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분석은 해몽과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맨 정신에 말하기 힘든 말을 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린다.
그 사람은 그 방법이 좀 비겁해 보이기는 하지만, 꼭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말이 있으면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에게 있어 꿈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이런저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나의 무의식적 상황에 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때 나의 무의식은 꿈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가지고 내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꿈은 늘 자기 가까이에 있다.
나의 무의식은 그렇게 공을 들여 밤마다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데, 정작 나 자신은 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기껏 <해몽>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꿈에 돼지가 다섯 마리 나왔으니, 복권 다섯 장을 사야 되겠다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꿈을 해몽하다 보면 꿈이 내게 전해 주는 중요한 의미를 놓치고 만다.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꿈은 놀라운 메시지를 당신에게 전달하고자 하지만, 내가 그것을 자꾸 놓치기 때문에 꿈은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꿈은 내게 의미를 전달해 주기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을, 과거의 어린 시절과 지금을, 때로는 병증과 건강함을 연결시켜 준다.
그래서 내가 상담을 할 때, 첫 회기에 꼭 묻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릴 때의 첫 기억으로 떠오르는 사건과 자신의 기억 속의 첫 꿈이다.
그 두 가지를 보면, 그 사람의 유아기의 삶(엄마와의 관계), 그 이후 오늘날까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기억 속에서의 첫 꿈이 아닌, 어머니의 뱃속에서 꾸는 첫 꿈이 있다.
그 첫 꿈은 아기 대신 어머니가 꿔 준다.
사람들은 그 꿈을 일명 <태몽>이라 부른다.
어떤 어머니든지 내 자식만큼은 대단한 영웅 같은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영웅이란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어렸을 때부터 행적은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특별한 부모 밑에서 특별한 자식으로 태어나 영웅이나 위인이 되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이 시대의 영웅을 낳고자 하는 소망을 쉽게 꺽지 않는다.
어머니는 태몽을 꿈으로써 내 아이의 존재 의미를 바꾼다.
엄마가 태몽을 꾸는 한, 그 아이는 우연하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 존재로 탄생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그 아이의 존재 의미를 바꿈으로써 양육하는 태도를 바꾼다.
말하자면, 태몽은 물리적으로 어느 한 지점과 한 시점에서 발생한 우연한 사건을 우주적 좌표를 정해주고 칼렌더의 객관적 시점으로 변환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꿈을 생각해 보라 하면 그는 대개 <태몽>을 떠올린다.
이처럼 <태몽>은 그냥 꿈과는 다르다.
우연하게 태어나는 자녀의 존재를 ‘필연적’ 존재로 바꿔주는 어머니의 위대한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몽은 그 아이의 인생을 방향을 정해주는 꿈이기도 하다.
- 개 꿈은 없다 -
MBC의 김나형 PD는 “꿈은 속마음을 찍는 X-Ray다”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꿈은 낮에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소망 충족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꿈은 자신의 이기적인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칼 융은 꿈을 매우 포괄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꿈은 좁게는 너와 나를 포함하고 넓게는 온 우주를 포괄하는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 좌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꿈이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모두에게 유익한 차원으로 관계와 상황을 조절한다. 프로이트의 꿈 주인공은 자아(ego)의 개념에 한정되지만, 융의 꿈 주인은 자기(self) 개념으로 확장된다.
하와이에서 나비의 날개 짓이 동남아에 태풍을 불게 할 수 있듯이, 꿈은 나의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작용이지만 너와 우리, 그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그리고 온 우주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꿈에서는 공간만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꿈은 시간도 확장한다.
무의식의 무시간성 때문에 어젯밤에 꾼 꿈에서 유아기 때 경험을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은 어떤가? 내 안에 있는 어떤 내용을 그 사람들의 모습을 채색해 낸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인 것이다. 내 그림자들이자 내 안에 있는 남성성 여성성의 모습이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규명해 가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첩경이다.
사람들은 이해 불가능한 꿈을 꾸면 ‘개꿈’이라고 치부한다. 개꿈을 영어로 말하자면, stupid dream이다.
그런데 꿈 분석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There is no stupid dream. The person who doesn’t know its meaning is stupid
라고.
지혜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란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나와 연결된 주변 사람과 사물, 상황 등에 대해 인식이 남다를 것이다.
나를 잘 알 때 현실 파악 능력이 탁월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선경지명을 가지게 된다.
선경지명이란 미래를 미리 보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잘 파악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신의 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선견지명을 가진 지혜자가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