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엄마와 딸 사이

모성 원형 관련 꿈

어느 중년기 여성의 꿈


(꿈 내용)

남편과 나와 딸, 세명이 여행을 갔다.

시골 같은 평지의 딸기밭에 산딸기를 내가 먼저 먹고 딸에게 주었다.

그 근처에는 붉은 사과가 있었다.

딸이 갑자기 건물의 꼭대기로 올라가길래 우리는 따라갔다.

건물 꼭대기에는 붉은 벽돌로 된 가정집이 있었다.


나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늪과 같은 깊은 흙구덩이에 빠졌다.

남편이 나를 구출해 주었다.



꿈의 구조적 의미


내가 분석하는 기법은 꿈 해몽과는 다르다는 점을 먼저 알리고 싶다.

일반적으로 꿈해몽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과 같다.

나의 꿈 분석 방법은 일종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꿈은 현실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상황적 딜레마, 미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꿈 분석은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꿈이 현실적인 관계 문제들을 드러내다가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면 과거의 관계, 심지어 아동기 유아기의 부모와의 관계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잠재되어 있던 자각과 능력이 발현될 수 있다.

때로는 현실과 아동기, 유아기의 연대기가 꿈의 한 장면으로 압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위의 꿈은 나, 남편, 그리고 딸 등 세명이 나왔다.

이런 꿈은 오이디푸스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꿈에서 3, 세명, 삼각형 등이 나오면 일차적으로 오이디푸스를 의심한다.

오이디푸스 구조란, '아버지-어머니-나'의 삼자 관계를 말한다.

이 관계가 얼마나 취약한가 또는 얼마나 건강한가를 꿈의 내용에서 보여준다.


꿈의 주제는 모성 원형이다


이 꿈은 꿈꾼 사람이 매우 건강한 오이디푸스 구조를 가진 가족관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 꿈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은 딸이다.

이 꿈의 주제는 <모성 원형>이다.

원형이란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온다.

사람은 수많은 원형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원형 하나하나가 모두 일평생에 걸쳐 실현되어야 할 것들이다.

원형은 일종의 집단 무의식의 형태를 띤다.

원형은 집단 무의식에서 개별화되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입에다 젖을 갖다 대면, 누구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 젖을 빤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집단 무의식으로는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게 되어 있다.

그런 집단 무의식이 개별화되면서 더 이상 엄마의 젖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일평생 먹고사는 일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고아가 있다고 치자.

이 고아는 엄마가 없어도 자신 내면 안에 있는 모성 원형을 사용해서 스스로 돌보게 된다.

모성 원형이 작동하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돕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딸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모성 원형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이 꿈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첫째, 딸기밭에서 산딸기를 먹는 것

둘째, 본인이 늪에 빠졌는데 남편이 건져 주는 것


여자의 공통된 문제는 엄마와의 동체성


대부분의 딸은 엄마와의 동체성이 문제다.

동체성이란 엄마와 한 몸이라는 뜻이다.

딸은 심리적으로 늘 엄마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

여자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어떤 때는 '이 생각이 엄마 것인지 내 것인지' 구별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연애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엄마가 좋아할 남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로, 딸이 수능이나 모의고사 같은 중요한 시험을 칠 때,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무리한 공부를 하고 있는 딸 대신에 엄마가 대신 아파 병상에 눕는 경우가 있다.

이런 엄마와 딸 사이의 한 몸으로 사는 것은 딸이 결혼하고서도 계속된다.

아들이 결혼하면 아내 중심으로 살아갈 때 엄마는 고부간의 갈등을 일으키면서 아들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결혼한 딸은 언제나 엄마의 손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딸 집에 출근하듯 가서 청소, 빨래, 설거지 해 주고 김치 담아서 통으로 배달하는 것은 기본이다.

엄마와 아들은 성이 다르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엄마는 갈수록 내 아들 같지 않다.

딸과 엄마는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심리적 장벽이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그런 모습은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고, 엄마에 대한 딸의 효심이다.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모녀 관계로 지속되는 한, 딸의 남편은 둘 사이에서 겉돌게 된다.

아내의 마음속에는 엄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남편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남편의 심리적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엄마가 대신 채워주기 때문에 딸은 공허함이 뭔지를 모르고 지낸다.


꿈에 대한 분석

1.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딸


이 꿈에서 엄마는 딸기 밭에서 딸에게 산딸기를 준다.

딸기밭과 산딸기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딸기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딸은 어릴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해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딸은 유별나게 엄마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딸을 통제하거나 관리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엄마의 입에 맞는 딸로 키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엄마는 늘 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였다.

엄마는 딸이 도움을 청할 때 확실하게 도와줬다.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딸기 밭에서 산딸기를 주는 것으로 드러난다.

딸기라 함은 사람의 입맛에 맛게 개량된 종이다.

그런데 산딸기는 자연산 그 자체이다.

엄마는 자랄 때 자신의 엄마의 입맛에 맞춰 살았다.

그렇지만 이 엄마는 딸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딸의 존재를 존중해 왔다.

그래서 딸에게 내가 익숙해 있는 딸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산딸기를 준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이 딸은 엄마가 보기에 다방면에서 유능하고 창의적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2. 나(꿈 본인)와 남편과의 관계


나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늪과 같은 깊은 흙구덩이에 빠졌다.

남편이 나를 구출해 주었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 딸과 같지는 않았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고,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

어릴 때부터 히스테리화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런 상태에서 살아왔다.

히스테리화 된 여성은 주로 여성성 대신 가족관계에서는 주로 모성성을 사용하며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는 남성성을 사용한다.

히스테리 여성에게 여성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는 신비의 영역이다.

자신이 여성이라고 내가 여성성을 잘 갖추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인 경우가 많다.

꿈에서 남편이 흙구덩이에 빠진 나를 구출해 준다.

여기서 흙구덩이는 바로 오랫동안 자신의 인격인 줄 알고 살아왔던 '모성성'이자 '모성 원형'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자로 살아 본 적이 없다.

나는 여전히 여성성이 뭔지 모른다.

여성성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히스테리 여성이 나의 여성성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성성은 남편과 유유자적하며, 평화롭게, 행복하게 지내는 방식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남편과 갈등을 겪어 내면서, 그리고 남편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여성성을 찾아갈 수 있다.

이때 여성이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지금-여기의 감정'이다.

이 감정을 발휘함으로써 여성 자신의 고유한 여성성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철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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