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2): 아버지와 어머니

순발력 vs 인내력

어머니가 정하는 한계와 아버지가 정하는 한계


탐구자 : 어머니가 놀아주는 것과 아버지가 놀아주는 것의 차이가 바로 그런 지점이겠군요. 즉 아이가 어머니가 정하는 규칙은 만만하지만 그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놀아야 한다면, 아버지가 정하는 규칙은 엄격하지만 넘어서기를 선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석가 : 맞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존재를 마음껏 누리면서 잘 노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위니캇이 아기가 초기에 경험하는 어머니와 융합관계를 말할 때, 그 관계의 의미는 곧 ‘어머니는 아이에게 존재 자체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탐구자 : ‘어머니는 아이에게 존재 자체로 들어온다’는 말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군요.


분석가 : 아기가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와의 존재 융합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머니의 존재를 마음껏 누릴 수가 있죠. 그런데 어머니도 나름대로 아이에게 허용하는 제한과 규칙이 있는데 아이가 3~4세에 이르는 시기에 이 제한선과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함으로써 내적 통제능력을 키워주게 됩니다.([파더쇼크], EBS <파더쇼크> 제작팀 지음, 쌤엔 파커스,64) 그러다가 만 3세가 되면 아이가 어머니의 존재를 마음껏 누리는 부분에 대해 금지를 시키고 새로운 제한과 한계를 정하는 아버지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때 자녀는 그동안 어머니가 제시하는 제한과 한계를 넘지 않고 잘 수용해 왔지만, 아버지가 제시하는 제한과 한계에 대해서는 부딪히고 뚫어내려고 합니다.

아이는 자기편이라 여기는 어머니가 뒤에서 받쳐주는 한 아버지에 대해 반항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두려움 없이 ‘아빠 싫어!’를 외칠 수 있게 되죠. 아이는 아버지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합니다. 이때 건강한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가 아버지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허용해 주게 됩니다. 아이가 그렇게 아버지를 넘어설 때 어머니의 존재 경험과 아버지의 권위를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를 사회화하는 데 유리한 원리를 획득하게 됩니다. 물론 아버지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해도 한번 넘어 서 보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일 뿐 아버지의 안전한 범위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죠. 왜냐하면 아이는 아버지를 넘어서 보지만 아버지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아동기에 아버지의 규칙과 권위를 넘어서 봤기 때문에 청소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아버지에게 도전하게 되죠. 아버지를 넘어서 아버지 너머에 있는 세계로 자신을 확장해 가려고 노력하죠. 사춘기에 아버지를 넘어설 때 비로소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사회가 이렇구나' 하며 아버지 뒤에 있는 세계를 탐구하려는 호기심을 발동하게 됩니다.


탐구자 : 그런 것을 보면,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청소년기가 되면 그런 면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청소년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것보다 어머니에게 도전하는 것을 더 힘겨워하더라고요. 어머니에게 잘못 덤볐다가 한번 혼나기 시작하면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리고 몸이 얼어버리는데,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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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여자가 독을 품고 있을 때입니다. 여자의 그런 모습은 남성화될 때 드러납니다. 여자의 감정이 남성화될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남자는 없습니다. 자녀가 청소년기를 지내고 있다면, 그 어머니는 40대 후반의 중년여성일 가능성이 높은데, 자녀가 남성화된 어머니의 잔소리나 분노를 받아내면서 싸워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존재 자체로 들어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반면에 아버지는 존재자체가 아님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또는 권위자로 아이 앞에 서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가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은 허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내면에 '존재'로 들어온다면, 아버지는 존재가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들어옵니다.

지구력 VS 순발력


탐구자 : 제한선과 한계라는 차원에서 볼 때, 어머니가 정한 것과 아버지가 정한 것의 차이가 뭘까요?


분석가 : 어머니의 능력은 여성적 요소에서 보여주듯이 ‘있음(존재, being)’의 능력입니다. 그에 반해 아버지의 능력은 ‘행함(doing)’이라는 남성적 요소에 있죠. 그래서 어머니의 존재로서의 기능은 자녀와 늘 함께 있어주는 것과 관련됩니다. 아버지의 기능은 정반대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이미 몸은 흥분 상태로 돌입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몸이 아버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죠.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다!’ 하며 달려갈 때 몸의 흥분은 극대화되는 겁니다. 그렇게 나타난 아버지의 손에 피자 한 판이 들려 있다면 아이의 몸의 흥분도는 최상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늘 함께 있음’의 기능은 자녀로 하여금 심리적 지구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면, 아버지를 통해 몸체화되는 흥분의 기능은 심리적인 순발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머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들의 심신 기능에 각기 다른 측면으로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아이들과 늘 함께 있지 않아도 짧은 시간 동안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신체접촉을 강렬하게 해 주게 되면, 아이들은 약물중독, 청소년 우울, 자살 등의 문제가 적어진다는 연구도 있어요.( [파더쇼크], 49) 구성애 선생의 강의에 의하면, 청소년기에 아버지가 몸으로 놀아줄 때 아이들의 사춘기를 천천히 진행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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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늦게 오는 것이 좋다는 건데, 그건 또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분석가 : 요즘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너무 빨리 다가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춘기가 마치 천둥이나 번개가 치듯 와 버리면 아이들은 충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춘기는 나이에 맞게 적절한 시기에 와야 하고, 그 충격을 스스로 완화시키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사춘기란 정신과 신체 사이에 괴리가 커지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가 자녀들과 몸으로 놀아주면 좋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과 신체 사이의 괴리가 점차 좁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분노나 짜증이 많거나 우울 모드에 자주 돌입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둘 사이의 갭 때문이거든요. 청소년기에 이 갭을 해결하고 청년기로 넘어가는 사람과 갭을 해결하지 못하고 청년기에 진입하는 사람의 향후 인생의 질적 차이, 인간관계의 질적 차이는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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