 저 아이의 엄마도 선생도 아닌 내가 잔소리를 하러 다가가고 있다. 남의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내 자식이 잘못해도 다른 사람에게 혼나면 기분 나빠하는 부모들도 많다. 괜한 간섭으로 오해받진 않을까, 아이의 엄마가 싫어하진 않을까, 그래도 어른으로서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오지랖인 걸까? 내 안의 보호 본능과 사회적 거리감이 팽팽히 맞섰다. 그래도 알려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다. 모르는 아줌마가 갑자기 말을 걸면 놀랄 수도 있으니, ‘친구야, 뭐 하니?'로 시작해서 ‘배가 아플 수 있으니 다른 거 하고 놀자. 우리랑 숨바꼭질할래?' 정도로 이야기하자고 정리를 마쳤다.


“무슨 일이에요?”

날카로운 목소리. 아이의 엄마였다. 눈이 마주치자 괜히 뜨끔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무언가를 직감한 그녀는 시선을 아이에게로 옮기며 다가왔다.

“어머! 얘 또 흙 먹었어요?”

처음 보는 우리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들으라고 한 소리는 분명했다. 이 행동이 처음이 아니고, 그녀도 알고 있었고, 아이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다는 것까지 이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지!”

아이를 혼내는 소리도 우리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아이 턱을 내리고 입을 벌려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아~ 입에는 안 들어갔네, 안 먹었네!”

그러고는 순식간에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잠시 멍하니 서있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꺽꺽 웃음을 터트렸다. 초보 엄빠인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다.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상황을 나에게 넘긴 남편도, 낯선 아이에게 말 걸기를 망설인 나도 어설펐다. 어찌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부모의 등장으로 모든 게 해결되어 버린 상황에 웃음이 났다.


그러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아이 엄마의 꾸며진 표정이 떠올랐다. 아들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 봐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던 그녀다. 아들이 엄한 걸 먹고 아플까 봐 걱정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를 지키려 했던 걸까, 본인을 지키려 했던 걸까. 그녀보다 더 씁쓸한 건 나였다. 아닌척하며 처음부터 그 아이를 이상하고 위험한 존재로 단정했다. 혹시라도 내 아들이 따라 할까 걱정했다. 선입견을 갖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온갖 이유로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 나의 민낯을 마주하고 말았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순간의 평가와 차별을 두었다. 아픈 아이를 대하듯 했다. ‘흙에 유리라도 섞여 있을까’ 하는 걱정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산책을 마무리하며 간절히 바랐다. 너를 위한다며 내민 생각들이 너에게만은 닿지 않기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