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3): 몰입과 집중

병리적 몰입과 파편화된 신체


9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다른 연령대의 사람보다 이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인증이란,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증상을 말한다.


그 이전 세대는 TV 중독이 있었다.

세대 차이는 있어도 두 세대의 공통점은 모니터 속에 정신이 쉽게 빨려 들어간다는 점이다.


게임중독자가 인터넷에 한 번 몰입하면 긴 시간 동안 정신은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고 모니터 밖에는 사람이 아닌 고깃덩어리(flesh)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그때 고깃덩어리는 더 이상 사람의 ‘몸’이 아니라 ‘파편화된 신체’에 해당한다.

그렇게 파편화된 신체는 더 이상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는 몸이 아니므로 물, 음식 등을 먹을 필요가 없어지고 배설기능조차 멈춘다

그의 몸이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의 정신은 인격의 경계라 할 수 있는 피부를 뚫고 나와 모니터 안으로 정신이 들어가 ‘유기체로서의 몸’은 ‘파편화된 신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파편화된 신체'개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것은 바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적 신체개념에서 비롯된다.

데카르트는 사람의 신체에 관한 지식을 밝히기 위해 시체를 해부했다.

그것이 근대의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적 신체는 곧 해부학적 신체, 죽은 신체, 고깃덩어리로서의 신체에 불과했다.

그러기 때문에 데카르트적 신체는 사람의 고유한 인격과는 무관하다.

그 신체는 기계론적 신체이기에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신체는 언제든지 파편화될 수 있다.


파편화된 신체에는 정신, 영혼 등의 실체개념이 없다.

오늘날 현대의학은 데카르트의 근대의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근대의학은 죽은 시체를 해부하는 것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치료 역시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암판정을 받을 때, 의사로부터


"당신은 앞으로 ( )개월 더 살 수 있습니다."


라는 형식의 죽음 선언문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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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통한 몰입 역시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면서 모니터 밖에 남게 되는 고깃덩어리는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신체 분리를 자주 겪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이인증>이다.

이인증이 발생하면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면서 삶과 죽음의 중간단계에 머물게 된다.


현재 상담현장에서 90년생 이후 사람 중 이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게임 중독은 병리적 몰입을 초래한다.

병리적 몰입으로 인한 이인증 증상은 꼭 게임만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또는 핸드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사람, 즉 모니터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인증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이인증에 걸리면 치료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인증을 잘 아는 치료자를 만나지 못하면 일평생 그 증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집중하지 못하는 절대음감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음악인 중 누군가가 절대음감을 가졌다 하면 그를 대단히 부러워한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음악활동을 하는 데 있어 큰 장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겪는 불편함도 있다.

절대음감 소유자는 주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절대음감의 사람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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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도레미파솔라시도>등으로 구성된 악보를 연주할 때, 어느 음을 키든지 조금만 본래음의 위치에서 벗어나도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에게는 음이 정확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일이다.


보통사람이라면, 본래음에서 많이 벗어난 소리를 들으면 '좀 미숙한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이해하면서 쉽게 용납이 된다.

그런 음이 많아지면 조금 귀에 거슬리게 되지만, 그렇게 짜증 나는 일은 아니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부정확한 소리를 자꾸 내면 이를 아예 무시하고 자기 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지만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부정확한 소리에 계속 신경 쓰여 자기 본연의 할 일을 못하고 만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고 좇아가서 소리를 못 내도록 확 뒤집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상황은 꼭 음이 틀릴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어떤 절대음감 소유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중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귀는 들리는 소리마다 귀가 다 추적해서 좇아가고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자신이 집중하는 일이 있으면,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백색소음으로 듣는다.

그런 사람은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책을 읽는데 버스 기사가 라디오를 틀면 그 라디오 소리조차도 백색소음으로 듣게 되면서 자기 책 읽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절대음감 소유자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마다 소리로서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여 머릿속에는 온갖 소리 로 가득 차 있다집합소가 되어 버린다.

이런 류의 절대음감의 소유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만다.


몰입과 집중


몰입의 대가인 황농문 교수는 자신이 어떤 일을 위해 몰입하면 주변 상황을 잊어버리게 되고, 심지어 집안의 어른이 옆을 지나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황교수는 몰입하는 일과 몰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분리하는 특별한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황교수와 같은 몰입에 들어가는 방법과 벗어나는 방식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황교수와 같은 몰입에 자주 빠져 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위험한 상황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인증>을 말한다.

심령과학은 유체이탈 경험을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소개하지만, 누군가가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면, 그는 정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내가 중학교 때 몰입을 잘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이 친구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옆에서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책 읽는 일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정신은 누군가가 그의 몸을 흔들어 깨워야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중학교 때는 그런 친구가 몹시도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책 읽는 순간 책에 몰입하여 정신과 몸이 분리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면, 그는 <이인증>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몰입 능력이 아니라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집중이 몰입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비집중이 필요하다.

집중을 하면 비집중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집중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비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책 읽기에 집중하는 중에 불이 났다 하면, 비집중으로 불이 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깊은 의미를 가진 이야기 밖에는 할 줄 모른다.

또 다른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중에 어쩌다 깊은 의미를 가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전자는 집중밖에 못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집중과 비집중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사실적인 이야기 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빈말, 농담, 쓸데없는 말도 하면서 사실적인 말도 할 수 있다.

전자는 이야기하는 중에 집중밖에 못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집중과 비집중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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