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오도독의 두 번째 책, 위화의 소설 <인생>을 완독했다. 이 책은 2014년에 구매했다.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에서 구매했다고 2014년의 내가 블로그에 기록해두었고, 중화권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소설을 구매한 이유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이 책 가장 앞 장에 실린 '한국어판 개정판 서문'의 구절 덕분이었다.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p.6)
위 구절은 내게 취향의 '줏대'를 만들어주었다. 비록 남들은 재미없어할지라도 내게 재미있는 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달까. 정작 본문인 소설은 뒷전이고 서문만 쏙 골라읽고 오랜 시간 책장에 꽂아두었지만 말이다.
소설은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나'가 만난 노인 '푸구이'의 인생 이야기다. '나'는 푸구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중략)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p.63)
이야기 초반부에 푸구이가 망나니짓을 일삼는 바람에 가족들이 고통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공감성 수치로 진입 장벽이 다소 있었으나 남편 푸구이를 감싸는 자전을 보면서 '내가 뭐라고' 싶어져서 계속 읽어나갔다. 딸 펑샤와 아들 유칭, 훗날 사위가 된 얼시와 손자 쿠건까지 푸구이 인생 속 인물들에 이입하게 되어 어느 시점부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한 인물의 마지막 앞에서는 인생이 이렇게 허망할 수 있을까 싶어 씩씩거리기도 하고, 또 다른 인물의 마지막 앞에서는 눈물이 났다. 드라마에서 종종 듣던 그 대사 "하늘도 무심하시지"가 생각나는 죽음이었다. 자업자득이기도 했고, 타의로 고꾸라진 날도 있었으나 푸구이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선다. 위화가 1993년에 쓴 서문의 구절처럼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서야 푸구이가 왜 그토록 자기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었다. 부모님, 부인 자전, 딸 펑샤, 아들 유칭, 사위 얼시, 손자 쿠건까지 푸구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고 그들을 살려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한 것이었구나 싶어 뒤늦게 먹먹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갈 뿐이지만 부디 어제보다 오늘 더 고통을 감내하고, 낙관적이기를 바란다. 소설 속 푸구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