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자녀의 언행으로 인한 자극이 부모님에게는, 부모님 자신의 부모님과의 관계 전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들로서 나의 아버지께 내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자랐고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순종해 왔는데, 내 자식이 나한테는 자기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내 말에 납작 엎드려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화가 날 수밖에 없죠. 그때 내가 그 자녀를 때리게 된다면, 자녀가 잘못한 부분 때문이기 이전에,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온 나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의 감정을 가지고 때리게 될 것이거든요. 나는 자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나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탐구자 : 그걸 인식하면서 자녀에게 체벌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분석가 : 건강한 아버지라면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공격을 아버지의 힘으로 누르지 않고 자녀의 수준에서 함께 싸워주고 맞서줄 수 있어야 합니다.
탐구자 : ‘맞서준다’는 말이 생소한 표현이네요
분석가 :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공격성을 마냥 받아주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부모의 권위로 누르지 말고 자녀의 나이와 지적 능력과 공격성의 크기에 맞춰서 부모가 같은 수준으로 내려와서 함께 싸워주는 것이 바로 맞서주는 것입니다.
탐구자 : ‘맞서준다’는 말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분석가 : 그러니까…. 자녀가 반항을 하거나 화를 내면 아버지는 ‘버릇없다’고 혼을 내거나, 자녀가 내는 화보다 더 큰 화를 내어서 일거에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청소년 자녀가 부모에게 처음으로 반항하거나 부모를 거스르고 있다면, 그 아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부모님에게 자기주장을 거칠게 한번 해 보는 것이거든요. 자녀가 그렇게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덩어리 형태로 무분별하게 집어던지는 공격성을 부모는 자녀가 차근차근 자기주장을 할 수 있도록 자녀의 수준에 맞는 언어와 동등한 위치에서의 태도로 자녀 앞에 서게 될 때, 자녀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아버지께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덩어리로 된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분화시켜서 표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 자녀가 그동안 억제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그 아이가 끝까지 자기 논리를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맞장구쳐 주는 싸움을 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아버지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싸워낼 수 있게, 그 결과 마침내는 아버지를 뛰어 넘어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어깨를 빌려주는 싸움을 싸워주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에서 자녀는 부모님께 대한 자기 입장이 딱 정리가 되어서 더 이상 그 주제를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허용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맞서준다’는 개념입니다.
탐구자 : 자녀가 아버지와 이런 싸움을 싸우고 나면 굉장한 희열과 성취감을 얻게 될 것 같은데요?
분석가 :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그런 싸움을 싸워주지 않으면, 그 자녀는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사회에서, 조직생활에서, 친구 및 선후배 관계에서,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 늘 부딪히게 되고, 늘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이런 싸움을 싸워내는 중에 그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면, 그 자녀는 밖에서 권위자와 그런 상황으로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모가 자녀와 맞서주는 싸움을 해 주면, 자녀는 부성 콤플렉스 또는 모성 콤플렉스의 어느 부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탐구자 : 과연 자녀와 그런 싸움을 싸워주는 부모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싶네요.
분석가 : 이 책을 읽는 부모들은 부모역할이 뭔가를 알기 위해 이제부터 자녀들과 맞서 주면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부모로서 성숙해 가게 되고, 자녀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부딪히게 될 수많은 시험과 고비들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면서 극복해 나가려는 도전의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100억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탐구자 : 요즘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권위 있는 아버지가 되기보다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자녀교육으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어떤 아버지가 바람직한 아버지인가요?
분석가 : 대개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 가부장적이어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경우이거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이런 다짐을 하죠. ‘내가 아버지가 되면 내 자식들한테는 절대 우리 아버지같이 하지 않겠다.’ 이런 다짐의 결과로써,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자녀에게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접어 두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놀아주는 아버지로 만족하게 됩니다. 놀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버지로서 권위를 버리게 되면 자녀가 아버지를 세상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이상화시킬 수가 없게 됩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권위의 법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세상의 법과 이치를 이해하는 기초로 삼게 됩니다. 자녀는 아버지가 권위 있게 금지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거절로 가득 찬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의 권위를 상징화시킴으로써 거대하고 광대한 세상에 압도되지 않고 세상을 상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친구로서만 지낸다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의 결과, 아버지의 권위를 수여받지 못해, 권위의 부분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에게 권위자로 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아버지는 성인아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이 어릴 때는 조숙한 어른처럼 살았고, 정작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 자녀와 친구로서 놀아주게 되는 것이라면, 자녀의 수준이 아버지에게는 자신 안에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녀의 나이 수준으로 내려가서 퇴행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아기와 잘 놀아주면서 어느 순간 자녀에게 아버지 자신의 유아기나 아동기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탐구자 : 저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잘 놀다가 갑자기 분노를 해서 아이를 당황하게 만들고 마침내 아이는 울고 말더라고요. 그런 일은 왜 발생하는가요?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 또는 어른과 아이 관계인데 왜 그럴까요?
분석가 : 간단한 이치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와 잘 놀아주다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어릴 때는 내 아버지가 이렇게 놀아 준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는 거지? 나는 나 같은 아버지를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얘는 무슨 복이 넘쳐서 내가 이렇게 놀아줘야 되는 거지? 순식간에 억울함과 원한 감정이 올라오는 겁니다. 아버지는 자녀와 잘 놀아주는 친절하고 공감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되겠지만,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건강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아버지로부터 권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 보면 권위 없이 친구처럼 만만한 아버지와 재미있게 노는 것보다 권위 있는 아버지와 놀면서 아버지가 정한 규칙과 금지, 권위를 슬쩍 넘어설 때 아이는 그 순간 굉장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자녀는 아버지로부터 권위도 배우고 아버지를 넘어서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