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지옥(1), 연쇄살인범의 내면

범죄심리는 도덕적 방어에서 비롯된다

(표지 사진/모든사진: pexel)

내면의 지옥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는 말이 있다.

지옥을 장소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본 정의이다.

지옥은 우리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 지옥이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 관계를 지옥으로 만들고 부부관계, 자녀관계, 친구관계를 지옥으로 만든다.

우울증은 얼어붙은 지옥이고 시기심은 서로 죽이고 죽는 아수라의 근원이 된다.

오래전, 자기 부모를 죽인 후 토막 내어 유기한 한 대학생의 정신을 분석한 책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가 시중에 출간되었다.

저자는 나름대로 가해자가 왜 그리도 자신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는지 그의 살인 전 일기를 근거로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분석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1992년 미국의 로버트 K. 레슬러는 그간 미국 사회에서 엽기적으로 사람들, 특히 여자를 증오하여 연쇄 살해한 살인범들을 관찰하고 상담하면서 "FBI심리 분석관"이란 책을 내었다.

그는 "범인상 분석"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여 범죄심리학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그의 책은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영상화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가장 엽기적이라 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2004년)이 있었다.

유영철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책을 펼쳐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건에 대해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한 수많은 범죄심리학 책은 보았지만 아직도 깊이 있는 정신분석이나 대상관계이론적 접근을 갖고 그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책을 발견할 수 없음을 보았다.

심히 안타까웠다.

레슬러의 책에는 내 눈을 끄는 한 장(章)의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폭력에 찌든 어린 시절"이란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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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정을 해 보자.

유영철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했다면 과연 가난이나 성장과정 중의 좌절이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만들 수 있었겠는가?

아니 아버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그가 유아시절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대상관계이론의 초석을 놓았다는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것처럼 자아가 구성되는 초기 유아 시절에 편집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를 잘 통과할 수 있었다면 그토록 사람을 죽이고 토막을 내어 야산에 유기할 수 있었을까?

그가 죽이려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람이었을까?

자기 내면에서 투사할 수밖에 없는 어떤 정신적 요소였을까?

유영철이야말로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억압하고 억압하다 그 그림자에 먹혀버려 하이드가 되어 버린 전형적인 유형인 것이다.

그럼 그는 왜 그토록 여자를 증오하고 자기 내면의 부정성을 끌어안지 못했을까?

신경생리학자들은 그의 뇌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인간이 인격이라면 그는 관계 맺는 능력에 실패한 것이다.

이것은 대상관계의 철저한 실패이다.

즉 유아기의 유영철에 대한 어머니의 관계실패다.

그가 청소년 시기에 소년원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악한 인성을 강화시켰다고 하지만 소년원에 가기 이전부터 그는 분열되고 끔찍한 환상 세계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의 가혹하고 잔인함으로 가득 찬 무의식 말이다.

그가 죽이고자 했던 것은, 유아기에 자신을 돌봐 주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레슬러는 어떤 살인범도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35세 이후 갑자기 인성이 바뀌어 살인범이 되는 유형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하였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존재하고 진전되어 왔다고 하였다.

유영철의 어머니도 "내 아들이 설마 그럴 줄 몰랐다"라고 한탄했다.

모든 문제아들의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전쟁이 터지고 사는 게 지독하게 어려우면 모든 사람들은 생존하는데 자신의 리비도(삶의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른 것이 보일 리 없다.

일단 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은 자아실현을 위해 살도록 되어 있다.

그때는 생존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채우지 못한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이 문제로 부각된다.

그래서 가급적 자기애가 상처받지 않도록 민감한 자기애적 성격이 되는데 스스로 자기애를 형성하기에 미약한 아이는 당연히 부모에게 그런 자기애적 에너지를 기대한다.

그러나, 부모 자신이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들, 에너지가 있어도 그 에너지를(그 에너지를 사랑이라고 하자) 주고받는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부모가 되어도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녀 키우기는 더 이상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레슬러는 연쇄살인범들의 어린 시절을 탐구하다 하나같이 공통된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린 시절에(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어린 시절에 그들은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예외 없이 냉담하고 결핍된 대상관계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유형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범죄자의 범죄는 가난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결손가정 출신보다는 양쪽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 자들이 많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아이큐가 높다는 것이다.


도덕적 방어(Moral Defense)


대상관계이론가인 로날드 페어베언학대받은 아이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그 부모의 인정을 받아내려고 그 부모의 모든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내면화한다고 하였다.

누가 뭐래도 내 부모였기에, 그 부모를 도덕적으로 방어한다고 했다.

페어베언은 그런 도덕 방어를 하는 사람이 가장 치유하기 힘든 대상이라 헸다.


도덕적 방어란, 나쁜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도덕적으로 방어해 주고, 대신 나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없는 대상보다 나쁜 대상이 낫기 때문에 도덕적 방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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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술중독의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면 가재도구를 두들겨 부수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치자.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저항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의 나쁨을 탓한다.

아버지가 저렇게 매일 술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내가 나빠서 그렇다, 또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 패도, 아내는 남편을 비난하지 못하고 내가 나빠서 남편이 저렇게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 이유도 내가 매력이 없어서, 또는 내가 못 생겨서 그렇다고 남편을 비난하지 못하고 나 자신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도덕적 방어이다.


도덕적 방어는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랄 때 많은 아이들이 직면하는 불행한 상황이다.

부모의 모든 나쁜 측면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고 나쁜 부모를 도덕적으로 방어해 준다.


Fairbairn은 부모에게 반복적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부모의 부정적인 행동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처벌이나 피해를 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부정적인 행동을 내면화함으로써 이 아이들은 자신이 선천적으로 나쁘거나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으며 자신이 경험한 학대에 대해 자신을 탓할 수 있다.


Fairbairn은 이러한 내면화 과정이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부모를 유일한 안전과 보안의 원천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제안한다.

이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는 안전감을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모의 부정적인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종 도덕적 방어를 사용하는 것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아동은 부모의 학대 행위를 자신의 잘못이나 부적절함 탓으로 돌림으로써 합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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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덕적 방어 전략은 궁극적으로 역효과를 낸다.

나쁜 대상(이 경우 학대하는 부모)을 옹호함으로써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부정적인 자아상과 죄책감을 만든다.

이는 아동의 자존감, 관계 및 정신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airbairn의 이론은 아동 학대의 경우에 발생하는 복잡한 심리적 과정에 대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부정적인 행동을 내면화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과 이것이 가져올 수 있는 장기적인 결과를 밝혀준다.

특히 그러한 행동이 해롭다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자신의 감각을 두는 것은 재앙의 비결이다.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내면화된 부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다시 통제하기 시작하려면 지원과 치유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긍정적인 자아감과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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