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월든을 완독했다. 내가 갖고있는 은행나무판 월든은 개정3판 20쇄로 2016년 1월 18일에 발행된 책인데, 그해 7월에 구매했다고 블로그에 기록해두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몇 번에 걸쳐 읽기를 시도했으나 매번 1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는데, 북클럽 책과 새해 버프에 힘입어 끝내 완독했다. 1장을 꾸역꾸역 읽으면서 들었던 유일한 생각이 있었는데, 내가 이 1장을 무사히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었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월든은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 같은 모험기로 읽을 수 있고, 자연 묘사가 뛰어난 책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나는 소로우의 정신적인 자서전인 면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는 분명 콩 농사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내 업무를 투영해서 읽고 있는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이 콩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밀의 이삭이 농부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겠으며, 그 낟알만이 밀대가 생산하는 모든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사가 실패하는 일이 있겠는가?
(p.251)
책에 '우드척'이 매우 자주 나와서 읽다말고 검색을 해보았다. 다람쥐과에 속하는 설치류의 일종으로, 마멋류로 알려진 대형 땅다람쥐의 일종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밭의 두더지를 귀찮아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소로우가 콩 농사를 두고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대목에서 나는 내 업무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업무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며, 내 업무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돌아가는 것이겠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내 업무가 내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겠으며, 낟알만이 내 아웃풋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마지막 문장까지 품지는 못했지만 이 문장을 읽기 위해 내가 저 1장의 벽을 넘고 콩밭에 다다랐구나 싶어 마음이 좋았다.
여론, 즉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에 의한 자체 평가에 비교하면 대단한 폭군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p.22)
굉장히 초반에 나오는 구절인데, 대중의 평가보다 자신에 의한 자체 평가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월든으로 들어갔고 모험기와 수많은 자연 묘사를 거친 자서전의 끝자락에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태껏 발견 못 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보다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던 소로우. 배 밑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던 그의 월든을 10년만에 읽고 보내준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