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의 실패담
북클럽 오도독(@hana_dream_ )의 세번째 도서로 선정된 박소령 작가님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완독했다. 애정하는 북튜버 데이지님의 채널 '데이지헐'에서 지난 1월에 소개해주셔서 알게 된 책이었는데, 북클럽 도서로 선정될 줄이야. 이렇게 연이 닿는구나.
처음엔 해외 도서전 탐방기 시리즈 덕분에 이런 서비스가 한국에 있다니?? 하는 마음에 지적 흥분을 느껴 구독을 시작했고, 본인이 콘텐츠를 진짜 사랑하는구나 깨닫게 해준 서비스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퍼블리는 사업 방향을 확장해서 사수 없이 일하는 사람을 위해 길라잡이가 되는 글 등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 구독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그때 데이지님이 팀장으로 계셔서 회사에서 같이 구독도 하셨다고.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보낸 박소령 대표님의 전체 이메일을 참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박대표님의 사임 소식이 담긴 이메일을 받던 날 울적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랜선 너머로 진심이 느껴져서 데이지님의 그 어떤 아이돌보다 아이돌이셨구나 싶었다.
젠슨 황은 유튜브 채널 ‘Acquire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힘들 줄 알았더라면 결코 창업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바로 창업자의 ‘슈퍼파워'라는 것이다. 본인도 매일 스스로에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세뇌하듯 말한다고 한다. 생각한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훨씬 훨씬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자신의 뇌를 끊임없이 속여야 한다고 고백한다. 나는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어"보다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부처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항상 기본값을 고통으로 설정해두고, 어떤 일이 닥쳐도 ‘사업이란 게 원래 그러려니’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러려니'하고 초연해지려 애썼다. 현실의 나는 오늘도 맨땅에 헤딩하고 있지만, 깨지면서 온몸으로 배우는 것이 있으니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으며 정신승리를 하고자 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창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매일매일 답을 내야 하는 일이라고. 그렇기에 지난 10년을 보내며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나 자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흉내 낼 수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도 하다.
(p.76-77)
이 구절을 읽는데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 한 편이 떠올랐다. 웹툰작가 이종범님의 유튜브 채널 '이종범의 스토리캠프'에 민음사 김민경 편집자님이 출연하셔서 두분이 공포&스릴러 영화 월드컵을 하는 콘텐츠 영상. 이야기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최애작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왔는데, 둘의 대화가 흥미로웠다.
김민경 : 어쨌든 저의 최고작 <마더>였습니다. 종범 님은?
이종범 : 저 <살인의 추억>인 것 같아요. 아직도.
김민경 : 이유는 뭘까요? 혹시 그렇게 나의 마음에 깊게 박힌 이유.
이종범 : 아... <살인의 추억>... 실패담이잖아요.
김민경 : (캬아아) 좋다...! 길게 말 안해도... 못 잡았어. 범인을 못 잡았어.
이종범 : 이거에 감흥하니까 내가 김민경한테 미치는 거지.
김민경 : 나 뭔지 알 것 같아요.
이종범 : 아시겠죠?
김민경 : 실패했어. 그래서 추억이야.
이종범 : 추억이잖아.
여기까지도 참 좋았는데, 이 대화의 핵심은 뒤에 있다.
이종범 : 저는 그래가지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이 실패를 한 얘기를 했는데 이 정도의 사랑을 받는 예시로 딱 <살인의 추억>을 전당 위에 올려놓고, 학생들이나 전공생들이나 누가 어떤 원칙 무슨 공식처럼 주인공의 성취 성공 승리 얘기하면 조용히 <살인의 추억> 딱 꺼내서 보여줘요. 잘 만든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야.
김민경 : 맞아, 근데 또 그게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물이랑 달라. 굴러라 굴러라 굴러라 가면 결국 올려주는 내용이 아닌 거야.
이종범 : 근데 또 우리는 왜 저 영화를 한 시대의 기억으로 다 추억하고 있을까?
김민경 : 왜냐?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은 다 거의 실패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실패의 추억이 더 많아요. 성공이나 성취보다. 그렇잖아요, 삶이라는 게.
내가 이 책을 매력있게 느낀 지점이 저 두 사람의 대화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 어떤 성공이나 성취를 담은 글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창업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데이지님의 영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데이지님이 영상 뒷부분에사 작가님이 운영하는 인스타에서 좋아하는 컨텐츠들(만화, 다큐, 넷플릭스 시리즈들)에 대한 리뷰를 남기시니 살펴보시라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후 책을 직접 읽으면서 이분은 찐이라는 걸 느꼈다. 책 곳곳에 적재적소로 인용된 많은 책의 구절을 읽으면서 감탄했는데 에필로그에 이르러서 감탄은 탄성이 됐다. 『강철의 연금술사』 대사를 인용하실 줄이야.
얼굴이 먼지와 땀, 피로 얼룩진 채 용감하게 나아가며, 실수를 저지르고, 반복해서 실패하고, 행동하기 위해 애쓰고, 위대한 열정과 위대한 헌신을 알고 있고,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고, 높은 성취의 승리감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최악의 경우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대담하게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이 인용한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교훈에는 의의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라는 대사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마는 것이다. 내가 <강철의 연금술사>를 처음 본 이래 몇 번이나 복습하면서 느낀 '등가교환의 법칙'이 이런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위 대사는 에필로그에서 작가님이 설명하신 것처럼 시작과 끝에 동일하게 나오는 대사인데, 완결인 27권에는 저 대사 뒤에 두 줄이 더 붙는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결국 강철 같은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망하며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 대한 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